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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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태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의국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신생아 병동에 가는 길에 어떤 남자가 병실에다 주머니 하나를 놓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한 달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일이라 주머니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피투성이 갓난아이가 있었다. 탯줄과 태반까지 그대로 단채로... 체온도 낮고 호흡도 불안정한 아이를 응급처치를 해서 살려낸 후 규정대로 부모를 찾기 위한 기간으로 2주간 이름도 없이 병원에 대기시켰다. 2주가 지난 후 수속을 하면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름을 지어주는데 워낙 바쁘고 일이 많다보니, 통상 병원장 성에 가나다 순으로 이름 첫 자를 붙이고 여자는 ‘순’, 남자는 ‘석’을 붙이는 식으로 지어주곤 했다. 그런데 이 아이, 태어나 엄마 품에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아이에게 이름만은 제대로 지어주고 싶어서 ‘태를 달고 온 여자아이’라는 뜻으로 ‘태희’라고 붙여 주었다.

 태희는 건강하게 잘 자라는 듯 보였다. 그런데 4개월 무렵 피부색이 푸르스름한 게 이상해서 검사를 해보니 선천성 심장 기형이었다. 국내에서는 여러 여건상 수술이 불가능해서 홀트로 옮기고 수술을 해 줄 수 있는 양부모를 찾았다. 다행히 미국인 양부모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보통은 홀트아동복지회가 호송을 맡는데, 태희는 너무 어리고 심장병까지 있어 직접 뉴욕까지 데리고 갔다. 비행 중 태희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나빠지기 시작했고 울다 지쳐 잠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지옥같은 비행이 끝나고 대기 중인 구급차에 태희를 실어 보냈다. 이후 태희는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고 결국 한 달 뒤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에도 다른 아이의 사망진단서를 쓰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이토록 짧은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태희 이후에도 엄마의 태반을 단 채 병원으로 실려오는 핏덩이들에게는 ‘태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제발 좋은 양부모 만나 불행한 출생을 보상받기를 바라면서....  탤런트 김태희를 볼 때마다 그 많은 ‘태희’들의 안부를 대신 전해주는 듯 해서 그 어여쁜 미소를 보고 또 본다.”

 의사치곤 박봉의 자리라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정년을 15년이나 넘겨가며 75세 나이까지 진료에서 손을 놓지 못한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조병국씨(여). 그녀가 50년 세월 동안 울고 웃고 가슴 저리고 감동했던 순간들을 추려서 엮어낸 사연 중 “그 시절 태희들을 추억하다”를 요약한 내용이다.    

 한 편 한 편이 다 드라마요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사연들로 가득하다. 다 죽어가던 아이가 곶감 달인 물을 먹고 기적같이 살아난 이야기, 노래할 때만은 너무도 당당한 정신지체아 현균이 이야기, 의사가 된 뇌성마비 영수 이야기, 동반자살한 엄마를 두고 두 다리가 절단된 채 살아난 두 살배기 아이가 당당하게 커가는 이야기, 재래식화장실 변기통에 버려진 아이 이야기, 입양아들이 다 커서 친부모를 찾아나서는 이야기 등등.

 입양제도 문제, 입양에 대한 편견 문제, 아동복지 문제 등을 논하기 전에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비참한 타인의 얼굴과 호소에 응답할 수밖에 없고 응답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사람들, 봉사자들, 협력자들이 있다. 조원장과 이런 분들이 있기에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경험은 처음이다. 아예 한 손에 휴지를 든 채로 책을 읽었다. 삶의 진실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다. 모든 의료인과 환자들과 잠재적 환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조병국,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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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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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야심찬 부제를 보면서 처음엔 냉소했다. 인류 역사를 만든 책 50권을 고르고 그 책들을 모두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개의 경우 장르와 시대를 넘어 50권, 100권의 책을 고를 경우 다수의 전문가들이 선정하고 집필하기 마련이다. 깊이와 넓이는 함께 가기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이 책, 단 두 명이 만든 책 치고는 의외로 다양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뭔가가 있었다.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하면서는 “그에게는 인류 전체나 계급보다는 언제나 한 인간, 즉 개인이 중요했기 때문이다.”고 쓰고 있다. 시대에 맞서 싸운 니체의 고독과 디오니소스로의 영원 회귀, 군중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초인이 되는 것을 설파한 니체의 생각이 짧은 글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해서도 이드, 자아, 초자아의 관계와 유아기에 형성되는 초자아와 이드의 불균형이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정신병리 현상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프로이드 하면 궁금하게 여겼던 칼 융과의 관계와 견해의 차이를 따로 박스로 처리해서 정리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에 대한 구체적 내용 소개는 간결하게 핵심만을 짚으면서 그 책이 탄생된 시대적 배경과 사상사적인 의미가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또한 풍부한 칼라 사진과 다양한 박스 처리를 통해 어른이 읽는 동화책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장점이다.

신약성서를 소개하는 내용만 보더라도 성서를 잘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라도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베드로의 제자인 마가와 바울의 제자인 누가가 스승들과 함께 복음서를 집필한 배경, 누가가 복음서의 후속편인 사도행전을 집필한 배경 등이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롤링의 ‘해리포터’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작가는 해리포터에 대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꿈, 자아실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동양보다는 서양 중심, 종교로는 기독교 중심에 독일 작가다 보니 독일인이나 독일어 책에 대한 편향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전체주의를 싫어해서 인지 ‘공산당 선언’ 등 사회주의적인 색깔의 견해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 일변도인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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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박동천 지음 / 모티브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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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가 세운 샨티니케탄(평화학당)에 간디가 방문했다. 한 여인이 간디에게 휘호를 부탁했다. 간디는 “절대로 성급하게 약속하지 마라. 한번 약속하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니까”라고 썼다. 나중에 타고르가 그 글을 보고 그 아래에 “잘못으로 판명되면 약속일랑 내던져버려라” 라고 썼다.

그대는 간디와 타고르의 말 중 누구의 말에 더 솔깃하는가?

박동천 교수는 타고르의 입장이 더 진보적이라고 보고 논의를 전개한다. 초지일관이나 신념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교조주의에 빠지거나 폐쇄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일화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이란 것도 끊임없는 해석과 적용 그리고 정치적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상황을 뛰어넘어 지켜야 할 원칙 따위는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이야말로 철저한 원칙과 변함없는 신념을 가진 진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곱씹어 봐야 할 내용들이다.


   
 
  ▲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박동천, 모티브북  
 
박동천 교수의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은 나 같은 얼치기 진보 뿐 아니라 자칭 진보주의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주옥같은 관점과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전대통령을 지지했던 표 중 약 16%정도가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이동했는데, 이들이 이렇게 갑자기 우경화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젠더를 상실해버린 진보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고 쓰고 있다.

자연과학의 합리성으로 사회도 합리적으로 해석, 계몽, 진보시킬 수 있다고 본 생각은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닥쳤고, 특히 우리나라의 진보파는 정치, 사회, 도덕, 가치 등에 대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가짜문제와 진짜문제를 분별하지 못하고 헛발질만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표적인 고정관념으로 합리주의, 선험주의, 민족주의를 다루고 가짜 문제로는 지역주의를 중심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그는 자유와 평등은 상호모순이 아닌데도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즉 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이 ‘법 앞에 평등’이고, “평등한 자유 아니면 자유일 수 없고, 자유 없으면 평등도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는 진보파가 모든 종류의 자유 즉,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자유주의 모두를 더 철저하게 자신들의 아젠다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고정 보수층을 30%, 무관심층은 30%, 나머지 40% 중 부동층을 20%, 고정진보층을 20%로 볼 때, 그는 진보진영의 정치적 활로는 연합 특히 선거연합 아니면 길이 없다고 본다.

그는 자칭 진보인사들 중 지사나 열사를 흉내 내거나 스스로가 우월한 지성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엉터리 진보가 많다고 본다.

그는 정치와 종교 뿐 아니라 정치와 도덕을 분리(crime과 sin을 구분해야하고 sin이 사법적 대상이 되면 안됨)해야 하고, 특히 진보인사들에 대해서만 도덕성을 가혹하게 적용하는 풍조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황석영이 노벨상을 타려고 무엇을 했다던지 하는 식의 의도와 동기를 문제 삼는 풍조도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모든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되 그 경쟁만은 평화롭게 하면 되며, 따라서 이기심에 대한 관인과 관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을 괴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북한을 무조건 증오하는 극우적 시각과 유사한 것이며, 2008년 연간무역액이 8500억불(GDP의 67% 상황)인 나라가 한미FTA같은 무역을 겁내는 건 제노포비아이며 미국을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미국 내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을 모두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보수적인 태도와 진보적인 태도를 나눌 때 폐쇄적이냐 개방적이냐가 중요한 기준이라고 본다. 즉 경직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는 보수, 유연하고 타협적인 태도는 진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정치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려면 사법제도 개혁이 가장 중요하며 우리나라의 유럽식 대륙법체계를 버리고 영미식 보통법체계로 바꾸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이라면 선의, 평화, 아량이 인류 사회 개선의 유일한 열쇠라는 강력한 신념을 보여줘야 하고 진보란 바로 이웃을 신뢰하는 세상을 향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또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의 결합이 현실적인 진보적 이상의 최대치라는 것이다.

워낙 많은 내용을 거칠게 요약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꼭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박 교수가 정리한 4개의 잘못된 생각틀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를 더 개명된 사회로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이라면 꼭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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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심리학 - 심리학이 파놓은 치명적인 함정 9가지
스즈키 고타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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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홍수 시대인가? 온갖 종류의 심리학이 서점과 각종 매체에 등장하고 방송에서도 자주 다양한 종류의 심리학을 적용한 상담과 해설을 접할 수 있다. 마트에 가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사회심리학적인 이론에 근거해서 광고하고 진열하고 가격을 책정한 상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주류 심리학에 반기를 드는 괴짜 심리학자가 하나 나타났다. 그는 일본 심리학계의 창조적 이단아로 불리는데 박사 과정 중에 중퇴하고 거의 독학으로 실험심리학 공부에 몰두하여 기존 심리학계의 통념을 부수는 연구 성과를 계속 내놓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니가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이 책 ‘무서운 심리학’을 집필하는데 8년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계에는 많은 엉터리 신화들이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음악을 들려주면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좌우대칭의 불규칙한 잉크무늬를 어떤 모양으로 보는가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정신 상태, 욕망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로르샤흐 테스트나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정확하지도 않고 잘못 되기도 한 설들이 전파되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데는 심리학계의 불성실성이 한 몫 한다고 본다. 누군가의 주장을 자기주장처럼 인용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거짓된 신화들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책임한 언론의 역할이다. 시청률이나 판매 부수에 목매는 언론은 기묘하고 재미나고 감동적인 것을 찾아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하는 경우가 많고 잘못이 드러난 후에도 분명하게 정정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교과서에 까지 실린 8가지의 심리학계의 중요한 신화들을 뒤집는다. 자 하나씩 맛보기 해보자.


여러분들은 ‘서브리미널 효과’라는 용어를 아시는지? 이 용어는 몰라도 영화를 보면서 보는 사람이 전혀 의식할 수 없는 극히 짧은 시간(3천 분의 1초)에 “콜라를 마셔라”, “팝콘을 먹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면 관객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반응해서 콜라와 팝콘의 매출이 급증한다는 비커리의 실험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1956년 6주 간 진행된 이 실험 결과가 발표된 후 무의식을 통한 인간 조정이라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엄청 큰 파장을 몰고 왔고 이런 방식의 광고에 대해 미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 조치가 뒤따랐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3천 분의 1초 동안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술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더구나 1958년 연방의회의 요구로 진행된 20 분의 1초 동안 의 메시지를 5분 간격으로 내보낸 실험에서도 아무 효과도 없었다. 저자가 보기에 이 최초의 실험은 완전한 조작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서브리미널 효과’ 자체가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실험은 심리학 교과서에 까지 실리는 등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교과서 집필자들의 불성실함도 큰 역할을 했다. 저자가 보기에는 현재도 ‘서브리미널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무의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할 수 없는 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 무의식의 역할을 입증하는 것 역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심리학회 회장이자 런던대학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였던 시릴 버트가 일란성쌍둥이를 통해 지능이 유전되는지 환경에 좌우되는지를 연구한 것 역시 거의 조작이라고 본다. 이 쌍둥이 연구의 논리는 단순하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하므로 같은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와 어려서부터 떨어져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를 비교 연구해보면 지능의 유전적 환경적 역할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능이 유전된다는 결론을 내린 버트의 논문은 많은 의혹과 논란을 낳았고 저자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전쟁 중에 일부 자료까지 잃어버린 버트가 기억(?)에 의존해서 자료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아예 조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실 지능의 유전-환경 논쟁은 사회교육 정책과도 맞물려 있어서 일종의 이데올로기 논쟁의 측면도 있었다. 일단 결론부터 내려놓고 거기에 맞는 자료를 근거로 주장을 펼쳐 온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지능은 유전과 환경이 거의 반반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결국 양자를 대립적으로 놓고 볼 이유가 없고 상호 작용을 전제로 한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쌍둥이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상식적으로 쌍둥이가 같은 환경에서 자라면 더 비슷할 것 같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유는 같은 환경에서 자랄 경우 서로를 의식해서 성격, 능력, 취향에서 보다 차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면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을 자연스럽게 키워가기 때문에 더 닮은 모습 그대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처음 버트가 전제한 다른 조건의 일란성 쌍둥이의 연구를 통해 유전과 환경의 영향 정도를 연구한다는 논리마저도 무너지게 되고 만다. 단순 비교만으로는 유전과 환경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나타난 천재 말 ‘클레버 한스’를 들어보셨는지? 한스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거나 카드를 선택하거나 발로 땅을 차는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했고, 상당한 수준의 의사 소통과 복잡한 수학 계산까지 척척 해 내었다. ‘2/5 + 1/2=’ ‘28의 약수는?’ 같은 문제까지 정답을 맞췄다. 당연히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생겼고, 베를린대학의 심리학자 카를 슈툼프가 이끄는 13명의 전문가들이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다양한 문제를 내고 그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지만 어떤 의심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연구 끝에 한스가 정답을 알게 되는 메커니즘이 알려졌다. 그것은 정답을 알고 있는 인간은 정답이 나오거나 가까이 오는 순간 스스로는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의 방향이나 눈의 움직임, 턱이나 어깨를 올리는 움직임 같은 세밀한 것을 한스는 감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지 능력은 사람에게도 훈련시켜서 확인한 바도 있다.

클레버 한스 사건은 심리학계에 두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나는 동물의 지적 능력에 대한 실험에 훨씬 큰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클레버 한스 효과’라고도 부르는 ‘실험자 효과’, 즉 실험자의 결과 예상이 피실험자의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는 사실이다.

최근까지도 침팬지 등 동물에게 말을 가르쳐 의사 소통을 실험하는 많은 연구들에서 여전히 클레버 한스 사건을 떠 올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흥미있는 실험과 연구에 대해 저자는 집요하게 추적한다.

미국 아동교육 방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왓슨의 ‘행동주의 육아서’의 전제가 된 리틀 앨버트 실험. 단 한명의 아이에 대한 지극히 불완전한 실험이 심리학 교과서에 까지 실리고 정설로 굳어진 배경을 밝히고 있는 ‘왓슨의 행동주의 심리학’ 뒤집기이다.


오른손잡이 산모 중 83%, 왼손잡이 산모 중 78%가 왼쪽 가슴에 아이를 안는 현상을 연구한 솔크의 가설에 대한 갑론을박들.


발달심리학 교과서의 단골 소재로 쓰인 늑대 소녀 아마라와 카마라의 이야기가 날조된 것임을 입증하는 저자의 주장과 실제 상황에 대한 추정들.


언어가 지각과 인식을 강하게 규정해서 사물에 대응하는 단어나 표현이 없을 경우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언어상대가설’인 ‘사피어-워프가설’은 지금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심리학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다. 저자는 약한 정도의 언어상대성은 인정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명백히 잘못된 것임을 최근의 연구들을 통해 밝힌다.



저자는 과학계에서 실수와 잘못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과학이란 그런 잘못을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이 훨씬 더 성실하고 엄격하게 연구하고 발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주장을 아무런 확인 없이 자기주장처럼 인용하거나 잘못이 드러난 후에도 수정하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인들도 이 책을 통해 학계나 언론의 주장을 맹신 하지 말고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특히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심리학 관련 책들도 잘 가려서 읽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서운 심리학, 스즈키 고타로, 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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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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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저자:전중환, 사이언스북스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권유 받았다. 오랜만에 전에 같이 일하던 분들과 친목모임을 가졌다가 2차 후 몇 명이 남아 3차를 간 자리에서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이라는데 당장 그 다음날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했고 읽어 나갔다. 재미있어 술술 속도가 나가는 책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끼리끼리 모임을 만들고 2차에 3차까지 몸이 피곤한 것을 불사하고 동료의식을 다져 나갈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 유전자’ 등 몇몇 유명한 책들의 계보를 잇는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이다.  

 왜 남자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의 유혹에 약한지, 왜 카페에 들어가면 창가 구석진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는지, 가을엔 왜 그렇게 울긋불긋 단풍으로 치장하는지, 털은 왜 퇴화했는지, 도덕은 본능인지 아닌지, 음악은, 그러면 종교는 뭐 이런 질문들에 대한 진화심리학적인 해석과 설명이 들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인류는 약 700만년 전에 침팬지 가계와 갈라져서 거의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왔고, 여기에 적응된 심리적 기제가 아직도 결정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약 1만 1천년 전 시작된 농경사회나 2백년 된 산업사회는 우리 인류의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를 일으킬 수 없는 상대적으로 너무 잛은 세월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심리는 오래되고 낡은 연장들로 채워진 연장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연장통’ 처음엔 재미있고 그럴듯한 책 제목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정확하게 책 내용을 반영하려면 ‘오래된 연장들을 담은 새로산 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대와 몸은 새 것인데, 마음 속 심리 기제는 수백만 년 묵은 낡은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읽은 티모시 윌슨(기억이 가물?)의 ‘나는 내가 낯설다’ 라는 책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심리 기제를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여기서 강조된 ‘적응 무의식’이라는 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융이 말하는 인간 무의식 내부에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집단 무의식’ 역시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어느정도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부제인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를 생각해 본다면 아프리카 사바나초원에 적응된 심리만을 본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남성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는 심리적 본성이 있지만 어떤 여자를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보는가는 사회 문화적 요소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도덕에 대한 본성이 있지만 어떤 도덕인가 하는 점 역시 사회문화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가설들이 많고, 입증되었다고 하는 것들도 결국 통계적으로 더 유의미하다는 것들이 많고, 많은 부분들에서 경쟁하는 다른 설명들이 가능한 것을 보면 과학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향후의 모든 심리학은 진화심리학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저자의 희망 섞인 호언장담의 태도- 즉 모든 것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하고자 고군분투하는-를 버리고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명히 할 때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기여와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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