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1.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2. 모든 길은 걸음의 흔적이다. 그리고, 흔적(痕迹)은 말 그대로 발뒤꿈치의 상처, 헌데를 가리킨다.
3. 그러면 누가 걷는가? - - -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상처를 받은 탓에 세계가 세속이라는 미로(迷路)로 바뀐 사람을 말한다. 내 오래된 명제를 반복하자면, 당신들은 이동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걷는다.
4. 풍경을 벗기면 벗길수록 죄가 솟구치는 자리에 뭔지 모를 것이 끊어져 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을 밀지 못해서 잡지 못해서
살이 붙어 흉이 많다
5.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출처>
1. p.5 『풍경과 상처』 (김훈/문학동네/1994)
2. p.190 『산책과 자본주의』 (김영민/늘봄/2007)
3. p.25 상동
4. p.90 「순정」,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창비/2006)
5. p.43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윤후명/민음사/1992)
* 길 위에 피딱지가 앉았다. 그 피딱지는 내 발뒤꿈치를 덮고 있는 상처에서 연원한다. 흉이 많은 발이 부끄럽다. 아직 이 어둡고 눅진한 땅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어깨를 쳐 돌아보면 바람과 낙엽과 귀신의 장난질이다. 이렇게 가을은 가도 좋은가.
네가 오지 않았는데, 벌써 문이 닫히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