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사물인터넷 IoT>의 두번째 편, 실천과 상상력 편이어서 그런지, 사물인터넷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나와있지 않다. 첫 책에서 사물인터넷의 개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되고 있던 모양이라서 그런지, 이 책에서는 실제 사물인터넷의 현주소와 미래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총 네 사람이 공저한 이 책은 3부러 나누어져 있는데 3부가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어 마치 네 개의 다른 책을 같이 붙여 놓은 듯 일관성이 없고, 별도의 주제를 다룬다. 


1부는 사물인터넷과 함께 언급되는 미래의 IT 기술로서, 내용 자체는 흥미롭지만 사물인터넷이란 것의 실체를 확실히 모르는 단계에서 읽어보면 뭐야 이게 사물인터넷이야? 아무데나 다 갖다 붙이네 라는 생각이 들만큼, 선도하는 IT 기술 및 서비스들에 대한 개념들을 소개한다. 모바일 환경, 공유경제, 인공지능, 센서 등과 관련된 기술을 다루는데, 이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오리가 굳이 '사물인터넷'이라고 따로 명명한 것과의 관계를 알 수는 없다. 


2부부터 4부까지는 실제 사물인터넷과 관련된 기기, 기술, 시장전망 등을 다루는데, 기기는 스마트홈 제품군, 헬스케어 제품군, 스마트 카 제품군, 스마트 시티 서비스군의 네가지 별로 제품과 서비스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앞에서 내가 일관성이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이유는 1장에서 제시한 그 팬시하고 환상적인 IoT라는 것의 드러난 실체가 1장에서 설명한 것과는 달리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2장에서 보여주는 IoT 기기들은 센서를 부착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혹은 자잘한 기기들이 블루투스 같은 통신망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스마트 폰에 보내고, 스마트폰의 앱에서 해당 데이터를 처리하여 여러가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만보계보다는 훨씬 폭넓은 범위의 센서를 활용하여 상상하지 못한 부분에까지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IoT가 마치 신세계인양 이야기했던 1장과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갭만큼 서로 닿지 못할 공간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시장전망이라든가 뭐 그런 산업 현장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전체적으로 IoT에 대해 가장 적절한 전망을 해주고 이해를 높여준 챕터는 가장 짧은 3장의 3-1 시장 전망 부분이다. 여기서는 IoT를 바라보는 업체의 시각과, 한국의 IoT 현황을 외국과 비교해서 이슈들을 잘 정리해서 알려준다. 즉 미래의 IoT라고 하는 기술 속에서 한국 내 기업들이 가진 어려움과 기술적이고 정책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다루는데 다른 자잘한 문제들을 이리저리 통합해서 크게 분류한다면, 표준화와 센서 기술로 요약할 수 있다. 


표준화 기술은 업체들끼리의 이익과 직결되고 또한, 앞으로 한국의 IoT 산업이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주요 요소이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의 표준은 아직 과도기에 있고 그것은 크게 삼성이 이끄는 OIC 그룹, 구글의 Thread, 애플의 킷, 그리고 7개 국가의 전자제품표준기관이 힘을 모은 윈엠투엠, 퀼컴 등의 울신얼라이언트가 있다. 누가 먼저 플랫폼의 표준을 선도하느냐는 누가 먼저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느냐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은 누가 더 많은 동맹들을 모으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파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IoT는 한 두 가지 기술이 결합된 것이 아니라, 통신망과 제품, 서비스 회사, 등 수많은 회사들의 이익이 상호 맞물려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 지 혼란스러운 상태이고 이익을 위해 뭉친 동맹들은 상호간의 이익 배분 문제 때문에 제대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형편이다. 


이런 여러 단체들의 기술적 특성을 스마트 홈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 삼성이 주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방형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늦게나마 잘 포착한 OIC의 플랫폼 스마트씽즈는 집 안에 허브를 두고 이 허브에 연결된 다양한 기기들이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원격 제어된다. 스마트씽즈에 연결될 수 있는 기기는 무한하고, 센서만 부착한 기기들이 스마트씽즈에서 인증받기만 하면, 스마트폰 앱에 인증된 기기들이 보이고 제어가 가능한데, 허브, 모션센서, 습도센서, 온도와진동 그리고 움직임으로된 2개의 복합센서로 된 스타터 킷을 구성해 이를 원하는 제품에 부착할 수 있도록 판매함으로써 어떤 제품이라도 허브에 붙일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두번째 스마트홈 플랫폼으로 완벽주의자 애플의 폐홰형 플랫폼 홈킷이 있다. 이것은 협력사에게만 홈킷 API를 공개해 애플만의 제품을 생산하게 하는 방식으로 업계의 비주류 업체들과 제휴하는 전략으로 가는 중이다. 애플이 이렇게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성할 수 있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때문이며 iOS를 스마트홈의 두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스마트홈은 구글로 대표되는 쓰레드 그룹이 접근하는 physical web이라는 방식으로, 이미 자동판매기나 버스정류소 등에 웹주소를 할당해 사용자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제품을 사거나 버스운행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스마트기기 중심의 앱이 아니고, 별도의 앱 없이 어떤 기기와도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스마트 홈만 하더라도 세 개의 플랫폼이 치열한 각축전 끝에 어떤 것이 표준의 승자가 될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표준화 이슈 외에 IoT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슈는 센서 문제이다. IoT의 특징은 사물이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센서 기술은 인간의 오감이 느끼는 모든 감각을 모두 센싱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어떤 제품이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에 대한 문제에서 제품이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는 인간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일히 타이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감각해서 수집하는 데이터들이 될 것이다. 센서와 기기가 결합해서 IoT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나오는데 일반 IT 기술과는 달리 하드웨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는 초기 아무리 간단한 제품이라도 1~2억이 들고 국내에는(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스타트업 투자를 받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먼저 만들어오라고 요구된다는 것이 발전에 지연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생태적 환경에서 우리나라의 센서 기술은 매우 낙후되어 있고 세계시장 점유율은 1% 수준이라서 중국보다도 낮다고 한다. 


내나라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의 미래 세대가 더이상 기약없는 알바와 임시직,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빠져 나와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기심일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이 실제로 미래의 성장 동력이 될지, 그저 만보계 수준의 장난감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IT로 세계를 평정했던 시절을 돌이켜보고 땅파고 물길을 막아 환경을 저해하는 방식으로는 아무 발전도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인식했다면 미래를 보는 눈을 가져주기를 그들에게 바래보고 싶다는... 엉뚱한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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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5-05-1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로 올린다는게 페이퍼로 잘못 올린 모양인데 좋아요가 5개나 있어서 못지우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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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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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축복받은 기억만큼이나 상실로 인한 상처는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그림자처럼 삶을 졸졸 따라다니던 전쟁 전후 시대에, 삶보다는 죽음이 더 친숙했던 국민을 파멸로 이끈 통치자들의 폭력적 억압은 강간처럼 그늘진 시대의 초상이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우파, 혹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하고, 향수에 젖어 하이쿠를 읊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묵도한 어린 코기의 눈엔 그 죽음의 곁에 또다른 코기가 있었다. 큰물살을 헤치고 강물 깊은 곳으로 나아가던 아버지 곁에 있던 또다른 코기는 코기가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하던 친구지만, 그날 그 코기는 아버지와 함께 물살 속으로 뒤집혀 떠내려간 아버지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 코기 자신이 본 건 무엇이고, 그걸 보고 있는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전후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나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주인공이자 오에 겐자브로 자신인듯한. 코기는 훗날 그 아버지의 죽음을 천황의 우상화에서 비롯된 바보같은 행동으로 간주하고 이를 희화하한 소설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을 펴내, 한동안 어머니, 누이와 냉전 상태로 지낸다. 그러나 코기는 물살을 헤치고 아버지에게로 다가가던 유년의 기억을 매일 꿈속에서 환기한다. 


그것은 마치 죽은 아버지와 문학적으로 성공한 아들 사이의 대립된 이념 속 깊은 곳에 내재된 상실과 상처, 그리고 죄의식에러 비롯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평생을 두고, 그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소설을 생각했고,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유년의  사건이고, 지워져버린 기억이기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을 것으로 알고 있던 '붉은 가죽 트렁크'이다. 아버지는 그 트렁크에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리라.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의 거대한 진실 앞에 서게 될 것이리라, 그의 산속 집으로 향한 여정은 바로 그런 목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죽은지 10주년이 되기 전에는 그 붉은 가죽 트렁크를 코기에게 주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마침 10주기가 지난 상황에서 그의 동생 아사는 그것을 전해준다. 이 과정에서, 코기 즉 조코선생은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친다. 아내는 암 말기이고, 장애가 있는 작곡가 아들 아카리와는 사이가 틀어졌으며,  쓰려고 했던 익사 소설의 재료가 되어 줄 붉은 가죽 트렁크 속에는 아버지가 남긴 책 몇권 외에 모든 다른 재료는 불태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조코의 작품을 꾸준하게 연극으로 올린 '혈거인'이라는 극단이 직접 조코와 이 마지막 익사를 함께 기획하고 싶어하는 의지에 동참하게 되는 일들이다. 써놓고 보니 나름 이런 저런 일들이 책 속에서 사건으로 일어났구나 라고 느끼지만, 책을 읽을 때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통해 알게 되거나, 대화의 긴 대사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구나를 알게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는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소설의 문체와 방식이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의 방식과 비교하자면 겉과 속이 바뀌어 뒤집혀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무슨 소리냐면, 일반적인 소설이 사람의 생각과 전체 서사적 흐름과 주제 같은 것은 지문으로 알 수 있고 그외 디테일들, 상호간의 관계나 인물의 성격 같은 걸 대화로 보충해준다면, 이 소설은 1인칭 나가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설의 굵직한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내가 만들어가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읽은 편지, 내가 들은 대화 속 인물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혼자서 읊고 있는 대사라는 것이다. 독자는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읽더라도 주인공이면서도 화자인 '나' 가 결코 무슨 말을 했는지 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다. 단지 '오빠가 동의하셨더군요... '와 같이 어떤 대사 속에서 나의 행동을 추측해야 한다. 


나와 어린 시절의 코기, 그리고 조코 선생은 모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인물로 여겨지고,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이지만 어쩐지 '나'와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말을 아끼기 때문에 생각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현재의 나, 그 상(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현실생활에 있어서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의 장애인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암에 걸린 아내가 그들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무능한 아버지이다. 조코 선생은 '혈거인' 극단이 동경해 마지않아 한 극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의 작품세계가 한 극단의 전부가 되게까지 만든 위대한 문학가이고, 코기는 어릴적의 자신, 아버지의 익사를 묵도한 소년, 그리고 소설속의 내가 그 기억과 아버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쓰고 싶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시하여 환기하는 소년이다. 


시대에서 동떨어져 주위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떨어져 지내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 거 아닐까 싶네. 내 소설은, 대개 그런 개인을 그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시대정신의 표현을 지향하고 있지 않나...그 때문에 독자가 거의 없어지더라도, 죽게 되면 자신은 시대정신을 따라 순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p136)


말을 아끼는 '나'가 혈거인 극단과의 대화 중에 하는 말은 대개, 조코 선생으로서의 자신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오에 겐자브로의 책이 만일 이 책의 주인공의 책처럼 정말 잘 안팔린다면 그것은 시대정신 뿐만 아니라 문학정신에도 있지 않을까 라는생각을  해본다. 인내해서 끝까지 읽으면 위대하다는 걸, 그가 이야기한 시대정신과 문학정신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일부러 없애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강간이라는 말을 썼는데, 익사소설을 포기하게 된 조코 선생은 결국 익사소설을 포기하는 대신 '죽은개를 던지다'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은개 인형을 상대편에게 마구 던지면서 토론 형식으로 관객 참여가 이루어지는 연극의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죽은 개를 던지다'는 혈거인의 독립 여성 배우 우나이코가 중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다른 극에서 차용해서 큰 호응을 이끌어낸 이후, 다른 연극에도 계속 도입하게 된다. 



익사소설 대신 동참하게 된 마을의 메이스케 봉기에 대한 연극에 집단 강간 장면이 등장하고, 우나이코는 18년 전 자신이 큰아버지에게 당한 강간과 연결하여 그것을 폭로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본 교육계의 권위를 대표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극우파들은 우나이코와 대립끝에 그들을 납치하여, 강간을 없었던 일로 하라고 협박하고 여기에 살인사건까지 겹치면서 아루라장이 되는데. 강간장면을 직접적으로 연극에 묘사하고자 한 이유는, 조코가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가 맞닿아 있고 그것은 집단 강간과도 다름없는 폭력적 국가와 맞서는 저항이 아닐까 싶다. 


합법적 살인이 가능한 국가의 관습으로 전쟁과 낙태가 존재하지요. 아직 소녀였던 우나이코는 '국가'한테 강간당했고, '국가'한테 낙태를 강요당한 거잖아요?(p500)


"메이스케 어머니 역을 맡은 나 자신도... 내 경험은 현재도 이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39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어떤 인생도 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바람입니다. (399)


붉은 가죽 트렁크에 남은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태워 없앤 조코의 어머니는 그 아무것도 없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10년동안 조코에게 넘겨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유언하였다. 그 속, 남겨진 책에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그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사상, 목숨을 걸고 지킨 가치가 사실은 자신이 지향하고 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였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버리는 위안군문제, 마치 없었던 일들처럼 잊처저가는 세상의 모든 봉기들, 세상의 모든 '합법적' 폭력과 강간과 살인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러한 가치와 교훈들은 낡은 붉은 가죽 트렁크에 담겨 또 누군가의 익사를 담보하여 지켜질 것인가, 이대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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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서 - 뇌과학의 살아있는 역사 에릭 캔델 자서전
에릭 R. 캔델 지음, 전대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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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단초를 찾아간 노벨상 수상자의 자서전. 뇌과학이 과학이 되기까지 그 마법과도 같은 발견의 과정과 세부 내용을 상세히 기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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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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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가. 축복받은 기억만큼이나 상실로 인한 상처는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국가의 개인에 대한 통제와 탄압이 그림자처럼 삶을 졸졸 따라다니던 전쟁 전후 시대에, 삶보다는 죽음이 더 친숙했던 국민을 파멸로 이끈 통치자들의 폭력적 억압은 강간처럼 그늘진 시대의 초상이었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들의 군국주의를 우파, 혹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하고, 향수에 젖어 하이쿠를 읊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묵도한 어린 코기의 눈엔 그 죽음의 곁에 또다른 코기가 있었다. 큰물살을 헤치고 강물 깊은 곳으로 나아가던 아버지 곁에 있던 또다른 코기는 코기가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하던 친구지만, 그날 그 코기는 아버지와 함께 물살 속으로 뒤집혀 떠내려간 아버지의 배에 함께 타고 있다. 코기 자신이 본 건 무엇이고, 그걸 보고 있는 자신은 무엇이었을까. 전후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나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주인공이자 오에 겐자브로 자신인듯한. 코기는 훗날 그 아버지의 죽음을 천황의 우상화에서 비롯된 바보같은 행동으로 간주하고 이를 희화하한 소설 <손수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을 펴내, 한동안 어머니, 누이와 냉전 상태로 지낸다. 그러나 코기는 물살을 헤치고 아버지에게로 다가가던 유년의 기억을 매일 꿈속에서 환기한다. 


그것은 마치 죽은 아버지와 문학적으로 성공한 아들 사이의 대립된 이념 속 깊은 곳에 내재된 상실과 상처, 그리고 죄의식에러 비롯된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평생을 두고, 그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소설을 생각했고,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유년의  사건이고, 지워져버린 기억이기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에게 한 가지 믿음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익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을 것으로 알고 있던 '붉은 가죽 트렁크'이다. 아버지는 그 트렁크에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리라. 그리고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의 거대한 진실 앞에 서게 될 것이리라, 그의 산속 집으로 향한 여정은 바로 그런 목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죽은지 10주년이 되기 전에는 그 붉은 가죽 트렁크를 코기에게 주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마침 10주기가 지난 상황에서 그의 동생 아사는 그것을 전해준다. 이 과정에서, 코기 즉 조코선생은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친다. 아내는 암 말기이고, 장애가 있는 작곡가 아들 아카리와는 사이가 틀어졌으며,  쓰려고 했던 익사 소설의 재료가 되어 줄 붉은 가죽 트렁크 속에는 아버지가 남긴 책 몇권 외에 모든 다른 재료는 불태워졌다는 사실, 그리고 '조코의 작품을 꾸준하게 연극으로 올린 '혈거인'이라는 극단이 직접 조코와 이 마지막 익사를 함께 기획하고 싶어하는 의지에 동참하게 되는 일들이다. 써놓고 보니 나름 이런 저런 일들이 책 속에서 사건으로 일어났구나 라고 느끼지만, 책을 읽을 때는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통해 알게 되거나, 대화의 긴 대사 속에서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났구나를 알게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는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소설의 문체와 방식이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의 방식과 비교하자면 겉과 속이 바뀌어 뒤집혀진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무슨 소리냐면, 일반적인 소설이 사람의 생각과 전체 서사적 흐름과 주제 같은 것은 지문으로 알 수 있고 그외 디테일들, 상호간의 관계나 인물의 성격 같은 걸 대화로 보충해준다면, 이 소설은 1인칭 나가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설의 굵직한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은 내가 만들어가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읽은 편지, 내가 들은 대화 속 인물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혼자서 읊고 있는 대사라는 것이다. 독자는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읽더라도 주인공이면서도 화자인 '나' 가 결코 무슨 말을 했는지 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다. 단지 '오빠가 동의하셨더군요... '와 같이 어떤 대사 속에서 나의 행동을 추측해야 한다. 


나와 어린 시절의 코기, 그리고 조코 선생은 모두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인물로 여겨지고,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이지만 어쩐지 '나'와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말을 아끼기 때문에 생각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현재의 나, 그 상(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현실생활에 있어서는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의 장애인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암에 걸린 아내가 그들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무능한 아버지이다. 조코 선생은 '혈거인' 극단이 동경해 마지않아 한 극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의 작품세계가 한 극단의 전부가 되게까지 만든 위대한 문학가이고, 코기는 어릴적의 자신, 아버지의 익사를 묵도한 소년, 그리고 소설속의 내가 그 기억과 아버지의 죽음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쓰고 싶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일시하여 환기하는 소년이다. 


시대에서 동떨어져 주위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떨어져 지내려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 거 아닐까 싶네. 내 소설은, 대개 그런 개인을 그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시대정신의 표현을 지향하고 있지 않나...그 때문에 독자가 거의 없어지더라도, 죽게 되면 자신은 시대정신을 따라 순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p136)


말을 아끼는 '나'가 혈거인 극단과의 대화 중에 하는 말은 대개, 조코 선생으로서의 자신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오에 겐자브로의 책이 만일 이 책의 주인공의 책처럼 정말 잘 안팔린다면 그것은 시대정신 뿐만 아니라 문학정신에도 있지 않을까 라는생각을  해본다. 인내해서 끝까지 읽으면 위대하다는 걸, 그가 이야기한 시대정신과 문학정신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는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일부러 없애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강간이라는 말을 썼는데, 익사소설을 포기하게 된 조코 선생은 결국 익사소설을 포기하는 대신 '죽은개를 던지다'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은개 인형을 상대편에게 마구 던지면서 토론 형식으로 관객 참여가 이루어지는 연극의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죽은 개를 던지다'는 혈거인의 독립 여성 배우 우나이코가 중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다른 극에서 차용해서 큰 호응을 이끌어낸 이후, 다른 연극에도 계속 도입하게 된다. 


익사소설 대신 동참하게 된 마을의 메이스케 봉기에 대한 연극에 집단 강간 장면이 등장하고, 우나이코는 18년 전 자신이 큰아버지에게 당한 강간과 연결하여 그것을 폭로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본의 교육계의 권위를 대표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극우파 극단은 우나이코와 대립끝에 그들을 납치하고 여기에 살인사건까지 겹치면서 아루라장이 되는데. 결국 오에 겐자부로가 조코와 우나이코가 이야기하는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그것은 집단 강간과도 다름없는 폭력적 국가와 맞서는 저항이 아닐까.


합법적 살인이 가능한 국가의 관습으로 전쟁과 낙태가 존재하지요. 아직 소녀였던 우나이코는 '국가'한테 강간당했고, '국가'한테 낙태를 강요당한 거잖아요?(p500)


"메이스케 어머니 역을 맡은 나 자신도... 내 경험은 현재도 이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39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어떤 인생도 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바람입니다.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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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기쁨 2 - 베토벤까지의 음악사 음악의 기쁨 2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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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음악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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