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파이어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최민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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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투 운동의 본질을, 이 책을 통해 조금 이해하고 동감하는 시선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극히 오츠 다운 방식의 묘사가, 강하게 몰입시키고, 그 몰입에 따른 감정의 이입과 심리적 체험이 바로 피로감으로 나타난다. 그들》을 읽으면서도 느낀거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질적 문화와 이질적 심리가 차근 차근 다가오며 그들 속에 있던 느낌을 공유하고, 그렇게 되면 비슷한 류의 영화나 소설을 읽을 때 갖게 되는 방관적인 제3의 관찰자 입장과는 달리, 심리적 밀착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의 인생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온갖 상처들을 같이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들마치 안읽은 책처럼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뇌의 은밀한 트라우마의 말소 같은 작용이 아니었을런지.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서사가 풍부하고 서늘한 사건이 펑펑 터지는데 문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낯설다. 번역이 한 몫하는데, 요즘 아무리 번역가가 흔해서 오역을 지적하고 옳으니 그르니 하는 글들이 넘쳐나기는 해도,  출발어와 도착어의 관계가 1:1 대응관계가 아닌 이상 번역이 창조의 일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역자가 사용한 말의 어미들, 어순들, 고른 단어들 이것들이 만들어낸 조합은 오츠의 소설을 명성 만큼이나 강하게 전달하는 것 같다. 혹, 문법적으로 틀리다거나 문장이 뭔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가끔 그렇게 느낀 문장들이 있었지만, 번역된 문체 자체로만 보더라도 충분히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들>에서도 그랬고, 오츠가 창조한 인물은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 극단을 걷는다. 1990년대 안젤리나 졸리가 앳된 모습의 리즈 시절, 렉스 역을 맡은 영화와 그보다는 훨씬 나중에 만든 영화 클립들이 유튜브에 뜨는데 졸리의 아우라가 작품 속 렉스를 충분히 카리스마있게 재현해냈겠으나,  소설 속 화자가 묘사하는 신비하고도 위험하고 그토록 매혹적인 느낌을 얼마나 잘 살렸을지 클립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렉스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피상적으로는 전투적 페미니즘적인 역할로 보이지만, 당대(50년대 배경)의 페미니즘이 만연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고려할 때, 가히 사회의 악을 힘으로 맞서는 모습과도 연결되지만, 결국 자멸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던, 그래서 역사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수많은 민란들도 생각났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폭스파이어를 조직하지만, 서서히 조직의 힘을 깨닫고, 제도(자본주의)와 사회와 불화하는 동안에도 사회와 제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채 혹은 깨달아서 더욱 극적인 행동으로 치닫는다.  

여자로 태어난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불행한 환경인 것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고통받는다면, 그건 누구 잘못일까. 고통을 방어하고자 했던 그 시작의 단추를 다시 끼면, 그녀들의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무엇가 맞닿게 될까.

그 개새끼가 리타를 괴롭 힐 때는 그놈이 널 괴롭히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 해야 하는 거야. 왜냐 하면 그 좆같은 새끼는 할 수만 있었다면 분명 그랬을 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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