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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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파노라마 '형제'
형제 1,2,3 위화 휴머니스트
 

2010년 11월 01일 (월) 전민용 gca027@paran.com
 

 


   
 
     
 
이 소설은 시대적으로 30 여년 전의 문화대혁명과 최근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시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 위화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학생이었고, 나중에 치과의사를 5년 쯤 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했다.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인데 글이 대단히 유머스럽고 인물들과 사연들이 특이하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문화대혁명의 반인간적인 면과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이렇게 생생하게 풀어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소설 ‘형제’의 형제는 이광두와 송강이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너무도 다른 둘은 친형제가 아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데리고 결혼하면서 형제가 된 사이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광두는 못생기고 엉뚱하고 다혈질이고 막무가내이지만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형이다. 송강은 건장하고 반듯하고 희생적이지만 고지식하고 비관적인 형이다. 둘은 일찍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류진 제일의 미녀 임홍을 이광두가 짝사랑하고 임홍과 송강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형제 관계는 끝장나고 만다.

이야기는 어린 이광두가 재래식 변소에 고개를 처박고 다른 칸에서 볼일을 보는 여자들 엉덩이를 훔쳐보다 딱 걸려 류진 시내를 돌아 경찰서로 끌려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알고보니 이광두의 아버지도 변소에서 같은 일을 하다가 똥통에 거꾸로 처박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똥통 속에 직접 들어가 시신을 끌어내어 집에까지 옮겨 준 사람이 송범평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건장하고 잘 생기고 류진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송범평과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은 결혼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이광두의 집은 박살이 난다. 송범평의 아버지가 지금은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렵게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지난 날 지주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 지주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성 강하고 누구에게나 존경받던 송범평은 갖은 고초를 겪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렇듯 문화대혁명 기간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참혹한 대우와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광두는 변소에서 본 여자 엉덩이 목격담을 팔아먹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는 어른이 된 후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 들어 엄청난 부를 모은다. 부를 모으는 방법이 너무도 풍자적이다.

예를 들면 그는 전국처녀미인대회를 개최하여 큰 돈을 번다. 여기에 참가하는 미인들은 자기가 처녀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육탄공세로 심사위원들을 매수한다. 이 와중에 인공처녀막을 팔아 돈을 챙기는 사람도 등장한다.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인간의 성과 몸이 한낮 상품으로 팔리는 중국식 시장경제의 문제들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시장경제는 결국 모든 사람들을 휩쓸어 간다. 반듯했던 송강마저 직장을 잃은 후 몸은 망가지고 결국 가짜 약을 팔아 돈을 벌게 된다. 심지어 가슴 커지는 크림을 팔기 위해  남자인 그가 가슴 확대 수술을 받기도 한다. 성형 수술은 한국식이 제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송강은 아내 임홍을 자신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임홍은 남편을 잃고 여자를 파는 포주가 되어 큰 돈을 번다. 송강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광두는 사업체를 모두 넘겨주고 고독과 회한 만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는 감정이입을 할 만한 인물이 없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그럴듯한 인물은 일찍 죽거나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많은 인물들이 자기 이름도 없이 별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역사적 현실적 간극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지만 작가가 가진 중국에 대한 절망의 표현 이자 전체주의 사회가 인간과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 가를 고발하는 내용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허삼관 매혈기(위화, 푸른숲)를 번역한 최용만이 ‘형제’도 아주 맛깔스럽게 잘 번역했다. 피를 팔아 가족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 가는 허삼관 매혈기도 한 번 읽어 볼만하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중국에는 매혈을 해서 살아가는 마을 까지 있다고 한다. ‘형제’는 1,2,3권으로 되어 있고, 모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에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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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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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제토는 이탈리아 포자 지방의 로제토 발포르토레 마을 사람들이 1882년 이래 수십년에 걸쳐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런데 1950년 대 후반에 미국에서 65세 이하 남성 사망원인의 1위를 달리는 심장마비가 이 마을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로제토에서는 55세 이하에서는 심장질환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65세 이상도 심장마비 사망률이 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모든 사망원인을 종합한 사망률도 30-35%가 낮았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도 없고 자살율과 범죄율도 아주 낮은 로제토에 대한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실시되었다.

음식, 운동, 유전, 지역 환경, 흡연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조사했지만 답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평등주의적이고 끈끈한 마을공동체가 건강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의료계는 개인 차원을 넘어 집단과 문화, 가치관 같은 것들이 건강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인정했고, 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례처럼 말콤 글레드웰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성공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주는 이 책을 집필했다.


   
 
  ▲ 아웃 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캐나다 하키계를 지배하는 철의 법칙. 유명 하키선수팀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1월-6월에 태어난 선수들이 압도적이다. 캐나다에서 보통 코치들은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유력팀의 선수들을 짜는데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라 몇 개월의 차이로도 상대적으로 체격이 더 크고 더 잘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애들이 일단 선발되고 나면 차별화된 지도와 훈련 덕에 정말로 뛰어난 선수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 생일이 빠른 아이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온다. 세월이 갈수록 희석되기는 하지만 대학에서 조차 10% 정도의 효과가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IQ. 1921년 캘리포니아 초등생 25만명을 대상으로 IQ검사를 실시해 최고 중의 최고인 140이 넘고 200에 다다르는 1470명의 아이들을 추려냈다. 이들을 평생에 걸쳐 추적 조사했다. 결론은 거의 대부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노벨상수상자는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IQ검사에서 탈락한 아이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지능과 성취도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IQ가 너무 떨어져도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맞지만 높으면 높을수록 비례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대략 115 정도를 넘어서면 지능지수는 성격이나 인격, 가정환경 같은 다른 요인에 비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의 비밀. 1997년 8월 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보잉 747 비행기 추락 사건이 일어났다.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다. 비행기 사고는 대개 사소한 고장과 장애가 여러 건이 겹치고  상당수의 실수가 겹치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이 날도 사소한 잔 고장, 나쁜 날씨, 피곤함이 모두 겹쳤고, 더 결정적인 것은 기장의 실수나 판단 착오를 부기장이 명확하게 지적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력 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란 특정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 지를 나타낸다. 즉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써야 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그 의견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라별 PDI지수와 비행기 사고 간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통계로 입증되었다. 세계 조종사들의 PDI를 조사해 본 결과 브라질이 1위, 한국이 2위 였다. 우리의 장유유서 문화가 위기 상황에서는 큰 위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2002년 히딩크가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을 때 선후배 위계 질서가 엄격한 모습을 보고 밥 먹을 때나 훈련 할 때 선후배를 막론하고 반말을 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감독의 파격적인 지시에 잠시 정적이 흐르던 찰나, 대표팀 막내인 김남일의 “명보야, 밥먹자!”는 한마디에 식당은 웃음바다로 변했고, 대한민국호는 승승장구했다. 참으로 현명한 히딩크이다.

진료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위계 질서를 좋아하는 엄격한 원장이나 의사는 옆에서 돕고 있는 의료인들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는 의료사고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 오랜 세월동안 한국, 중국, 일본에서 유학을 왔거나 그 나라 이민자의 자손들은 수학에서 서구 아이들 보다 더 높은 성취를 올려왔다. 왜일까?  중국에서는 보통 네 살만 되어도 40까지 센다. 하지만 미국의 네 살은 15까지 밖에 세지 못한다. 숫자체계의 규칙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이들은 먼저 수학에 눈뜨고 규칙적 체계에 익숙해질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쌀농사 문화권이라는 것을 든다. 쌀농사는 노동집약적, 기술집약적이다. 노력과 끈기와 자율성을 최대한 요구하는 문화이고 이것은 수학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성취 공식은 ‘재능 더하기 연습’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이들의 경력을 관찰하면 할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의 역할이 커진다.

재능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음악, 그 중에 바이올린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심리학자들이 조사 연구 했다.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연주 실력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조사해 보면 대략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하고 초기 몇 년 간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 씩 비슷하게 연습했다. 여덟 살 무렵부터 변화가 시작되는데 갈수록 연습시간의 차이가 커진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최상의 실력자들은 1만 시간, 그 다음은 8천 시간, 그 아래는 4천 시간을 연습한다. 노력하지 않고 재능만으로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연주자가 최고 수준의 음악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실력 차이는 오로지 노력의 차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만 시간의 법칙.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은 어느 분야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등 어떤 분야든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면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한 것과 같다. 어느 분야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신동이라고 부르는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여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정한 협주곡은 스물 한 살 때부터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밴드인 비틀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1만 시간 법칙의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성취는 개인적 재능이 아닌 노력과 환경과 기회에 의해 좌우된다.”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과 사회의 환경도 중요하고, 집단적인 문화적 유산이나 시대적이고 우연적인 사회적 기회 역시 중요하다.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의 열매가 왜 일정정도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들이기도 하다.   

물론 성공이나 성취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성공에는 집중력이 중요하고 행복은 자존감이나 자기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행복이나 바람직한 삶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성취나 성공에 대해 보다 사실에 접근하는 이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가까운 직계 조상인 자메이카 흑인 노예들의 가족사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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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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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검사하고 진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진단을 선택할 것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지난 30년 동안 세계 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어떤 오판과 거짓 주장을 해 왔는지 조목조목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며 진단한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경험하며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에서 그동안 장하준이 주장해 왔던 내용들의 적합성과 사실성이 새삼 입증되었다.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해법에 빛나는 이정표가 될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런던경제대학을 방문하여 왜 아무도 2008년 가을에 터진 금융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아마 지구인 대부분이 궁금해 했던 질문일 것이다.

여왕의 질문에 대해 영국아카데미는 2009년 학계, 금융계, 정부 등에서 최고로 꼽히는 경제학자들을 모아 답변을 정리하여 여왕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경제학자들 개개인은 유능했지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

영국 등 세계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 집단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시스템 전체에 끼치는 리스크를 이해해야 했는데 실패했다.”고 반성했다. 집단적 상상력이라는 그동안 경제학의 주류에서는 낄 자리도 없던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이 답변은 결국 영국 경제학계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들이 모였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인정한 셈이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위기를 불러오는 환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금융규제 철폐, 무제한 단기 이윤 추구와 주주 이익 극대화, 고용 불안, 부자 감세, 양극화 심화, 시장 만능과 국가 통제력 약화, 탈산업화 현상들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해준 것이 그들이다.

이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지난 30년 간 한 일은 스스로 고백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 정도가 아니라 세계 경제와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큰 해악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1982년 제3세계 채무 위기, 1995년 멕시코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까지 크고 작은 수십 개의 금융위기에 이들의 책임이 있다.

2008년 가을 세계 경제를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총체적 붕괴에서 구해낸 것은 케인스, 찰스 킨들버거, 하이먼 민스크 등의 경제학이다. 정부 지출을 늘리고 예금 보험을 강화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대규모의 유동성을 금융시장에 쏟아 부은 덕분이다. 이 대책들의 대부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한사코 반대해 왔던 정책들이다.

장하준은 지유시장 경제학자들이 믿고 주장해 왔던 신화들을 하나하나 깨부순다. 그는 역사적으로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규제라고 느끼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를 수긍하지 않을 때이다. 어떤 시장에도 사고 팔 수 있는 대상,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 거래의 조건, 이민 정책 등  규제가 있다. 시장은 오직 정치적으로 정의될 뿐이다.

장하준은 기업이 소유자인 주주들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되는 이유, 나라마다 임금 격차가 수십 배 까지 벌어지는 배경,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가 하나도 없었던 현실, 탈산업화 사회와 지식기반 경제라는 헛된 신화, 정보화와 세계화에 대한 지나친 과장, 정부 역할의 중요성,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정책과 트리클 다운 논리의 허구성, 경영자들의 과잉 보수의 문제점, 금융시장 규제의 필요성, 인간 합리성의 한계, 경제의 불확실성, 교육이 생산성 향상에 별 효용이 없는 근거 등에 대해 방대한 자료와 통계를 제시하며 입증해 나간다.  

장하준의 주요 타겟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판단과 정책들이지만,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제 3의 길, 사회투자국가등을 추진했던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 등의 진보파들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장하준은 책의 결론으로 세계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8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더 잘 규제된 자본주의, 인간의 합리성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시스템, 이윤 동기 뿐 아니라 연대와 신뢰를 장려하는 시스템 설계, 기회의 평등 뿐 아니라 어느정도 결과의 평등도 보장하여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사회, 탈산업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중시하는 것, 금융과 실물 부분의 균형, 복지 확대 등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배려 등이다.

인간의 비합리성, 경제의 불확실성, 정부 역할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장하준은 진정한 케인wm주의의 계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2008년 경제 위기가 세계 경제의 완전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겨우 막아낸 상황이며 지속적인 경기 회복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금융개혁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 및 통화를 완화한 결과 새로운 거품이 일어나고 있고, 실물 부문의 돈줄은 막혀 있다. 이 거품이 터지면 세계 경제는 다시 불황으로 들어가는 더블딥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G20회의에서도 드러났지만 각국의 정부들은 금융시장 규제 방안이나 환율 문제, 기축통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의 차이가 크다. G20회의의 효용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해법을 위해서는 먼저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동안 각국에서 추진했던 경제정책들의 공과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의 책이 빛나는 지점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영국의 노동당 당수에게 장하준을 만나보라고 권한 것처럼  경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장하준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현재 이명박정부는 부자감세 등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 역시 잘 봐주면 사회투자국가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인다.

장하준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이명박정부는 완전히 배를 산으로 끌고 가고 있는 중이고, 민주당 역시 안일하고 부정확한 인식과 정책을 가지고 있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경제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 해야만 하는데 이를 끌고 나갈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새로운 정치가 출현해야 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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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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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생, 서울대 법대 82학번(좀 빨리 학교에 갔네요^^), 서울대법대 조국교수가 언론인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만나 제대로 사고를 쳤다. 사고라 함은 국립대교수, 언론사 대표의 위치에서 완전히 한 쪽 편에 서서 집권 계획까지 세우는 행위가 불러올 일부의 비난, 압력, 딱지 같은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이런 걸 감수할 만큼 지금 보수정권 아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절박한 위기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지만 내용을 보면 보수정권과 정권교체를 해야 할 개혁진보세력에 대한 질책과 충고가 대부분이다. 힘과 내용과 실력을 쌓아 정권 교체를 해야만 정권 교체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이름도 거창한 “진보집권플랜”을 읽으면서 놀란 점은 조교수의 다방면에 걸친 상식의 풍부함과 균형 감각이다. 그리고 어떤 주제든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의 방안을 사고해내는 진정성이다.

물론 조교수가 제시하는 담론과 방안들이 많은 경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 두레박들은 아니다. 다양한 개혁진보진영의 담론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시장에 넘쳐나는 상품들 중 최적의 상품을 골라내고 때론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어 내놓고 논란이 분분한 상품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공하는 그의 실력이 만만치가 않다. 가능하면 2012년, 늦어도 2017년부터 최소한 10년은 집권하여 되돌릴 수 없는 개혁진보의 말뚝을 박자고 호소하는 그의 태도가 예사롭지 않다.

조국교수는 진보는 남북문제 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각종 정치적 기본권을 확대 강화하고, 강자나 부자가 아닌 약자나 빈자의 편이라고 상정한다. 그는 법학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진보의 길이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므로 공개적으로 진보를 자처한다고 말한다.

이명박정권이 추구하는 정신은 “인권이, 민주화가, 진보가 밥 먹여 주냐?”이고 이 질문에 대해 진보진영은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답해왔다. 하지만 그는 이제 진보가 밥 먹여 준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정치적 기본권이 위협 받고는 있지만 선거라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착한 후 대중의 관심은 밥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밥이란 먹고 자고 입는 문제, 즉 보육,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 문제이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진보개혁진영이 비전, 정책, 능력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이 정치권력이 시장권력으로 넘어갔다고 했지만 그는 정치권력이 법과 제도를 통해 경제 권력을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진보개혁진영이 합의할 수 있는 재벌에 대한 정책은 ‘재벌의 경제력 남용은 막아야 하고’,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고’,‘경영과 부의 상속은 투명해야 하고’,‘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해야 한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대부분의 경제 문제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려면 구체적인 대안적 경제모델에 대한 설계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민주당, 진보정당 들에게는 이런 설계도가 제대로 없거나 있어도 현실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대안적 경제모델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더 구체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불안사회담론을 소개한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 일자리, 건강, 노후 등에 대한 걱정은 스카이(서울대,고대,연대)대를 나와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각자도생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연대나 단결도 어렵다. 공정한 경쟁 체계와 사회 안전망 등 복지국가가 절실한 이유이다.

그는 미완의 사회경제 민주화의 달성을 위해 노는 문화 정착, 사회 임금 높이기,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준 무상의료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나 중소기업과 대기업 문제, 기업 민주화 문제 등을 넘어 욕망의 문제까지 설명해 나간다.

교육 문제에서는 외고 문제 해법, 학력차별금지법, 지역균형 선발과 계층균형 선발, 학벌주의 문제 등을 거론해 나간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5% 인데, 스위스는 25%, 프랑스도 60% 정도이다. 서울대 폐지론에 대해서는 서울대 분할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남북문제에서는 확실한 대안모델을 보여주었다고 긍정한다. 분단 이 남쪽 사람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하고, 분단지형을 평화지형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이 퍼주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보수의 논리가 왜 허구인지 구체적 근거를 들이댄다.

그는 북한의 수령 중심, 군부 위주 사회체제 아래서 북한 인민의 보편적 인권이 분명히 억압당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북한의 인민에게 도움이 되고, 북한 권력집단에게도 장기적으로 더 좋다는 메시지가 되는 방식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 하고, 진보개혁진영의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적절한 방법으로 북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는 북한체제의 억압성을 비판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평화공존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비북, 연북 노선을 주장한다. 또한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민생민주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한미동맹의 파기가 아닌 평등화가 중요하고, 숭미도 반미도 아닌 용미를 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특정 조항인 투자자 국가 소송제나 역진 방지 조항 등을 빼고,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의 침해를 막고, 농업 등 취약 산업을 보호 할 수 있다면 한미 FTA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는 법학자답게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대한민국 검찰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핵심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 신설과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 총장을 중심으로 집권 초기에 전광석화와 같이  밀어부쳐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2012년을 위한 개혁진보진영의 연대 방안도 제시하고, 현실의 유력 정치인 개개인에 대한 친절한 평가까지 덧붙인다.

그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정치인들에게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왕 밑에서 안주하는 영주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사회경제적 과제의 실현, 당의 혁신, 연대에 헌신 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정치인이건 생활인이건 자기 세대인 386 전체에 대해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있다.”고 자각 하자고 호소한다. 2,30대가 386과 손잡고 전 세대를 아울러 다시 한 번 잔치를 벌여 보자는 것이다.

‘매력 있는 진보’라고 불리는 조국교수가 먼저 용감하게 자기를 내놓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큰 용기이고 의미 있는 전진이다. 더구나 상당히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 풍부하다. 그의 바람대로 활발한 논의와 진지한 준비가 이어 나가야 될 것 이다.     
그가 인용한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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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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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퀴르발 남작의 성’은 남다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전이나 과거의 사건들을 비틀고 뒤집어 다양한 시각에서 변주하는 솜씨는 가히 환상적이다. 더구나 작가는 상당히 탄탄한 심리학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디즈니 영화주인공들의 혼합 퍼레이드처럼 여러 작품의 온갖 등장인물들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해서 한자리에 모여 개성 있는 수다를 떤다. 소설로는 보기드문 발상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비틀기와 변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하며 여러 화자를 통해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비교해주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치밀하게 엮어 전달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1993년 한국 K대학의 교양 강의를 통해서 1953년 제작된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호러영화 속의 여성 문제를 건드린다.

1932년 뉴욕에서 처음 소설을 쓴 미셸 페로를 등장시켜 원작자의 심리와 여자 주인공 카밀라의 내면의 변화를 추적한다.

2004년에 이 영화를 ‘도센 남작의 성’으로 리메이크 한 일본 영화감독 나카자와 사토시를 통해서는 1932년 대공황의 상황에서 출구 없는 암흑 같은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에 부합하는 기괴스러운 소설의 결말과 1953년 영화의 결말이 할리우드식 호러 영화로 달라진 이유를 설명하고 2004년의 영화를 다시 원작소설의 결말로 리메이크하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2006년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는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의 배경인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델로 유명한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의 배경인 일본의 오카야마 성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한다. 1952년 영화 주인공 카밀라와 빌을 연기한 영화배우 제시카 헤이워드와 로버트 허드슨을 등장시켜서 현실의 연기자들의 욕망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슬쩍 들이민다.

2005년 한국의 MBC 방송을 통해서는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을 보고 영향을 받아 조카딸을 납치해 인육을 요리해 먹은 엽기적인 부부의 소식을 전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카니발리즘에 대한 소개와 아이들을 잡아먹으며 200년 넘게 살면서 언제나 중후한 귀족적 품위를 잃지 않는 퀴르발 남작의 궤변과 카밀라 부부가 결국 자진해서 남작의 카니발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남작과 드라큘라와의 비교도 흥미롭다.

원작자 미셸 페로에게 어린아이 장과 퀴르발 남작에 얽힌 전래동화를 이야기 해 준 할머니 자네트 페로의 등장도 의미있다.

특히 이 작품을 자본주의와 무한 욕망에 대한 고발로 이해하는 해석과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상반된 시각에 대한 소개도 그럴 듯하다. 한편의 디즈니랜드식 호러 다큐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소설 주인공인 홈즈와 작가 코넌 도일의 고뇌와 두뇌 싸움을 다룬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도 흥미 있는 발상이다. 다만 소설 속 사건의 열쇠들이 다소 허술하고 단순하다는 점이 아쉽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여러 아류 영화들에 대한 변주이다. 소설 속 괴물은 이름이 없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작가는 괴물과 박사의 심리적 관계를 파고든다.

또한 작가는 소설 속에서는 주변 인물로 잠시 등장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에르네스트 프랑켄슈타인을 중심 인물로 등장시켜 원작의 비밀을 파고들며 그럴 듯한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야기로 변주한다.

‘그림자 박제’는 대표적인 본격 심리 소설이다.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에 대한 잘 짜여진 단편 드라마이다. 주인공 강철수는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 회계사가 된 평범한 인물이다. 아내와 어린 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난 기러기아빠이다.

강철수는 어느 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멍키 스패너로 끔찍하게 살해한다. 강철수는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속에 존재한 또 다른 인격인 톰과 제리에 대해 설명한다.

톰은 거칠고 당당한 욕망의 화신이고 제리는 말을 더듬고 내성적인 유아적 인물이다.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한 때 잘 어울리며 공존한다. 그런데 마음의 지하실 밑바닥에는 어려서 장애를 갖고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한 우빈이 있다. 이들은 마음 속에서 점점 심각한 갈등에 빠져들어 간다.

전체를 연결해 보면 우빈이 진짜이고 강철수는 과거와 자기를 지우고 싶은 우빈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페르조나이며 톰과 제리는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강철수와 완전히 억눌러져 있는 우빈 사이에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이 소설을 해설한 우찬제는 멍키 스패너로 살인한 인물이 톰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톰은 몽키 스패너를 산 것 뿐이고 정작 휘두른 사람은 진짜인 우빈이 튀어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직접 건드려지는 돌발 상황 속에서 비로서 우빈이 현실에 직접 등장하는 순간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잠에 빠져들고 우빈은 망설임없이 살인을 하고 어린 시절의 자기로 보여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건네주는 것이다. 잘 짜여진 구성과 심리학적 지식은 훌륭하지만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유부단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스러운 현대인의 모습을 사실성 있게 그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2007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고 문단에 나온 작가 최제훈의 재기발랄한 변주와 시대와 인간에 대한 드러냄이 어디까지 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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