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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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는 두 개의 큰 축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한 축은 후카에리 라는 여고생이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중심으로 주인공 덴고와 비밀집단 ‘선구’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다른 한 축은 여자들을 폭행하는 못된 남자를 응징하는 아오마메와 버드나무집 노부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는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죽이면서 복잡하게 서로 얽혀들다가 덴고와 아오마메의 극적인 상봉을 향해 달려간다.
소설 속에는 리틀 피플, 목소리, 공기 번데기, 두 개의 달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섞인다. 평범한 사람들도 있지만 선구의 리더와 후카에리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1Q84는 무엇보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소설이다. 총 3권의 소설 중에 1권과 2권은 아오마메의 시점과 덴고의 시점이 사이좋게 한번 씩 교차하면서 전개한다. 3권에는 2부에 잠깐씩 등장하는 우시카와가 덴고와 아오마메와 함께 중요 인물로 부상한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둘 다 어려서 비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둘은 초등학생 때 동병상련의 호감을 갖고 둘 만 있는 교실에서 운명적으로 손을 잡는다. 이 특별한 경험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아오마메는 광신적인 ‘증인회’ 신도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독특한 생활 방식 때문에 왕따가 된다. 견디다 못해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와 친척집에서 산다. 이 상처로 아오마메는 찡그리면 얼굴이 괴물처럼 뒤틀리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사랑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고 친구도 거의 사귀지 못한다. 거의 유일한 친구인 다마키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하고 만다. 가장 최근에 알게 된 아유미 마저 살해된다.    

덴고는 어머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산다.  NHK수금원인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원활한 수금을 위해 어린 덴고를 데리고 다닌다. 덴고는 그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젖먹이 때 어머니와 관련된 흐릿한 기억은 평생 상처로 남아 있다. 어디서든 그 생각이 떠오르면 덴고는 자기도 모르게 온 몸이 마비되는 기묘한 경험을 한다. 그는  자기 또래 여자들과는 연애도 잘 하지 못하고 연상의 여자가 훨씬 편하다.

1,2권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여고생 후카에리는 어린 시절 선구에서 특이한 경험을 하고 열 살 무렵 그 곳을 탈출한 후 아버지 친구 집에서 산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아이지만 난독증이 있어 책을 읽지 못하고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말투도 독특하다. 사람들 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3권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우시카와 역시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부모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다. 결혼은 했지만 아내와 딸들에게 조차 버림 받는다. 집요하고 치밀한 성격이라 일에는 철저하지만 본의 아니게 덴고와 아오마메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작가는 재일 교포 문제의 뿌리가 되는 종전과 함께 한반도 출신자들이 일본 국적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을 ‘1Q84’에서 언급한다. 자위대 특수부대 출신이고 게이이고 노부인을 위한 충직한 해결사인 다마루를 조선인으로 그린다.

부모는 모두 부산 출신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할린 항만 부두에서 일하다 소련군의 점령으로 포로가 된다. 다른 일본인들은 송환되었지만 조선인들은 일본 정부의 거부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없다. 북으로 갈 수는 있었지만 부산이 고향인 그들은 북으로 갈 바에는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사할린의 식량 사정은 최악이었고, 일본인 귀환자의 손에 맡겨 다마루를 먼저 일본으로 보낸다. 그것으로 다마루는 부모와 영영 헤어져 일본에서 고아로 자란다. 얼마나 상처투성이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가는 설정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최대한 쓸데없는 장식을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던 체호프의 소설 쓰기 원칙을 인용한다.  체호프는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1Q84는 이 원칙에 충실하지 않는다. 필연성이 부족하거나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경찰 아유미의 등장과 사망은 전체 소설 전개와 필연적 관계가 없다. 아유미와 아오마메의 자유분방한 하룻밤 남자 헌팅을 묘사해서 소설적 재미를 높이기 위한 억지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아오마메를 1984년의 세계에서 1Q84년의 세계로 안내하는 택시기사도 의문의 인물이다. 뭔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인데 아오마메가 그 택시를 타는 필연적인 설명도 없다.

후카에리와 그를 키워 준 에비스노선생은 1권과 2권 중반까지는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갑자기 미미해 지다가 사라져 버린다. 에비스노선생이 후카에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상황으로 만들면서 까지 파헤치려고 한 농촌 코뮨에서 종교집단으로 변신한 ‘선구’라는 공동체도 한껏 궁금증만 키우다가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목소리의 정체나 역할이나 의미도 끝까지 알 수 없다. 리틀 피플과 그들이 만드는 공기 번데기의 정체도 물음표이다. 소설의 중심 주제인 노란색의 정상적인 달과 왜소한 초록색의  달인 두 개의 달에 대한 의문도 끝까지 남는다. 왜 두 개의 달이 보이는지 그것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왜 몇 사람에게만 보이는지도 설명이 없다. 공기번데기를 통해 생겨나는 마더와 도터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하다. 1984년과 1Q84년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왜 어떻게 겹쳐서 전개되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두 개의 달 외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비밀과 독특한 상황을 설정하고 전개되는 소설에서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작인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느꼈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기발한 소설적 상황을 전개하며 인간의 본성인 호기심을 잔뜩 고조시키고 빠져들게 하지만 뒷심이 부족하여 이야기를 다 주어 담지 못하고 흐지부지 평범한 결말로 마무리 하는 게 아닌가하는 독한 생각도 든다.  

그래도 1,2권은 속도도 빠르고 상당한 소설적 재미를 가지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3권의 전개는 매우 지루하다. 아오마메는 집에 틀어박혀 이런 저런 생각이나 NHK수금원의 방문으로 페이지를 채우고 덴고는 아버지 병실을 지키면서 시간을 때운다. 앞에서 말한 숱한 의문들은 뒤로한 채 말이다.

3권에서 후시카와의 급부상은 비밀을 파헤치는 역할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파헤치는 비밀이 대부분 독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 싱겁다.

소설 전체로 볼 때 1Q84년이라는 특별한 세계를 설정한 필연성은 부족해 보인다.  아오마메가 동정녀 임신을 통해 덴고의 아이를 갖고 덴고를 만나게 하기 위해 1Q84년의 세계를 만든 것인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전하고 싶었을까? 덴고와 아오마메라는 상처 많은 인물들이 초등학교 때 가졌던 첫사랑을 끝까지 간직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해피엔딩 하는 청춘소설을 쓴 것 이라면 너무 생뚱맞다.

작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1984년으로 되돌아 온 아오마메의 생각을 통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위협과 위험이 숨어있고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이 가득한 세계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서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너무 싱거운 결론 아닌가? 누구라도 평생 사랑한 사람과 극적으로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게 1Q84년이든 1984년이든 더 나쁜 세상이든 긍정적 희망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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