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 욕쟁이 꽃할배의 더 까칠해진 시골마을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빌 브라이슨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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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이 약 20여년 전에 미국에서 영국으로 처음 와서,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 1권을 썼는데 세월이 흘러 강산도 두 번 변하고 사람도 변했으니 다시 썼다. 


100년전 건물들이 당연한 듯 대도시의 한복판에 줄지어 서있고, 때로 300~400여년된 농가 주택마저도 이리 손보고 저리 손보며 원형을 유지한 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30여년 된 '노후'화된 아파트의 재개발 열풍과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는 한국의 모습들이 교차하곤 했는데, 영국이 고작 20여년간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영국만큼 도시 풍경이 변하지 않는 곳이 또 있을까 싶지만, 시간 앞에서 공간이 주는 변화는 단지 물리적인 변화에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다. 건물을 부수거나 새로 짓지 않아도, 도로를 확장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그 공간을 형성했던 사람들과 공기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변화하고 있었으며, 빌 브라이슨은 그것을 포착하였다. 


저자의 영국산책 1편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20년 전에 처음 느꼈던 영국이란 곳의 아름다움은 아마도 내가 느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해외 여행 붐이 일었던, IMF 바로 직전의 한국인들에게 영국은 종종 유럽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기도 했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찬란한 유적지 및 그림처럼 아름다운 중부 유럽을 돌아온 여행자들에게 영국은 그다지 인상깊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관광지만을 다닐 때 드는 느낌이다. 런던만 해도, 관광객들로 가득찬 피카디리 서커스 말고도 백년 이상된 석조 건물들이 정교하고 세심하게 관리된, 그저 차들이 한 대 겨우 지나갈까말까 한 아주 오래된 골목길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관광 책자에도 표시되지 않는 시외의 작은 마을,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유적지들에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고유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골목가에 세워진 똑같은 모양의 작은 집들은 현관문과 작은 앞뜰에 철마다 꽃을 피운다. 찬물과 더운물이 따로따로 나오는 수도꼭지에, 문에는 벨 대신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손잡이가 달린 그곳이 처음엔 낙후되어 보였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민족성이 지켜온 것은 편리함을 상쇄시킬 고유한 문화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빌브라이슨의 툴툴거림은 나의 툴툴거림으로 함께 공명했다. 그동안 어떠한 정치적 변화들을 경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옛표어는 무색해진 채,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사람들의 태도도, 공간을 지키는 방식도 거센 자본의 방향이 가는대로 변화했을 터다. 그 변화에 제대로 탑승하지 못한 도시와 지역공동체는 공동화의 위기에 처해, 방문객으로 가득했던 작은 도시의 중심가에서 작가가 예전에 먹었던 오래된 노포 역시 문을 닫은 지 오래라는 소식은 가슴아팠다. 특히 그가 처음 영국에 와서 정착하고 일자리를 잡았던 본머스는 관광객의 수가 급감하고 그에 따른 부대시설과 문화 역시 사라져가고 있었다. 


훌륭한 극장이며 세련된 상점, 레스토랑, 명성이 높은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 그 외에도 다양하고도 품위 있는 문화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다. 


그의 툴툴거림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그는 발로 걷는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차를 타고 보는 풍경과 많이 다르다. 걷고 또 걸으며 영국의 구석구석을 다닌다. 차로는 무심결에 지나였을 마을의 팝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뭔가에 대해 불평을 하고 때로 쌈닭처럼 싸운다. 영국이란 곳은 관광 책자에 나올만한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어디서곤 은은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그는 그 세세한 생각들을 적었다. 연출되지 않은, 우연히 만난 그 작은 디테일과 즉흥적인 유머 감각은 빌브라이슨의 여행기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포인트다.


예전에는 도싯과 서머싯의 주류 관련법이 달라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다가 밤 10시가 되면 10시 30분까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옆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마셨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기사를 읽으며 예전의 것들에 대한 향수로 가슴 한 켠에 아련한 통증을 느꼈다.



몇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올드크라이스트처치로드를 걸어 다니곤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상점들이 활기차게 영업 중에 있었고 길가에는 화단이며 긴 의자들이 군데군데 있었으며 인도에는 벽돌이 올망졸망 깔려 있었다. 하지만 몇 해 전 배수관을 새로 설치한다며 벽돌들을 모두 들어 올리더니 바닥을 다시 공사하고 그 자리에 아스팔트를 깔아버렸다. 덕분에 그 길은 검정색 폐기물이 볼품없이 길고 네모나게 이어진 길이 돼버렸다. 이것이 검소한 영국인의 문제다. 보수를 아예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정말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해버린다.


1970년대 내가 아일랜드에 갔을 때만 해도 연간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 피시가드 여객선 터미널을 이용했었다. 지금은 이용객 수가 35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이마저도 계속 감소 추세다. 이곳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배는 하루에 단 두 척 뿐이었고 그중 한 대는 이미 새벽 2시30분에 떠났다. 다음 배는 오후 2시 30분에 있었다



햄리라는 어린이 장난감 백화점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반가왔다. 영어 공부를 하러 왔던 여동생이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았는데, 집이 시내와 가까와서, 빨간색 버스를 타고 햄리를 도서관처럼 드나들었다. 신통방통하게도 아이는 돈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무얼 사달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어쨌든 그곳은 어린이의 천국이었는데 영국을 대표하던 거의 모든 기업들이 외국의 다국적 기업으로 모두 넘어가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 가운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기업은 절반이 채 안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햄리 역시 프랑스 기업이 인수했으며, 스코트랜드의 대표 위스키와 휴대폰 제약회사 등도 모두 소유했다는 소식이다. 영국의 거의 모든 기업이 외국인 소유라고 한다. 외국인이 그 나라의 대표 회사들을 소유하고 경영을 하면서 영국인이 지켜왔던 가치들을 과연 소중하게 다루어줄까. 변화의 원인은 아마도 그러한 사회적 변화에 기인하고 있었던 것일 거라 짐작되었다. 사람들은 관광지를 찾는 목적이 무언가 다른 장소, 다른 경험을 위해서인데, 고유한 문화들이 사라져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장소는 퇴색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둘다 영어권의 나라이지만 외국인으로서 거리의 사람들을 미국인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태도다.  빌 브라이슨은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점 주인의 완전히 무관심한 태도와 미국의 숨통이 막힐 것 같은 관심 중 어느 것이 더 나쁜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고 썼다. 흔히 미국은 친절하다고들 하는데, 오지랍인지, 길거리에서 조금만 주의를 둘러봐도 이사람 저사람 지나가다가 도움이 필요하냐 하고, 상점에서 계산하다가도 늘 와쯔업 와쯔업 하는 바람에 뭐라 둘러대야 할지 은근 스트레스가 받는 1인에게는 무관심한 태도가 낫다. 영국인들은 타인에게 쓸데없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무례하게 여기기 때문에, 일단 도움이 필요해 말을 걸으면, 영어를 개떡같이 하더라도 충분히 귀기울여 들으며 뭔가 답해주려고 애를 쓰는 듯했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영국인들의 젠틀맨적 기질은 운전자들을 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도로들은 모두 매우 좁았으며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게 구불구불했고 대단히 험했다. 마을 어귀마다 차들이 갑자기 줄지어 정차해 있으면 앞 도로가 너무 좁아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어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운전자들이 이 상황을 수더분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어느 누구 하나 성질을 내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이 영국인의 최대 장점이다. 영국 어디를 가도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남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 있다.


 

두세 건물 건너 한 건물 꼴로 ‘임대’ 간판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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