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라틴어는 현재 쓰이는 언어가 아니지만, 많은 언어 속에 흡수되어 알게 모르게 여러 변형된 형태로 많이 쓰이고 있다. 간단한 단어로 유비쿼터스, 비전, 아우디, 에쿠스, 아쿠아, 스텔라 등의 예를 책에서 소개하지만, 자주 쓰는 영단어 중에서도 좀더 유식하고 고상해보이는 단어들은 라틴어 어원에서 온 말들이 많다. 우리 언어에서 한자어와 순수 우리말의 차이처럼, 영어나 다른 서구의 언어에서도 라틴어 어근을 가진 말들과 지역어에서 온 말들은 어감이 차이를 갖는다고 한다. 똥을 똥이라 말하는 것과 대변이라 말하는 것의 차이처럼 같은 뜻을 가진 단어라 하더라도, 뭔지 모를 무게와 고상함을 전해주는 라틴어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고상해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운다고 한다.라틴어로 말하면 뭔 말을 해도 우아해 보이니까 말잔치가 벌어지는 현장의 적재 적소에서 극적으로 등장하는 라틴어 한 마디는 멋진 일일 수 있다. 


문제는 라틴어 배우기의 어려움에 있다. 키케로는 지긋지긋한 라틴 문학이라는 표현으로 라틴어 문법의 복잡성을 오래전부터 얘기해왔는데 각종 태와 어미변화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데, 이렇게 문법적인 규칙이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해 조직적이고 수학적인 언어라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의 동사가 60개의 어미 변화를 갖는다고 하면 대략 상상이 가능할 거 같다. 명사 하나만 봐도 단복수가 1격에서 5격까지 변하고 형용사의 형태도 명사의 성(남성, 여성, 중성), 수(단수, 복수) 격(주격, 속격, 여격, 대격, 탈격, 호격)에 맞게 다 일치해야 하는데, 이런 규칙을 훈련하다보면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접근법이 자연스럽게 터득된다는 것이다. 


라틴어에서 말하는 격변화니 태변화니 호격, 탈격, 여격이라는 말들을 보니 듀오링고로 러시아어를 학습하면서 부딪친 부분들과 겹치며, 라틴어의 문법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규칙이 많으니 뜻을 보다 명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러시아어를 처음 접해, 처음 몇 개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갈 때는, 문장이 짧아서 우와 말이 참 간단하네, 이런 말로 어떻게 안나 카레리나 같은 작품이 나올까 했는데, 영어라면 여러 말이 섞이고 얽혀 표현했을 말들을 단어의 어미 변화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어가 없이 동사의 어미만 보고도 주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명사 역시 그 명사가 처한 환경까지 어미 변화가 암시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러시아어 역시 라틴어에서 영향을 받은 탓인지, 라틴어를 어근으로 하는 단어들이 종종 나오며 문법 역시 유사한 부분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라틴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문법 책이 아니다. 라틴어가 인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라틴어로 전해 경구들의 유래와 인문학적 의미들을 성찰하는 책이다. 유럽에서 라틴어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한마디로 인문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에서 자살하기 전에 죽어라하고 외우던 단어가 라틴어 동사변화였지만, 역설적이게도 Carpe Diem 이라는 명구가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이다.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21세기 한국에서만 와닿을 것 같은 이 말은, 고대에 라틴어로 세네카가 한 말이다.  책에서는 이 말을 알려주며 discimus라는 단어에 대해서 살펴본다. disco(배우다)라는 동사가 원형이고 여기서 명사 disciplina(공부)와 discipulus(학생)이 파생하고, 다시 discipline(규율, 학과목) 과 제자disciple가 유래했다. 여기 쓰인 discimus는 직설법 현재 단수 1인칭인 동사 원형 disco에서 disc 까지 어근으로 보이고 o가 탈락하고 mus가 붙어 이 문장을 완성시킨다.


총 20여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고, 각 챕터마다 한 문장으로 된 간단하지만 감동깊은 라틴어 경구를 소개하고, 해당 구절을 깊이있게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서강대에서 처음 라틴어 강의를 개설했을 때 이십여명 남짓했는데, 해가 갈수록 수강자가 늘고, 라틴어를 공부할 수 없는 이웃 대학과 일반인들까지 청강을 들으러 와서 수백명이 강의하는 강당이 꽉 찼다고 한다. 라틴어를 왜 공부하려느냐고 하면, 뭐 별 쓸모는 없겠지만 있어보이려고 한다는 대답이 많다고 하는데, 라틴어 문법 자체를 공무하는 것이 있어보이는 게 아니라, 라틴어가 오래된 언어이고, 인문학의 기반이 된 언어이니만큼 그 속에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알게 되면 알쓸신잡의 지식꾼들처럼 머리속에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있어보인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챕터 마다 소개하는 구절이 모두 다 좋지만, 몇 개만 골라보면..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Postquam nave flumen transit, navis relinquenda est in flumine.

(포스트쾀 나베 플루멘 트란시이트, 나비스 렐린쿠엔다 에스트 인 플루미네)


숨마 쿰 라우테

Summa cum laude pros se quispue


참고서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학원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했던 숨마쿰 라우데라는 말은 가장꼭대기라는 의미의 summa와 cum 이라는 전치사, 찬미, 칭찬을 의미하는 명사 laude로 이루어졌는데, 유럽의 대학에서 최우등을 표시할 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명사의 격은 모두 6개가 있는데, 칭찬을 의미하는 laude는 사전에 주격 단수 laus를 찾아야 하고, cum이라는 전치사가 탈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문장에서는 laus의 탈격인 laude로 쓰였다. 


주격(nominativus) - 은는이가

속격(genetivus) - 누구의

여격(dativus) - ~에게, ~에

대격(accusativus) - ~를, ~을

탈격(ablativus) - 수단, 행위자, 동반, 방법, 장소, 시간 / 종종 전치사와 함께 사용

호격(vocativus) - 호칭 ~님, ~야,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라틴어 명사는 명사, 형용사 대명사의 어미는 문법적 기능을 위해 이 세가지 성과 수와 격에 따라 어미가 변화한다. 그런데 여성, 남성, 중성이라는 대체 이 쓸데없어 보이는 명사의 성은 국제법에서 몹시 중요하다. 국제조약이나 서구 법률 문헌에서 원칙적으로 단수로 지칭된 것은 복수인 대상에 적용하지 않으며 여성 명사로 사용된 것은 남성 명사에 적용하지 않는 등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성경의 구절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예수를 시험했던 바리사이들에게 예수가 한 말이다. 제국의 언어였던 라틴어는 제국의 멸망 후에도 카톨릭 교회가 공식언어로 채택하여 사용되었기에, 라틴어는 근대 이후까지 교회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 언어로 남게 되고, 그것이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p92).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는 단초 역할을 한다. 캐사르와 신을 구분하는 복음서의 권고는 정교 일치를 파괴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오랜 중세시대 동안 교회 권력이 교육 의료 등 오늘날의 사회복지 개념을 비롯하여 사회의 모든 방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미 신앙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른 중세시대에서조차 성경의 가치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104)

네가 주기까 나도 준다
Do ut Des(도 우트 데스)
Do는 주다라는 뜨을 가진 동사로 현재 단수 1인칭. 그러므로 나는 준다 라는 뜻이다. ut는 예정, 가능, 의무 결과 등의 의미를 갖는 부사/접속사이다. des는 do 동사의 접속법 현재 단수 2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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