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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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준 작가. 1970년 생으로, 20살에 시인으로 등단. 우아~~~ 20살에. 제가 문학을 너무 몰라 이응준 시인의 글은 처음입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도 그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습니다. 시집을 두 권, 소설집을 다섯 권, 장편소설도 네 편이나 발표했더군요. 이번엔 산문집입니다. 한국에선 수필이 잘 안 팔린다는데도 이렇게 책이 나온 걸 보면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낙서장이나 블로그에 수년간 쓴 것들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의 잡동사니 산문집입니다. 일기처럼 자신의 생각을 쓴 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쓴 글 등 내용과 형식도 다양합니다. 제가 등단 작가가 아니지만, 제 블로그 글도 몽땅 모으면 책 한 권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작가 지망생인지라, 작가에 대한 글 소설에 대한 글, 글쓰기에 대한 글, 문학에 대한 글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좋았던 부분 중에 몇 개만 골라보겠습니다.


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가? 기운 차리게 해서 또 편의점에서 부려먹으려고?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헌법이 열등해서도 아니고 법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타락해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법은 누구나 지켜야 합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왕인 줄 아는 한 정신병자가 법을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 아니게 됩니다. 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요. 저자는 헌법이 열등해서도 모자라서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이미 타락했기에, 그들부터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인부터 법을 안 지키는데 국민들이 법을 지키고 싶을까요? 그러니 여기저기서 불법이 횡행하고 억울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나라를 이 꼬락서니로 만들어놓고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꼴불견입니다. 어떤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랍니다. 아프면 환자지요. 환자는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지 위로받고 노력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필사로 소설 수업을 시키는 것은 진지한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장 힘 좀 쓰게 하겠다고 미래에 발병할 괴로운 병원체를 강장제로 먹이는 것과 같은 짓이다.


요즘 젊은 소설가들은 상상력이 없다. 문학상 눈치 보고, 출판사 눈치 보고, 이러는데 무슨 상상력이 있겠나. 작가의 모럴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거다. '나는 이 사회를 흔들어놓겠다, 이 사회를 뒤흔들 질문을 던지겠다.' 이 강력한 의지가 글을 쓰게 하는 거라고. 그런데 남의 눈치를 보니까 쓸 게 없지, 여기서 '남'은 누굴까? 여기까지만 하자.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 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다.


  저자는 필사를 극구 반대합니다. 필사를 필사적으로 반대합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절대 해선 안 될 어리석은 짓이라고 충고합니다. 왜 한국문학이 이 꼬락서니가 됐을까요. 상상력이 부족하니 표절이나 합니다. 표절이 아니면 재미가 없거나 읽을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등단제도'가 한국문학을 시궁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오직 우리나라만 등단제도가 있습니다. 등단제도가 훌륭한 것이라면 노벨문학상이 수십 명은 나왔어야죠. 그런데 0명입니다. 등단제도가 개쓰레기 구닥다리 제도라는 증거입니다. (등단제도가 쓰레기라는 건 제 생각이며 저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외국에도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우리가 읽고 있는 고전들 중에 몇 권이나 살아남았을까요?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읽지 않아서 잊혀진 소설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평가받고 전 세계인이 읽는 소설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읽은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뿐인 소설이더군요. 그 나라에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이 훌륭한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한국문학 말아먹는 등단제도 때문에 젊은이들은 심사에 통과될 소설을 씁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그렇게 소설을 씁니다. 그러니 무슨 상상력이 있겠냐고요. 그래서 표절이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소설 쓰기가 힘들어지면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 그런데 소설가로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카프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산문(<소설의 기술>)을 읽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에 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첼로 소리 같은 글들은 작가란 천국에서조차 이방인이어야 하며 그의 조국은 '망명'이라는 사실을 감각하게 해준다.


작가란 세계를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려는 불가능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는 것은 기껏해야 비극이지만 누군가는 그 비극 안에서 불새가 소리치며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제 꿈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하며 소설 쓰는 것'이었습니다. 네, 과거형입니다. 선생님이 못 됐으니 이미 깨진 꿈이지요. 그다음에 새로 세운 꿈은 '아빠 되기, 소설가 되기'입니다. 아빠가 되는 꿈은 기적적으로 이뤄졌고, 아직 소설은... 그래도 저는 이 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으로 따져도 아직 살 날이 40년이나 남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설 쓰기 힘들 때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고 합니다. 카프카, 그는 소설을 쓰려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소설을 쓰다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카프카의 생애가 계속 떠오릅니다. 그래선지 저자는 소설가로 사는 게 힘들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합니다. 저야, 뭐,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결혼을 했지만, 저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어렵습니다. 소설가가 되는 길은.


변화하지 않으면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남지 못한다. 지는 것은 고사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변화하는 척하면서 싸우면 져도 더럽게 진다. 죽어도 더럽게 죽는다.


파시즘의 얼굴

사람들은 관대하게 지배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_ 요제프 괴벨스, <미하엘>, 1936.


  '변화'를 저는 '진보'라고 바꿔서 읽어봤습니다. 진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나라 보수정권의 처참한 모습을 매일 뉴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인지 왕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유딩화법 구사자는 법 위에서 헌법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제는 정치에 관심 좀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아주아주 옛날 옛날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죠. '정치에 무관심하면 당신보다 못한 놈에게 지배받는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철학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수준이 박ㄹ혜라서 그런 대통령을 가졌나 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딩화법이나 쓰니까 저런 대통령을 아니 왕을 가졌나 봅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 하면 망합니다. 망해도 아주 더럽게 망합니다.


문학이 뭐냐고? 문학은 인간과 세상이 신이라는 존재처럼 우스꽝스럽다고 벽에 말해주는 것이다.


사건이 넘치게 있어도, 인간의 내면이 없는 이야기는, 사실상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나 소설을 쓰다 보면, 문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구나,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측면으로 접근하든, 전적으로 '육체적 중노동'이다.


  저는 시간만 나면 소설 생각입니다. 문학적 소양이 너무 형편없어서 요즘은 고전을 주로 읽습니다. 이제 몇 권 읽었지만 '아~~ 이래서 고전이 됐구나'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그러곤 위축됩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중노동입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을 하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요. 언젠가는 제 책도 세상에 나올 날이 있겠죠. 그날 제 책에 멋지게 친필 사인을 해주렵니다. 하하하.


원글 http://blog.yes24.com/document/928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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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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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가에서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다지 잘생기지 않은 외모 덕분에 사진 찍기를 싫어하기도 했고, 집에 카메라가 없기도 했기에 오래된 사진은 큰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장롱 깊숙한 곳에 보관 중이던 앨범도 꺼내봤습니다. 아빠의 청년 시절 사진을 보며 '나랑 닮았나?'라는 의문도 가져보고,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과 고모의 젊은 시절 사진이 너무 비슷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사진은 이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이 사진은 나 초등학생 때, 이 사진은 나 중학생 때... 음???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지???


  이번에 읽은 소설은 할런 코벤의 스릴러 <단 한 번의 시선>입니다. 요즘 은근 스릴러에 손이 많이 가는데요, 스릴러가 가진 가독성에 반해서인 것도 같습니다. 이번 소설도 가독성은 끝내주더군요. 손에 착착 감기는 책넘김, 읽을수록 빨라지는 종이 소리에 제 손이 눈동자 굴러가듯 빨랐습니다. 비채 출판사가 번역을 잘 해선지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이 '잡아 볼 테면 따라와봐'라며 빠르게 달렸습니다. 가방에 넣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검사 누이의 죽음, 갑자기 나타난 오래된 사진, 사라진 남편, 살인마. 이 퍼즐 조각들을 맞추는 재미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 했습니다. 이런이런, 이렇게 잼나는 책을 빨리 읽으면 아까운데... 하지만 가깝다는 감정보다 궁금함이 더 컸습니다. 아~~ 뭔가 맞춰질 듯하면서도 아닌 이야기는 남은 페이지가 읽은 페이지보다 줄어들수록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반전. 하하하.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그 비밀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사람의 뇌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역사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갑자기 나타나 잘 살고 있는 현재의 나를 괴롭힙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레이스도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아니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디지털 시대에 약간 생뚱맞긴 하지만, 현상소에서 찾아온 사진에 이상한 사진 한 장이 발견됩니다. 젊은 다섯 남녀, X 표시가 된 가운데 여자, 그리고 남편을 많이 닮은 한 남자. 겨우 이 사진 한 장은 죽음을 몰고 옵니다. 줄거리를 뭔가 적고 싶긴 한데, 적기엔 좀 애매하네요. 뭘 적든 스포일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의 남편 잭이 사실은, 아~~ 포기. 줄거리는 적지 않겠습니다.


  과거를 꼭 꺼내야만 할까요? 어떤 경우엔 그렇더라도 또 다른 경우엔 아닐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억울하고 정의를 위해 진실을 밝혀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 진실로 인해 파괴될 행복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정의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진실을 파헤치는 편에 서고 싶습니다. 진실이 세상에 밝혀짐으로 인해 아파할 사람이 있고 손해 볼 사람이 있어도요. 하지만, 그레이스는 진실이 묻히길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보다 가정이, 내 남편이, 내 아이가 우선일 테니까요. 제가 아빠가 돼보니 알겠더군요. 우선순위 첫째가 가족이라는 것을요. 진실을 위해 내 가족을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진실을 외면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랬다면, 그레이스는 남편을 잃지 않았을 지도요.


원문 http://blog.yes24.com/document/925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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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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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합니다. 운명이 장난을 친다고 해도 인연이 되면 만나지요. 우연한 만남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그 인연으로 인해 사랑을 하기도 합니다. 단 하루만의 짧은 사랑의 힘으로 10년을 살 수도 있는 게 사람입니다. 간절한 사랑을 인연이라는 끈으로 연결하여 꼭 쥐고서 놓지 않는다면요.

  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요즘은 무조건 해피앤딩만 찾다보니 중간 과정이 애틋한 것도 별로더군요. 하지만 이 책은 일본풍 소설이라서 그런지 아릴 정도로 애틋하진 않았습니다. 닿을듯 닿을듯 닿지 않는 과정 속에 요시다 슈이치만의 문장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내게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라는 상상도 해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답니다.

 

  타이베이. 대만의 수도입니다. 하루카라는 일본 여자와 타이베이 남자 에릭이 만난 곳입니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하루라는 짧은 만남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운명이 질투를 한 걸까요? 에릭의 연락처를 적은 메모를 잃어버리고 만 하루카. 그래도 하루카는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오랜 세월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하루카는 대만으로 돌아옵니다. 고속철도를 일본이 수주하며 일하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에릭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하루카. 하지만 에릭은 일본에서 일을 합니다. 에릭도 하루카를 잊지 못해 그녀의 모습을 찾으려 일본으로 건너간 거겠지요. 둘은 이렇게 서로를 원하면서도 떨어져서 9년이라는 세월을 보냅니다.

  사랑이란 이런 거겠지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린 것.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살며시 미소짓게 만드는 것. 이 두 사람은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 

  오랜 세월 잊지 못하는 사랑이 있나요? 이렇게 오래오래 간직하고 평생을 살아갈 사랑이 있나요? 어쩌면 없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날 수도 없는데 생각해봐야 마음만 아플 테니까요. 하지만,,, 오래오래 간직할 작은 추억이 있다는 것도 좋을 것도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보지 못한 타이베이라는 곳의 향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자세한 묘사의 문장들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곳이라서 그랬을 수도요. 여행을 하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도시(장소)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여행지였던 정동진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곳에서의 하루도 아주 상세히 기억납니다. 그래서 타이베이가 신비롭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음,,, 사랑하기에 좋은 도시라는 느낌?

  그리고 하루카와 에릭의 이야기만 아니라 여러 연인들이 나옵니다. 이들 모두 타이베이라는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쩐지 이 책 때문에 타이베이라는 도시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도요. 왠지 이 도시에 가면 사랑을 해야 할 것 같은... ^^ 일본과 대만을 잇는 역할을 이 책이 제대로 해주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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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 태교동화 1 - 머리가 똑똑해졌어요 우리 소리 태교동화 1
노경실 지음, 백두리 그림, 남우선.대구 MBC 곡 / 예담Friend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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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것만 먹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네, 태교를 할 때랍니다. 생각도 좋은 생각만 해야 하는 이 때에 태교를 위해 음악을 듣고, 즐거운 생각만 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습니다. 모두 아기를 위해서지요. 엄마의 기분이 아기에도 전달되기 때문에 항상 즐거워하고 행복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아기에게 엄마 아빠의 목소리도 들려줘야 합니다.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저는 책읽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수백페이지짜리 전문서적 읽으라는 건 아니고요, 아기에게 들려줄 책이라면 동화책이 딱입니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기도 엄마도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요.

 

  노경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동화작가면서도 청소년소설도 쓰는 멋진 작가지요. 이야기도 잘 만들고 글솜씨도 좋아서 읽기 편하고 이해도 잘 되는 글을 쓰는 작가라서 좋아합니다. 직접 창작한 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옛 이야기를 편집도 했네요. 노경실만의 문체로 재탄생한 이야기들을 읽어보니,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그대로 읽기만 해도 꼭 아기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노경실 작가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섬세하게 썼습니다.

 

  문장만 좋은 게 아닙니다. 구성도 참 좋습니다. 이야기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핫, 책 뒤에 CD가 있어서 그 장면에 맞춰 음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편집이 아주 친절하지요? CD가 함께 들어 있어서 태교음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책입니다. 게다가 그림도 좋습니다. 책 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다음 장면에 나올 그림이 기대될 정도입니다. 요렇게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엄청난 내공을 쌓았나 봅니다. 그림은 백두리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요런 그림 정말 좋아요.

 

  오래전부터 들어온, 봐온 동화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동화도 있습니다. 동화작가가 쓴 거라 그런지 정말 잘 가려 정리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화 중에 고른 동화니까 얼마나 좋을까요. 아기에게도 딱, 엄마에게도 딱, 아빠에게도 딱 맞는 동화로 잘 골랐으리라 생각됩니다. 아기와 엄마의 교감을 위해 고르고 골랐을 테니까요.

 

  동화를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교중이냐고요? 아핫, 아닙니다. 음,,, 아마도 올 겨울 쯤 태교중이지 않을까 짐작을 해봅니다만... 곧 생길 둘째를 위해 미리미리 준비중입니다. 첫째 땐 그림책 등을 읽어줬는데, 둘째 땐 이 동화책으로 읽어주려고 합니다. 태교에 적합한 동화들로 엄선했으니 태교에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에 수록된 동화를 하루에 한 편씩만 읽어줘도 태교가 저절로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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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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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하게 꿈에 대해 얘기해보자. 생각해보면 거창하다고 할 것까진 없지만, 암튼 꿈은 거창한 거니까.

  태어나서 처음 꿈이란 걸 가져본 게 일곱살 때였던 것 같다. 7살이면 몇 년 전이냐, 1983년에 난 과학자가 돼서 로봇청소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날마다 청소하는 엄마를 쉬게 해드리려고 생각한 꿈이었다. 하~~ 첫 꿈을 이룬 건가? 난 가전제품을 만드는 개발자다. 로봇청소기 회사에 입사하진 못했지만 여러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15년 째 살고 있다. 난 개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이걸 꿈이라고 하기엔 좀 뭐시기하다. 그럼 정말 꿈이란 걸 가져본 게 뭐였을까?

 

  그 다음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그것도 국어선생님. 난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되어 학생들 가르치며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성적이 문제. 아핫. 국어선생님을 하기엔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잉? 이게 웬 개소리? 국어선생님을 하기엔 영어실력이 부족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근데 사실이다. 난 영어를 너무 못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국어선생님이 되려는데 영어를 못해서 못 됐다니 정말이지 너무 웃긴다. 암튼 난 국어선생님을 포기했어도 소설은 쓰고 있다. 소설 쓰기는 영어실력이 부족해도 상관 없기에... 으핫. (여기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고등학교 성적표를 잠시 소개하면, 내 성적표는 수수수수수수수수 가 수수수수수 였다. '가'는 영어. 이제 이해가 좀 될 것이다.)

 

  영어를 못해서 국어선생님을 포기하고 식당에 들어가서 요리를 했다. 근데 이게 웬걸. 적성에 딱 맞는 거였다. 요리가 너무 재밌더라는 것. 난 요리를 미친듯이 배웠다. 아침10시 출근에 밤10시 퇴근이 정해진 근무시간이었지만, 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일했다. 그냥 요리가 미치도록 좋았다. 다른 요리사들은 정해진 일만 하고는 쉬었지만, 난 내 일을 마치고는 남의 일까지 전부 거들어줬다. 칼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쪼가리 시간만 나면 칼을 갈았고, 칼질을 배우기 위해 채소란 채소는 내가 다 썰었다. 모든 채소를 내가 썰려고 2시간이나 먼저 출근한 것. 내가 일했던 식당은 한식 전문점이었고 700석이나 되는 큰 식당이었다. (내 소설 '사랑은 냉면처럼'의 배경과 비슷하다.) 조리사만 20여명인 이 큰 식당에서 난 겨우 20살짜리 막내였다. 난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열정은 가장 뜨거웠다. 이런 사람이 사고친다. 딱 1년이 지나 21살이 되어서는 식당 내 20여 명 중에 내가 칼질을 3번째로 잘했다. 위에 수두룩한 선배들이 질투를 했음은 당연하다. 주방장은 참 신기한 녀석이라고 내게 특별히 여러 기술들을 알려줬을 정도다. 대단한 놈이라고, 일 낼 놈이라고, 큰 요리사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직업은 개발자다.

 

  어쩌면 난 "되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과 "꿈"을 구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로봇청소기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국어선생님이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일류요리사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내 꿈은 "소설가"였을 뿐이며 앞으로도 "소설가" 뿐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쓴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소설을 쓴다. 출판사들이 내 소설을 거절하고 거절해도 난 계속 쓴다. 왜냐면, 꿈이니까.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쓰는 것만 해도 될까?

 


 

  "난 1만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하다."

  _ 강레오 《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중에서

 

  식당에서 일하며 일류요리사를 갈망하던 그시절 만큼 노력하고 있는 걸까? 남들보다 2시간 먼저 출근해서 내 일 다 끝내고 다른 사람들 일까지 뺏어서 했던 열정만큼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밤을 지새며 소설을 쓴다. 그런데 난 이름표만 작가지망생은 아닐까? '얼마나 많은 글을 쓰며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글을 썼는지가 중요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에서처럼 나를 만드는 건 날이 선 '날'일 것이다. 칼질의 생명은 칼날이다. 칼이 잘 들어야 채소가 동일한 크기로 썰린다. 내가 20여명의 조리사 중에 3번째로 칼질을 잘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날이 선 칼날 덕분이었다. 나는 칼에 날을 세우기 위해 칼 가는 법을 터득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갈고 갈고 또 갈았다. 계속 갈았다. 그렇게 나는 칼 가는 법을 터득했고 내 칼은 식당에서 3번째로 잘 드는 칼이 되었다. 칼날이 무뎌지면 내가 원하는 대로 채소를 썰 수 없다. 요리의 생명은 칼질이다. 그렇다면 소설쓰기의 생명은 뭘까? 난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라는 기성작가들의 조언에 기대에 오늘도 엉덩이로 글을 쓴다. 언젠가는 소설가가 될 날이 오겠지.

 


 

  오늘 이 작은 책이 내게 묻는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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