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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전집 1

사드 사후 2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사드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번에 한국에서도 '사드 전집'이 나왔다니 기대가 크다. 엽기적이고 음란하다는 사드의 악명이 진실일까?  고전일지 원전일지 아직 평가하기 이르지만 해설서나 2차 해설서를 통해 보는 사드나 막연히 이미지화된 사드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 사드의 사상과 생각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고 즐거운 일일 것이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의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둘 이상이 관련된 행위인 섹스의 관용할 수 있는 한계는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쾌락과 삶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 읽으면서 생각할 것들이 많을 것 같다.

 

 

 

* 노동의 새벽 - 30주년 개정판

노동자가 쓴 절절한 노동시로 1980년대를 울렸던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나아졌을까? 크레인에 옥탑에 광고판에 올라가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오늘날의 노동 현실은 모습만 바꾸고 있을 뿐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발전이 안 되고 있는 분야가 노동 현장 아닌가?  우리 주변에 이 시집을 다시 읽을 이유는 넘쳐나고 있다. 노동을 바꾸지 않고는 이제 단 한발짝도 더 나갈 수 없는 한계에 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노동을 우회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들(기부, 봉사, 시민운동, 문화 운동 등) 이 많았고, 많은 경우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이 시집이 저자를 포함해서 우리 사회 모두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공감을 환기 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디 마이너스

80년대 학번이 아니라 80년 언저리에 태어난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80년대 학번의 학생운동에 대한 자료와 책들은 많지만 후자들에 대한 책들은 드물다. 2000년 전후의 학생운동을 그린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들의 사랑과 고민과 한숨과 결단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씨앗들을 볼 수 있을까? 

 

 

 

 

 

 

* 식탁의 기쁨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음식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행복감 1순위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나누며 대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음식과 먹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식탁의 기쁨을 제대로 안다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최소한 든든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을 때 먹고사는 문제 너머의 의미와 가치와 연대를 추구한다니 먼저 식탁의 기쁨을 아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 칼 융의 심리 유형

오늘날 많은 심리 유형 분석의 모태가 되는 책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 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교과서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 안에는 내향성과 외향성, 이성과 감성, 직관과 감각 같은 것으로 부를 수 있는 성향들이 다양하게 결합되어 있다. 나는 어느 쪽이 더 발달된 사람인지 균형있는 삶을 위해 더 배려할 성향은 무엇인지 등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다. 특히 40대 근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책이다.

 

 

 

 

 

 

추천 순서는 식탁의 기쁨, 노동의 새벽,  디 마이너스, 사드 전집, 심리 유형 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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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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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복권되고 국가적 기념일로 지정되고 희생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존중되고 학살 책임자들이 법정에 서면서 이제 5.18의 한은 어느 정도 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아는 5.18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우리가 풀어야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의 진실이든, 개인의 진실이든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사건 모두가 사실이라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피하고 싶은 아픔이 아니라 더 다가서고, 더 느끼고 싶은 종류의 아픔이었다. 개인이든 사회든 이런 아픔과 고통을 딛지 않고는 극복이나 발전은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고 치유 받아야 할 분들이 거꾸로 투쟁의 선봉에 서도록 밀려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이 자꾸 겹쳐졌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라는 최소한의 요구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은 5.18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의 하나일 것이다. 5.18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분들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이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5살, 중학교 3학년, 밤톨같이 깎은 머리의 ‘소년’ 동호의 이야기다. 동호보다 먼저 총에 맞아 죽은 친구 정대와 실종된 누이 정미의 이야기다. 동호와 함께 시신을 수습했던 수피아여고 3학년 은숙과 노동자 선주의 이야기다. 동호를 살리려 애썼고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대학신입생 진수의 이야기다. 동호의 어머니와 장미넝쿨이 우거진 중흥동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이들이 특별히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우리와 우리 아이, 친구, 부모들의 친숙한 이미지가 상상할 수 없이 참혹한 이야기와 겹치면서 공포심과 공감이 함께 느껴졌다. 평생을 끔찍했던 고문의 기억과 상처 속에 죽은 사람처럼 살아온 선주가,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면 다시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독백하는 장면은 처연하고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작가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라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는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 보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다.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다.”

   
▲M16자동소총을 휴대한 공수부대는 도망치다 쓰러진 시민마저 뒤쫓아가서 곤봉으로 내려치고 군화발로 짓밟았다. (출처 : 5.18기록관 홈페이지)

   
▲망월묘역 관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출처 : 5.18기록관 홈페이지)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서도 5.18의 열흘 동안과 진압 이후의 인고의 시간들을 복원해낸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 이렇게 극심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몸서리치는 잔인성을 통해 작가는 인간 보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까지 나아간다.

 

5.18은 반복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의 잔인함을 포상 받은 군인들은 광주에서 동족을 상대로 같은 짓을 반복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인간은 동일한 잔인성을 반복해왔다. 2009년 용산을 보며 작가는 “저건 광주잖아”라고 중얼거린다. 광주는 고립된 것,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정말 잘 쓴 작품이지만 단순히 ‘잘 쓴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소설 쓰는 기예를 논하기에는 내용이 갖는 무게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평론가 신형철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작품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실에 기초한 ‘소설을 뛰어넘은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5.18이 없었다면 87년 6월이 그렇게 빨리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87년 이후에 그나마 누리고 있는 성취는 상당 부분 5.18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는 5.18과 6월항쟁의 피와 땀의 열매를 다 빨아먹고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등 상황이 자꾸 더 나빠지고 있다. 5.18이 마무리되어 일단락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작가의 눈으로 보면 세월호도 또 하나의 광주다.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5.18이 6월항쟁을 낳았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면, 세월호 참사는 제2의 6월항쟁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억울한 죽음과 남아있는 유족들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87년 6월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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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 가능하다면 두사람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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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권력이란~~~ 등 한교수님의 책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여러번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번에 투명사회 읽기 시작하고 있는데 저자의 육성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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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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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늘 바쁘고 시간이 없다. 잠은 부족하고 달콤한 잠을 자기도 어렵다. 시간은 쏜 살 같이 날아가 사라져 버린다.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는지 생각하면 불안하고 허망하다. 한번 뿐인 내 인생의 시간이 이렇듯 덧없이 흘러가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2년을 강타한 ‘피로사회’(건치신문 북카페에 2012년 5월에 소개)의 저자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를 가지고 다시 왔다. ‘피로사회’와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책이다. ‘피로사회’가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이후의 노동의 성격과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루고 있다면 ‘시간의 향기’는 이것과 시간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피로사회가 시간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을 일에 묶어두고,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휴식도 재충전의 시간이고 결국 일의 한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일이나 휴가가 유급 휴일과 유급 휴가가 된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일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잠잘 때도 일의 시간을 데리고 간다고 한다. 우리의 잠자리가 편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일의 시간에는 향기가 없다. 저자는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이.

 

저자는 근대 이전의 신(화)적 세계나 근대의 세계는 이야기가 있는 시대라고 규정한다. 신학적 세계관은 신과 구원의 세계관을 통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근대는 자유와 행복이라는 현세의 희망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야기의 시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후기 근대,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사라져버렸다. 신, 이념, 인류의 목표 같은 모두를 포괄하는 공통의 지향점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목적과 의미를 잃은 인간은 세계나 사물도 덧없게 느끼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무상해진다. 인간은 급격하게 공간과 시간을, 세계를, 공동의 삶을 상실해 간다. 남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그 작은 육체라도 건강하게 지키려고 악착같이 애쓰게 된다. 그것밖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육체의 건강이 세계와 신을 대신한다. 죽음을 넘어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의 인간은 그토록 죽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나이만 먹을 뿐 늙지는 않는다.”(16쪽)

 

그렇다고 이야기의 시간이 사라진 것을 애석해 할 이유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야기의 종언, 역사의 종언은 신학과 목적론이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가 있는 삶의 시간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사색적 삶을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사색적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사색과 노동에 대한 사유들을 돌아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누었다. 한가로움이 아닌 영역(아스콜리아, 노동의 영역)과 한가로움(스콜레)의 영역, 쉼 없음과 쉼으로 삶을 구분한 것이다. 노동은 꼭 해결되어야 할 삶의 욕구에 묶여 있지만 한가로움은 강요도 걱정도 없는 자유의 공간을 열어준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실존의 본질은 노동이 아니라 한가로움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로운 인간이 사는 삶의 양식(비오이)을 세 가지로 구별했다. 쾌락(헤도네)을 추구하는 삶, 폴리스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업적을 이룩하는 삶(비오스 폴리티쿠스, 영예와 미덕을 추구했다.), 진리의 사색적 고찰에 헌신하는 삶(비오스 테오레티코스) 이다. 이 세 가지의 삶은 모두 삶의 불가피한 필요와 강제인 노동에서 자유롭다. 이 중에 최고의 행복은 진리에 대한 사색적 헌신이라고 했다.(139쪽)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 등 중세까지는 사색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중세 후기의 토마스 무어는 ‘유토피아’에서 “누구나 하루에 6시간씩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가로움과 사색에 몰두한다.”고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노동에 삶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루터는 직업으로서의 일을 신의 부름과 연결시켰고, 캘빈은 노동에 구원의 의미를 부여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현세적 금욕주의는 일과 구원을 결합했다. 일은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삶의 목표가 되고 ‘한가로움’ 같은 시간 낭비는 무거운 죄악이 된다.

 

근면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 산업화는 기계화만이 아니라 근면한 인간으로의 훈육의 과정이기도 했다. 저자는 여가사회, 소비사회라는 것도 노동사회의 이면일 뿐이라고 한다. 점점 증가하는 생산성은 점점 더 많은 여가시간을 만들어내지만 여가시간은 더 고차적인 활동이나 한가로움이 아닌 일에서의 회복이나 소비에 사용될 뿐이다.

 

저자는 이렇게 모든 사색적 요소가 추방되어버린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귀결되어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 질식할 것이라고 한다. 사색적 삶을 되살려야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행동 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이다.” 저자는 ‘노동의 민주화’와 ‘한가로움의 민주화’의 결합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한다.(182쪽)

 

저자가 강조하는 한가로움과 사색적 삶,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가 있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저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많이 인용하는데 그 중에 마르셀이 보리수 꽃잎차에 담근 마들렌의 향과 맛을 보며 완전히 독자적인 전대미문의 행복감을 느끼는 장면을 향기로운 시간의 최고의 예로 든다. 또한 “섬세한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 보잘것없는 것, 사소한 것, 떠도는 것, 뒤로 물러서는 것 등, 폭력적인 손길에서 빠져나가는 모든 것.”(126쪽)을 인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시간의) 향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추억과 기억을 자양분으로 하는 사회, 느린 것과 긴 것을 먹고사는 사회일 것이라고 한다. 그는 조급성의 시대인 영화적 사회, 즉 시각의 영향이 두드러진 시대와 대비시키기도 한다. 즉각적인 향락이나 욕망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기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을 때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고도 한다.

 

이런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전달할까 생각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우연한 산보’(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타니구치 지로 작화)라는 만화이다. 이 만화는 작가가 사전 조사하지 않고, 옆길로 새고, 계획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무조건 걷고 본 경험을 그린 만화다. 주인공은 ‘목적 같은 거 없이 자기 마음대로 느긋하게 걷는데서 오는 기쁨’을 말한다. 같은 작가들의 ‘고독한 미식가’라는 음식 만화도 있다.

 

사색은 언어로 하는 것이고 언어는 생각뿐 아니라 대화의 도구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어원상으로 ‘친구나 연인에 속해있는’이라는 뜻이며 인간은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62쪽)고 말하고 있다. 나의 사색과 너의 사색이 만나고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가 섞여 우리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향기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과 함께라면 금상첨화겠다.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는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가로운 시간을 만들고 자기 자신과 인생과 세상에 대한 깊은 사색을 즐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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