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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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게 아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조선 영정조 시대 최고 수집가 석농 김광국의 수집가 정신을 칭송하는 이 말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살짝 비틀어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인용하여 유명해진 말인데, 원문  석농화원의 발문을 쓴 당대의 문인 유한준이라고 한다. 이 책 <현대 미술 강의>의 저자 조주연이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말인데, 전에도 본 적이 있어서, 원문을 찾아보았다. 


미술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유흥준 버전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특히 현대 미술을 접할 때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함의 무지에 비애를 느끼기까지 한다. 이건 무얼까, 무얼 뜻하는 걸까. 왜 이런 걸 전시하는 걸까. 무얼 보라는 걸까. ‘아는만큼 보이는’ 게 예술이라면 알지 못하는 건 보아도 보이지 않는 걸 말한다. 우리는 때로 미술관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 예술품을 더듬으며 마음으로 감상하려 애쓰지만 알려 한다고 해서 다 알아지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려 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현대 미술만큼 작가의 의도와 평론가의 해석에 대한 앎을 요구하는 것도 드문 듯하다. 음악을 들으면 느낄 수 있고, 좋은 그림이나 예술품을 보면 느낌의 전환을 이끌어 내므로, 알지 못해 보지 못한다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저 말은 전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유독 현대미술에서만큼은  크게 공감된다. 


모더니즘은 재현의 거부로부터 시작되고, 그 시작점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까지 누드화의 고전주의 전통을 깬 이 그림 속의 누드 여성은 신화 속의 여신이 아니라 현실 속의 창녀였고, 관람자를 도발적으로 쏘아보고 있으며, 풍만한 입체감이 살아나는 명암대신 날카로운 색채 대비를 사용했다. 이것은 3차원 공간을 묘사하는 세계의 재현을 떠나 2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회화 자체의 평평한 미적 구성으로의 이동이다. 이를 기점으로 미술은 3차원 세계의 재현을 떠나 대상의 시각적 효과를 탐구한다. 


일시적인 빛, 순간적인 인상, 인상주의의 탄생과 심화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화가들, 모네, 고흐, 쇠라, 세잔, 고갱으로 이어진다. 인상주의의 그림들이 대상의 재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상주의의 그림에서 재현의 흔적을 없앤 것은 아니다. 색채와 선을 묘사의 기능에서 분리시켜 특유의 표현적 효과를 냈고,  이미지들은 ‘묘사의 노역에서 풀려’났다. 여기까지가 초기 모더니즘이다. 저자는 이 초기 모더니즘을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미술’이라는 소제목을 붙여 설명하고 있다. 아는 것이 없어도 보이고, 느끼고, 좋아하고, 모으고 싶어지는 그림들은 오히려 사진처럼 재현해낸 고전주의 그림들보다는 우리가 인상주의라고 뭉뚱그려 알고 있는 재현을 거부하기 시작한 시도의 정점인 듯하다. 


전성기 모더니즘은 마티스와 피카소를 통한 ‘재현 체계의 전복’으로 이어진다. 마티스는 ‘색채와 선을 묘사에서 해방시킨 후 새롭게 재조합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색과 선은 무언가를 묘사하지 않고 그림이 된다. 인상주의를 고루 실험하고 야수주의와 분할주의를 거친 마티스는 <삶의 기쁨은>를 통해 형식, 양식, 주제의 세 가지 면에서 기존 그림에서 탈피했다. 형식 면에서는 대규모의 순색 사용으로 원색간의 과격한 충돌  인체를 해부학적으로 왜곡한 점, 양식 면에서는 서양 미술의 모든 원천들을 원래의 양식이나 크기와 무관하게 등장시킨 점, 주제 면에서는 목가풍 장르화의 바탕에 성차의 교란을 통해 인체를 사디즘적으로 공격한 점 등이다.  피카소는 단일 원근법을 폐기한 후 대상을 여러 개의 작은 평면으로 잘게 부스는 분석적 입체주의로서 전성기 모더니즘을 대표했다. <칸바일러>를 보면 초상화의 원형은 완전히 사라졌고, 인물의 형상은 작은 평면들로 산산이 쪼개어 후진하여 가라앉은 반면 배경은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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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삶의 기쁨> 1906 캔버스에 유채,176.5x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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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의 초상>, 1910


이로써 그림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순수한 미적 구성으로 나아간다.  순수 추상은 입체주의 콜라주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입체주의 콜라주는 그림의 재료가 아닌 재료를 뒤 섞는 것으로 입체주의의 유산을 계승하지만 새로운 효과 하나를 추가했는데 그것이 ‘도상적인 것의 파괴’다.  미술이 언제나 형태의 유사성인데,  브라크가 창안하고, 피카소가 뒤따른 입체주의 콜라주는 유사성에 기초한 재현의 회화와 결별하고 관계의 차이를 바탕으로 의미 작용이 일어나는 언어 기호의 조건을 미술에 도입한다.   유사하게 그리지 않는 미술은 이로써, 기호로 전환했다고 해석된다. 말처럼 어려운 현대화의 알쏭달쏭이 시작되는 것이다.  말레비치가 창안한 절대주의는 더 어렵다. 그것은 지시 대상 없이 조형 요소들 사이의 구조적 관계를 바탕으로 의미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고 하는데, 캔바스를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놓은 검은색 사각형에서 어떤 암시를 통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연역적 추상). 반면 몬드리안은 회화가 세계의 근본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긴장과 균형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구성을 찾는다(구성적 추상). 


추상 표현주의는 몬드리안과 말레비치와는 다른 방식을 개척하여 순수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대표 주자는 잭슨 폴록이다. 폴록은 미술의 변방 미국 뉴욕을 탁월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폴록의 그림을 여행 중 미술관에서 몇 번 본 적 있는데, 그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었고, 아무리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며 뚝뚝 흘린다고 해도, 내가 하면 평생을 시도해도 비슷한 그림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제서야 아직까지 각인된 그림의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 기억 이미지 혹은 무의식의 이미지라는 해석,  자연의 그림이자 비밀스럽고 거대한 풍경이라는 해석,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젤이라는 도구의 틀을 벗어났다는 해석이다. 즉, 수직적 시각장 회화를 수평적 회화로 전복했다는 것이다. 전후 뉴욕에서 이런 류의 시도를 하는 화가들이 더 있었고, 클리퍼드 스틸은 표면의 질감에 대한 촉각적 탐색을,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는 회화의 표면을 얇게 펴서 질감의 촉각적 연상을 없애고 색채와 개방성의 문제를 돌파할 길을 찾아낸다. 색채가 그 자체로서 독자적 발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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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벨 아트 뮤지엄(Fortworth, USA)

여기까지가 1부 모더니즘의 주요 테마들이고, 2부는 순수 미술을 거부하는 반예술 아방가르드, 3부는 반예술의 역설 혹은 곤경으로 표현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아방가르드는 대전 전의 취리히 다다, 베를린 다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전후 미국의 아방가르드와 미니멀리즘, 그리고 팝을 포함한다. 아방가르드는 페터 뷔르허(1974)에 의하면 예술의 자기비판이다.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어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접속하여 다양한 비판적 반응을 일으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 미니멀리즘과 포스트팝으로 나뉘고, 포스트 미니멀리즘은 대상과 형태를 넘어선 과정 미술, 신체 미술, 장소 특정적 미술이 이에 해당되고, 포스트 팝은 언어와 사진의 개입이 관여하는 개념미술, 제도비판 미술, 차용미술 등이 해당되는데 이 마지막 포스트팝이 특히 흥미로왔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성기 모더니즘까지는 이해가 가능했고, 2부 아방가르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제외하고는 더욱 난해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은 신체미술의 경우 역겨운 생각마저 들게 하는 예시들이 있었고, 다시 최근에 가까울 수록 다시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복귀하는 느낌이었다. 


강연 형식으로 쉽게 설명되어 있는 책인줄 알았는데, 여러 미술 비평가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매우 밀도높게 비교하면서 현대 미술의 흐름을 저자 특유의 관점으로 배치하였다. 저자가 그린버그 전공이라고 하는데, 그린버그의 비평과 그 비평에 대한 또다른 비평 등이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략이나마 알수 있게 해주었는데, 미술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문장이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며, 미술전공자나 학술적인 서적으로는 밀도 높고 깊이 있는 토론이 이루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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