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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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는 근대의 여명이 트고 신이 떠난 자리에 부재한 질서를 회복하고 싶어했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신이 우주와 그 가치의 질서를 관장하고 악에서 선을 가르고 모든 사물에 뜻을 부여했던 곳을 서서히 떠나버릴 때, 돈키호테는 집을 떠났고 이제는 더 이상 이 세계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지고의 심판관 이 부재하는 이 세계는 돌연 무시무시한 애매성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의 유일한 진리는 인간들이 나누어 갖는 수많은 상대적인 진실들로 흩어져 버렸다. 이리하여 근세가 탄생되었고 그와 더불어 이 세계의 영상이자 모델인 소설 또한 탄생되었다(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소설의 기술』(책세상, 2004) 16~17면. - 『돈끼호떼』, 매혹과 환멸의 서사시 (신정환)에서 재인용)


1권이 어마어마하게 성공을 거둔 후 돈키호테는 10년만에 후속편으로 세상에 재등장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고, 돈키호테 못지 않은 온갖 모험으로 재산과 건강 모든 것을 탕진하고 어렵게 살아가던 그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무수한 해적판이 유럽은 물론 대서양을 건너간 이후에도 세르반테스는 크게 경제적으로 나아진 게 없는듯 하지만, 작품의 성공은 성공이고, 돈키호테가 쌓은 명성을 통해 작가 세르반테스가 차기 작품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만은 확실한 것이다. 2편에는 당대 문학계에서는 아마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새로운 장치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1편에서도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임을 부정하고, 시데 아메테라는 무어인이 전하는 이야기를 역자를 시켜 번역해서 전달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이러한 액자식 구성은 흔히 보는 구성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나갔는데, 2편에서는 한발이 아니라 아주 멀리 멀리 더 나아간다. 2편의 등장인물로서 돈키호테는 1편에 이어 동일한 캐릭터와 연속성을 지닌다.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가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음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다름아닌 전편의 독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대개는 돈키호테와 산초라는 인물에 몹시 흥미를 느끼는 인물들이다. 때문에, 전편에 비해 처절한 육체적 개고생은 뒤따르지 않는다.  전편의 독자가 후속편의 등장인물이 되어 나타나고, 돈키호테의 모험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의 진행을 조정하고 있는데다가 전편의 이야기에서 모순되거나 얼버무린 부분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전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기이한 동거가 계속된다. 


돈키호테가 세번째 모험을 떠나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무훈이 책으로 출간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삼손 카라스코 학사와의 대화가 발단이 된다. 


자기가 무삐른 적들의 피가 아직 칼날에서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자기의 기사도 무훈들이 인쇄되어 돌아다니게 한 사람들이 있다니 말이다. 여하튼 그는 어떤 현자가 자기를 좋아해서건 아니면 싫어해서건 마법을 이용하여 그것을 인쇄시켰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비루하고 비쩍 마른 말들을 보면 저기 로시난테가 간다라고 말할 정도로 누구나 돈키호테를 읽고,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다는 말들을 듣는다. 여기서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작품의 헛점들을 스스로 공개하는데, 거기에 대해 동조하기도 또한 해명하기도 한다. 특히, 그의 작품속에는 작가 자신이 쓴 내용을 혼동하여 불일치하거나 일관성이 없거나 얼버무린 부분들이 많은데(예를 들어 도둑맞은 당나귀는 누가 훔쳤었는지 또 어떻게 찾았는지, 산초가 발견한 금화는 되돌려주었는지 안했다면 후에 무엇을 했는지 등) 하도 곁가지들이 많아서 읽을 때에는 크게 눈치채지 못했데, 2편에서 1편에서 삼손 학사의 입을 빌어  이것이 해명되기도 설명되기도 하는데, 웃기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망증으로 인한 이러한 불일치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그러한 불일치는 역자가 친절하게 주를 달아주어서 알수 있었다). 독자들의 의견 중에는 1편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돈키호테의 모험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여러 단편들에 대해 다루는 것에 대한 불만도 들어 있었으며, 2편에서는 돈키호테에 대해서만 오롯이 집중하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비치는 부분도 있다. 


삼손 학사가 돈키호테에게 책 소식을 전하면서 1편에 대한 이런 저런 해명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돈키호테는 작가가 혹시 후속편을 쓸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데, 이에 대해 삼손은 후속편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기에 작가가 그 후속 이야기를 찾고 있으며,  이야기를 '발견'하는 즉시 인쇄에 넘길 것이라는 의견을 낸다. 이 때 밖에서 로시난테는 울음 소리를 내고, 삼손을 소개해준 산초는 덩달아 흥분하고, 돈키호테는 이를 징조로 여겨 또다시 모험을 떠날 결심을 한다. 삼손에게서는 여정의 코스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출간되려면 먼저 발견되어야 하고 그것이 발견되려면 먼저 자신이 여행에 나서서 무훈을 만들어야 하는 인과 관계 성립을 위해서는 다시 여행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한편 여행중 그는 가짜 돈키호테 후속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위작의 곳곳에서 캐릭터와 사건의 모순 및 불일치 등을 찾아내어 깨알같이 디스한다. )


하지만, 이제 돈키호테는 무명의 이달고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그가 무훈이라 믿고 사람들은 미친짓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쌓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영웅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그에게 칼을 휘둘러 귀를 베거나 매질을 하지 않으며, 그의 미친짓들에 더욱 부채질을 하며 그것을 즐길 뿐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돈키호테가 기사도 모드가 아닐 때의 모습에서 이성적이고 현명한 자질과 방대한 지식에서 나오는 식견에 반해 수많은 주제에 대해 토론한다. 돈 디에고 데 미란다라는 신사는 그가 사자 우리를 열어 사자와 담판을 벌이려 하는 완전히 정신나간 '편력 기사'이지만 이내 자신의 아들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 문학에 대한 대단한 식견을 알아채고 놀라 아들을 만나게 하려고 집으로 데려간다. 4일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신사의 아들에게 높은 학식과 박식함을 보여주었음은 돈키호테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첫 단계일 뿐이다. 


이후 부자 카마초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그들의 꼬이고 꼬인 애정관계를 풀어주고, 마찬가지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새로운 신혼 부부의 집에서 몇일을 머무는데, 2부의 클라이맥스는 이후 사냥을 하던 공작 부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공작집으로의 초대와 그 공작 부부가 꾸미는 재미있는 계략이다.  그들 부부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상태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고, 엄청난 무대장치와 인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환상을 현실 속에 실현시켜줌으로써, 그들에게 미친짓을 부축이며 그것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며 즐거워한다. 이로써 뭐든 이해가 안가는 것을 마법사의 탓으로 돌리곤 했던 돈키호테와, 이를 이용해서 주인을 속여먹던 산초마저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산초는 1부에서도 돈키호테 다음으로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인물이지만, 그의 어리숙하면서도 나름 꾀부리는 독특한 캐릭터는 2부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특히 공작부인의 집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섬을 약속한 돈키호테를 대신하여 산초에게 어떤 마을을 섬이라고 말하며 통치를 맡기고, 믿기지 않게도 몇일 동안 그 섬을 훌륭하게 통치하는 저력을 보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가장 중심에 둘시네아에 대한 돈키호테의 사랑이 있다. 그녀는 사실상 알돈사 로렌소라고 하는 농부의 딸이다. 1부에서는 돈키호테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산초는 더더욱 더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하여, 돈키호테가 무찌른 모든 것의 영광이 바쳐지는 그 돌시네아가 뚱뚱하고 힘센 농부의 딸이라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돈키호테와 산초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1부에서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시인들이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붙여서 찬양하는 여성들이 모두 실제로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 자네는 ...책이나 로만세나 이발소나 극장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성들이, 모두 살과 뼈를 가진 정말로 살아 있는 여자들이며, 그녀들을 기렸고 기리고 있는 그 사람들의 진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아니지. 다들 시의 소재로 쓰기 위해 만들어 낸 인물들인 게야. 자기들을 사랑에 빠져 있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지어낸 여인들이란 말일세. 그러하기에 나도 저 알돈사 로렌소라는 그 착한 여자가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면 되는 거라네. 가문 따위는 중요하지가 않아. 의복을 내리기 위해 가문을 수소문하러 갈 것도 아니잖은가.


즉 알돈사 로렌스는 시적 영감을 위해 사용된 뮤즈다.   실존하는 알돈사 로렌소의 외모, 가문, 행동, 이름까지 모두 버린 후에 둘시네아라는 대단한 가문의 기품있고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을 탄생시키고 그녀를 열열히 사랑하며 목숨까지도 바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1편에서 산초는 그녀에게 전달해주기로 한 편지를 가지고 가지도 않은 채 신부와 이발사를 만나 돌아와서는 만났다고 얼버무리고 거짓말을 하는데, 2편에서는 돈키호테가 그녀를 찾으러 간다. 둘시네아는 알돈사 로렌스로부터 창조된 환상이며, 만일 그녀를 만난다면 그의 환상은 깨지게 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지언데, 그는 부득불 그녀를 만나러 마을로 들어서고, 그녀의 집이 어디에 있느지도 모르는 산초는 꾀를 내어, 길가던 농부들을 둘시네아라고 알려주는데, 만일 실제 인물인 알돈사 로렌소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았을까. 특히 돈키호테는 그녀를 본 적이 4번 정도 있다고 했는데, 그 때의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과, 실존과의 차이는 이 길에서 만난 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 어떻게 극복할까. 


well. 마법이 해법이다. 때는 바야흐로 중세가 저물고 근대의 여명이 밝아온 16~17세기였으며, 철학과 과학혁명은 이제까지 굳건히 믿고 있던 절대 진실의 세계가 거짓이었음이, 이제까지 천년이 넘도록 지켜온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모두 미친짓이었음을,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증명된 것과 객관적인 것만 확실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혼동 속에 빠져 있음이 유럽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던 중이었고, 그 때의 스페인은 세르반테스가 전쟁중 접한 다른 세계와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세르반테스와 세익스피어는 같은 해 같은 날 죽었다.  1616년 4월 23일. 이 날은 책의 날이기도 하다. 죽기 1년 전에 이 책을 내놓았으며 그 한 해 전에는 위작인 가짜 돈키호테 후속편이 등장하기도 했다. 설명될 수 없는 모든 것은 마법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시대가 중세였다면 근대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설명되고 규명해야 진실이되는 시대이며 돈키호테는 그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과거를 붙잡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에게 새로운 진실을 대면한다는 것은 곳 패배이자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둘시네아라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만들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사랑에 대한 진실된 모습을 은유로 보요주는 최고의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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