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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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성 영장류  질환-인간이라는 병적 존재가 지구 전역에 퍼져 지구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 병명-이 생명체의 서식지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저자의 문제 의식은 인본주의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할 주체 역시 인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칼 하기는 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나  인류가 진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해 회의했던 탈근대 시대의 보편적 지성의 한 흐름이었다. 근대의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일반화 되었던 역사 발전에 대한 사회 진화론적 여러 주장들은 자본주의 영속성에 대한 낙관론이나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의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인류의 대안이 될수 없다는 생각이 퍼졌던 60-70년대의 사회과학과 철학적 흐름은 대부분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부정으로 부터 시작 되었다. 또한 인류나 사회의 진화나 진보에 대한 환상도 대부분 부정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회의 역시 이성과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어떤 이성이고 어떤 합리성인가에 있지 않을까? 연장선상에서 기계나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물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찌들어 지구와 자연과 생태를 복리와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파괴하는 세력에 맞서 이런 생각을 깨뜨릴 필요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만으로는  이러한 강력한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인간이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인간 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지구에 대해 악마일 수도 천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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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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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어떤 시대 였을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거침없이 콘크리트의 시대라고 답한다. 콘크리트가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나무로 형틀을 짜고 철근, 모래, 자갈, 시멘트를 배합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콘크리트가 완성 된다. 콘크리트는 장소적 보편성 뿐 아니라 어떤 조형도 가능한 또 하나의 보편성, 즉 형태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형틀만 잘 만들어 집어넣으면 그 뿐이다. 거기다 콘크리트는 표층의 자유도 허락한다. 나무, 돌, 알루미늄 등 무엇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콘크리트의 장점 속에 숨어 있는 다양성의 파괴에 주목한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기술, 다양한 건축 재료가 콘크리트라는 단일성에 의해 파괴되어 자연의 다양성, 건축의 다양성이 상실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속과 겉이 다른 콘크리트의 탁월한 화장술에도 불편해 한다.

저자는 콘크리트라는 편리한 소재를 버리고 그 대신 자연과 장소에서 건축 소재를 구하는 힘겨운 도전에 나선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설계사무소 대표가 아니라 건축자재 회사의 대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맞는 설계를 구상하고 그 장소에 맞는 건축 재료를 가능한 현장 주변에서 찾는다. 자연과 건축물과 건축소재가 자연스럽게 조화 되는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건축소재를 그냥 쓰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이리저리 구멍을 뚫거나, 격자를 만들거나, 철을 결합시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구사 한다.

돌미술관을 만들 때는 일반적인 조적조 방식을 뛰어넘어 돌을 1/3씩 빼 내거나 기상천외한 돌격자를 만들기도 한다.

쵸쿠라 광장에서는 오타니석을 파형철판에 끼워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대나무를 쓸 때는 고심 끝에 대나무 속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어 쪼개지는 단점을 극복한다.

이 책만 보면 저자는 이익을 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건축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면 주어진 여러 가지 제약은 어느새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조건이 되어 버린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바람과 햇빛, 풍광 같은 자연과 장소와 건축을 하나로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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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한 인문주의자의 피렌체 역사.문화 기행 깊은 여행 시리즈 2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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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주마간산 격으로 관광을 한다. 패키지여행을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여행 이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하려다보니 늘 시간에 쫒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샅샅이 경험하는 방식은 언제나 바램으로 만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피렌체를 열 번이나 갈 수 있었다니!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실컷 구경하고 중앙시장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자의 발길을 상상하면 나는 언제 저렇게 가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보티첼로의 그림이나 다비드를 보면서 작자처럼 행복한 감동의 정취에 빠져 들 수 있으려면 이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직접 진품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면 책에 실린 그림이나 작품들을 자꾸 반복해서 보게 만든다.


압권은 역시 보티첼로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작자는 운 좋게도 다른 관람객이 없는 이른 시간에 혼자 그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그림만도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데 진품을 그것도 혼자 한참 동안 바라보았을 그 순간이 얼마나 벅찼을까? 예컨대 루브르의 모나리자나 바티칸 성당의 천지창조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사람들 틈에 끼어 밀려가면서 본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인 비너스는 보티첼로의 붓에 의해 탄생한다. 상상 속의 비너스가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인간 세계에 탄생한 것이다. 신화 속에서 바다 거품(아프로디테의 아프로는 거품이라는 뜻)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보티첼로의 상상력과 손길이 우리에게 비너스를 선물해 준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 탄생의 모습이 아니라 조개를 타고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바람에 의해 흘러와 육지에 오르는 순간의 그림이다. 결혼 선물로 그려졌다는 추정에 의하면 순결한 여인이 결혼을 앞두고 행복과 출산을 축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너스의 왼손이 잡고 있는 머리카락이나 호라이가 입혀주려고 들고 있는 망토 끝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 있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얼굴은 마냥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어딘지 애잔함이 서려있다. 신부들이 자기 집을 떠나 미지의 신랑집에서 살아가게 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리라. 어딘지 껑충해 보이는 10등신 몸이나 이상하게 꺾여있는 목 등 평범하지 않은 신체이지만 어딘지 청순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그 자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상징하는 ‘꽃의 성모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피렌체 시내 어디에서나 이 성당의 두오모(돔)가 보인다. 성당 앞에 있는 산조반니 세례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한 기베르티의 황금문이 있다. 그는 이 문을 제작하는데 30년을 소비한다. 성서의 구양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10개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작자는 다빈치의 수태고지, 라파엘로의 작품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나 바쿠스 등 여러 걸작들을 섭렵하고 아르노 강이나 궁전들 심지어 가장 번화한 곳인 중앙시장까지 독자들을 끌고 다닌다. 피렌체를 두 번 방문 하면서도 겨우 건성으로 구경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나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 작품들이 작자의 글을 통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시뇨리아 광장의 다빈치는 복제품이라는데 언제 다시 가서 진품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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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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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는 두 개의 큰 축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한 축은 후카에리 라는 여고생이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중심으로 주인공 덴고와 비밀집단 ‘선구’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다른 한 축은 여자들을 폭행하는 못된 남자를 응징하는 아오마메와 버드나무집 노부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는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죽이면서 복잡하게 서로 얽혀들다가 덴고와 아오마메의 극적인 상봉을 향해 달려간다.
소설 속에는 리틀 피플, 목소리, 공기 번데기, 두 개의 달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섞인다. 평범한 사람들도 있지만 선구의 리더와 후카에리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1Q84는 무엇보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소설이다. 총 3권의 소설 중에 1권과 2권은 아오마메의 시점과 덴고의 시점이 사이좋게 한번 씩 교차하면서 전개한다. 3권에는 2부에 잠깐씩 등장하는 우시카와가 덴고와 아오마메와 함께 중요 인물로 부상한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둘 다 어려서 비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둘은 초등학생 때 동병상련의 호감을 갖고 둘 만 있는 교실에서 운명적으로 손을 잡는다. 이 특별한 경험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아오마메는 광신적인 ‘증인회’ 신도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독특한 생활 방식 때문에 왕따가 된다. 견디다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와 친척집에서 산다. 이 상처로 아오마메는 찡그리면 얼굴이 괴물처럼 뒤틀리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사랑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고 친구도 거의 사귀지 못한다. 거의 유일한 친구인 다마키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만다. 가장 최근에 알게 된 아유미 마저 살해된다.    

덴고는 어머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산다.  NHK수금원인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원활한 수금을 위해 어린 덴고를 데리고 다닌다. 덴고는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젖먹이 때 어머니와 관련된 흐릿한 기억은 평생 상처로 남아 있다. 어디서든 그 생각이 떠오르면 덴고는 자기도 모르게 온 몸이 마비되는 기묘한 경험을 한다. 그는  자기 또래 여자들과는 연애도 잘 하지 못하고 연상의 여자가 훨씬 편하다.

1,2권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여고생 후카에리는 어린 시절 선구에서 특이한 경험을 하고 열 살 무렵 그 곳을 탈출한 후 아버지 친구 집에서 산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아이지만 난독증이 있어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말투도 독특하다. 사람들 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3권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우시카와 역시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부모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다. 결혼은 했지만 아내와 딸들에게 조차 버림 받는다. 집요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일에는 철저하지만 본의 아니게 덴고와 아오마메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작가는 재일 교포 문제의 뿌리가 되는 종전과 함께 한반도 출신자들이 일본 국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을 ‘1Q84’에서 언급한다. 자위대 특수부대 출신이고 게이이고 노부인을 위한 충직한 해결사인 다마루를 조선인으로 그린다.

부모는 모두 부산 출신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할린 항만 부두에서 일하다 소련군의 점령으로 포로가 된다. 다른 일본인들은 송환되었지만 조선인들은 일본 정부의 거부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다. 북으로 갈 수는 있었지만 부산이 고향인 그들은 북으로 갈 바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사할린의 식량 사정은 최악이었고, 일본인 귀환자의 손에 맡겨 다마루를 먼저 일본으로 보낸다. 그것으로 다마루는 부모와 영영 헤어져 일본에서 고아로 자란다. 얼마나 상처투성이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가는 설정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최대한 쓸데없는 장식을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체호프의 소설 쓰기 원칙을 인용한다.  체호프는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1Q84는 이 원칙에 충실하지 않는다. 필연성이 부족하거나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경찰 아유미의 등장과 사망은 전체 소설 전개와 필연적 관계가 없다. 아유미와 아오마메의 자유분방한 하룻밤 남자 헌팅을 묘사해서 소설적 재미를 높이기 위한 억지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아오마메를 1984년의 세계에서 1Q84년의 세계로 안내하는 택시기사도 의문의 인물이다. 뭔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인데 아오마메가 그 택시를 타는 필연적인 설명도 없다.

후카에리와 그를 키워 준 에비스노선생은 1권과 2권 중반까지는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갑자기 미미해 지다가 사라져 버린다. 에비스노선생이 후카에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상황으로 만들면서 까지 파헤치려고 한 농촌 코뮨에서 종교집단으로 변신한 ‘선구’라는 공동체도 한껏 궁금증만 키우다가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목소리의 정체나 역할이나 의미도 끝까지 알 수 없다. 리틀 피플과 그들이 만드는 공기 번데기의 정체도 물음표이다. 소설의 중심 주제인 노란색의 정상적인 달과 왜소한 초록색의  달인 두 개의 달에 대한 의문도 끝까지 남는다. 왜 두 개의 달이 보이는지 그것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왜 몇 사람에게만 보이는지도 설명이 없다. 공기번데기를 통해 생겨나는 마더와 도터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1984년과 1Q84년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왜 어떻게 겹쳐서 전개되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두 개의 달 외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비밀과 독특한 상황을 설정하고 전개되는 소설에서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작인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느꼈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발한 소설적 상황을 전개하며 인간의 본성인 호기심을 잔뜩 고조시키고 빠져들게 하지만 뒷심이 부족하여 이야기를 다 주어 담지 못하고 흐지부지 평범한 결말로 마무리 하는 게 아닌가하는 독한 생각도 든다.  

그래도 1,2권은 속도도 빠르고 상당한 소설적 재미를 가지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3권의 전개는 매우 지루하다. 아오마메는 집에 틀어박혀 이런 저런 생각이나 NHK수금원의 방문으로 페이지를 채우고 덴고는 아버지 병실을 지키면서 시간을 때운다. 앞에서 말한 숱한 의문들은 뒤로한 채 말이다.

3권에서 후시카와의 급부상은 비밀을 파헤치는 역할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파헤치는 비밀이 대부분 독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 싱겁다.

소설 전체로 볼 때 1Q84년이라는 특별한 세계를 설정한 필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아오마메가 동정녀 임신을 통해 덴고의 아이를 갖고 덴고를 만나게 하기 위해 1Q84년의 세계를 만든 것인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전하고 싶었을까? 덴고와 아오마메라는 상처 많은 인물들이 초등학교 때 가졌던 첫사랑을 끝까지 간직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해피엔딩 하는 청춘소설을 쓴 것 이라면 너무 생뚱맞다.

작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1984년으로 되돌아 온 아오마메의 생각을 통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협과 위험이 숨어있고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이 가득한 세계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너무 싱거운 결론 아닌가? 누구라도 평생 사랑한 사람과 극적으로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1Q84년이든 1984년이든 더 나쁜 세상이든 긍정적 희망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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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대학 - 대한민국 청춘, 무엇을 할 것인가?
이인 지음 / 동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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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인생을 공부할 수 있는 1년 과정의 강좌를 개설한 기발하고 당찬 청춘이 있다. 대학에서 변변한 공부를 하지 못한 저자는 남들 다 알아주는 변변한 직장을 갖는 대신 발품을 팔고 책을 뒤지며 대학에서 못다한 변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쌓이면 넘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저자는 혼자 알기 아까운 세상의 지혜를 나누고자 인생의 스승을 찾아다니며 쌓인 내공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 놓았다. 대학에서 당연히 공부해야 할 내용이지만 현실의 대학들이 놓치고 있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질문과 고수들의 답변을 대학 강좌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철학하는 박남희선생님은 " 모든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고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고 낙담하고 절망할 때도 철학하는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 자기 안에 있는 삶의 충동성, 역동성을 끊임었이 맛보기 때문"이란다. 이게 왠 자신감? 하지만 지금 우울하고 낙담하고 있는 분들 밑져야 본전인 솔깃한 말 아닌가?    

이택광선생님은 말한다. " 문자적 계몽에서 실천적 계몽으로. 이 두가지가 통합되는 작업". 니체가 한 말인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이어지는 인문학의 위기와 인문학의 열풍이 동시에 나타나는 아이러니한 시대상황에 대한 해석. 

저자가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스승들이 문자적 계몽을 꾀하며 쓴 책들을 많이도 읽었다는 점도 기특하다. 인터뷰의 바탕이 튼튼하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꼭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병권씨의 명랑사회 만들기나 김미화씨가 남편하고 라틴재즈밴드를 만들어 공연하고 다녔다는 내용도 흥미있었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10대와 20대가 자기 인생에 대한 통속적이지 않은 진지한 계획을 세운다면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내용들이 가득하다. 물론 정답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정답은 어차피 구체적인 자기 현실에 기반해서 스스로 찾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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