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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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p19)


이 계절이 되면 휴가를 떠나는 걸 아는 이웃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주셨다.  시로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몇일을 먹었다>를 쓴 박준 시인의 따끈따끈한 신작(산문집)이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해, 의심이 많아 그런지, 책에 글씨보다 공백이 많은 책들은 지면을 채워 상품 가격만 높이려는 출판사의 꼼수같아 좋지 않게 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 기준을 시에 적용하면 절대로 안될 일이다. 처음에는 공백이 많아서 시집인가? 했는데 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읽다보니, 형식상의 분류는 산문에 속하는데, 시인이 쓴 산문은 산문 그 자체로서도 시다. 고로, 지면 가득 공백으로 차 있더라도, 그 공백 속에 진주 처럼 빛나는 한 구절의 글자가 있다면, 공백은 텍스트가 된다. 그러니 출판사들이여, 공백을 많이 넣으려면 이처럼 의미있는 공백을 넣을지어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 - 이문재 시인

"슬퍼서 전화했다.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디 가지 말아라. 어디 가지 말고 종로 청진옥으로 와라. 지금 와라" (p21)


우리는 살면서 무수하게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사람과 물건과, 시간과 많은 것들은 한 때 내 곁에서 삶 자체와 뒤엉겨 동거동락하지만, 서서히 해가 저물듯 모든 것들은 끝을 맺고 떠나고 새로운 것들이 다가온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설레이는 일이지만, 그렇게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고 익숙할 무렵 어느새 무엇인가가 허전한 마음에 돌아보면 아끼고 사랑했던 것들이 이미 없어져 버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때가 종종 있다. 익숙했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허전한 마음을 짚어 내어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술마시다 문득 걸려온 전화라 할지라도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 포용한 사람이다. 종로 피맛골의 비좁은 다락방에서 생선구이와 김치찌개와 파전과 소주를 마셔본 청춘을 기억한다면 세월이 흘러 그곳의 재개발 소식들에 싱숭생숭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먹고 마시는 곳은 반짝 반짝 윤이나고 잘(?) 관리된 프랜차이즈 간판이 걸린 곳이겠지만, 피맛골이 없어지는 것은 청춘의 흔적들이 사라져가는 듯한 아쉬운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이 짧은 몇 줄의 산문을 읽으며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어릴 때 등교 길에서 먹던 무수히 많은 길거리 음식들, 커서는 길에 즐비했던 떡볶이집들.. 사라진 대신 채운 것들이 자본의 또다른 이름이 아니기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 p28)


시인은 덧붙인다, 장례식장의 빤한 음식들과 소주를 마시며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과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터져나오던 눈물을 그 죽은 자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울다 잠들어 깨어난 아침 부운 눈과, 욱여넣는 밥을 이야기하며, 다시 또 그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을 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일은 무엇인가는 잊혀지고, 무엇인가는 떠나가고, 또 누군가가 죽는일을 묵도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잃는 경험을 한다. 내가 단명하지 않는 한,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능하다. 저자처럼 소주를 들이키거나, 어서 이 긴 장례의 형식이 지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진정으로 떠난 이를 생각하며 눈물지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몇장 넘기지 않아, 인생의 구절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맨 앞에 인용한 부분과 연결된다. 뭐 시적으로 근사한 어구가 아니라서, 저 부분을 인용했는데, 그 산문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이 한 말 중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외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뜨거운 물 좀 떠와라"였고,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가 했던 마지막 말은 "그 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래전 애인이며 직장동려이며 마지막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적고 있는데, 그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보면, 그들이 영영 떠났거나 더이상 만나게 되지 않더라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언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정이 깊은 친구 하나가 있는데, 헤어질 때면 늘 내 할머니가 하던 류의 (잔소리 약간 섞인) 따스한 인사말을 건넨다. 차조심해,  몸조심해.  그런 것들이다. 아들과 떨어져있던 동안에 통화내용 중 기억나는 건, '응 아빠랑 싸우지 말고~' 다. 그러고보니, 시어머니가 했던 말 중에서도 생각나는 게 '싸우지들 말고 잘있어라'다. 어지간히도 싸우나부다 생각할거 같은데, 싸우는 것도 인생에 열정이 넘쳐 나야 가능하고, 요즘은 그냥 웬만하면 영혼을 잠시 프리징하여 넘긴다.


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의 어떤 말들을 기억할까. 못된 말을 한 적은 없는지, 내 주장만 하지는 않았는지, 이런 저런 지적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심히 염려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있으며, 지금 만나 말하고 있는 사람을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이 말이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떠나 사라져도 오래도록 상대의 마음 속에 살아남게 될 말들을 골라 써야 겠다.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 말


저자는 태백과 정선, 삼척 같은 강원도로 여행을 자주 간다고 했는데, 우연히도 지난 해 여름 이 책을 들고 바라보던 차창밖과, 뜨거운 여름 바다를 들락거리던 곳이 바로 삼척이다.  책에서 이모네 식당이 오래되어 모네식당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같은 식당인지 모르겠지만 이모네 식당도 지나갔다.  많은 정겨운 것들이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사라져가는 지금, 그것들을 아쉬워하고 흔적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갑자기 시집 한 권이 잘팔려서 주위에서 부러움과 시샘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방송 한 번으로 그토록 부러워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그동안 이런 저런 노동들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야 했던 삶이 시인의 정갈한 언어로 과장되지도, 혹은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게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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