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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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재난 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재난 소설이라면 재난은 극복되어야 한다. 재난 소설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대재난이고 그 재난은 휴머니즘으로 극복한다. 거대한 재앙이 물밀듯 밀려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비극이 산처럼 쌓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살아있는 인류애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한두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로 다시 평화를 찾는다. 이 소설이 재난이 아닌 것은 그들에게 닥친 재난이 극복되지 못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사를 채우는 방식이 차갑게 인류의 본질을 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장르 소설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반대한다. 

 

우리가 종교처럼 믿고 있는 인류애라는 것의 본질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소설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나타난 탄압과 학살, 은폐의 자취를 흐름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인간-개 상호간 바이러스를 개가 퍼트리는 바이러스로 잘못 이해하는 일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을 정의한다. 인간이 개에게 퍼뜨려서 개가 죽어나간다고 해서 개를 위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가 매개자가 되어 인간에게 퍼뜨린다는 전제가 개의 학살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재난을 다루는 방식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비슷한 소설로, 카뮈의 페스트가 생각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죽어간다는 사실, 도시가 폐쇄되었다는 사실은 두 소설에서 매우 비슷한 요소이다. 28은 사실감이 높다. 바이러스가 막 퍼져가는 도시에서 고립된 채 아비규한 속에 처한 생생한 현실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수의사는 수의사대로 개는 개대로, 모두 피해자이다.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도시민이 모두 다 죽기를 기다리며 정부에게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그 긴 시간들이 세월호의 알레고리로도 읽혔다. 저런 상황에서 국가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통신을 끊고, 국경수비대가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공공연히 죽이는 일조차도 허락되는 세상이 과거 어떤 정권이라면 있을 법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은 떨쳐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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