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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바닥에도 질서가 있고 하수구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애초 축축하고 더러운 밑바닥 하수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쓰레기 인생은 추락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없는 오늘을 마비된 시간들 속에 던져버린채 시대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인간 내면의 추악한 골만을 찾아 흐르는 사람들. 그 타락하고 비열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먼저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자체가 영화에서 보여주던 장면의 충격과 어떤 선정적인 이미지가 이끄는 힘 때문이었다. 영화는 한 두 장면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어떤 강렬함이 원작으로 끌리게 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책에 비해 선정성과 충격을 많이 중화시키고 영화적 해석이 휴머니즘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여졌다. 원작의 근본적인 철학과는 상이하다고 할 수 있으나, 영화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극적으로 밀어붙인 매우 영리하고 훌륭한 각색이었다. 영화에도 역시 만점의 별점을 주고 싶다. 책은 여러 개의 독립적인 중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각 작품의 인물들이 다른 작품속에서 재등장한다. 영화는 이 작품속 인물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퍼즐을 완성했다. 책 속의 모든 작품은 한치의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기대하는 휴머니즘적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차용한 영화는 작품이 가진 비정한 분위기를 그대로 영화에 흡수했으면서도 감독의 해석 내에 어떤 작은 감동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 <트랄랄라>에서 나서부터 창녀인 트랄랄라는 희망 없는 삶에 대한 자각도, 소외된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도 없다. <여왕은 죽었다>에서 트렌스젠더 조제트는 도시의 쓰레기 중 쓰레기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마약만이 그녀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듯하다. <파업>에서 해리는 그나마 다른 인물들에 비해 유일하게 직장을 가진 기계공으로서,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의 임원이지만 그가 관심있는 것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노조의 돈과 놀고먹는 것이다.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희망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거르고 걸러 남겨진 , 도무지 정화 불가능한 더럽고 악취 풍기는 시궁창 쓰레기 더미에 삶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간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을 믿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게 하는 건 중독에 마비된 영혼들이 저지르는 약탈과 폭력과 섹스와 그 속에서 멈추어진 시간 뿐이다. 화려한 아메리카 드림의 외진 곳에서, 걸러내고 남겨진 악취나는 쓰레기들의 뭉치들이 하루살이 처럼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트랄랄라 115 쪽 인용 참조). 이것이 트랄랄라의 삶이다. 어쩌면 이 버러지같은 삶은 그녀에게 오히려 편안한 일상이고 나름의 정돈된 질서였는지 모른다 . 장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랄랄라에게 3일간의 의도치 않은 환한 세상 밖 구경은 스스로 구더기를 파게 만든다. 이미 바닥이어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밑바닥에서 어둠속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스민다. 한국전쟁으로 내몰린 젊은 장교는 그녀와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옷을 사러 다닌다. 바에서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젖가슴을 흔들어 유혹하고 몸을 팔고 돈을 훔치고 개새끼라고 욕하며, 그걸 또 동네 건달들과 나누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 장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집단 강간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상황에서 장교가 남겨주고 떠난 편지의 구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영화에서 벌거벗겨진 그녀를, 그녀를 사랑했던 소년이 자신의 옷으로 벗어 덮어주고 함께 울어준다. 책에서 그녀는 이빨이 계속 나가고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한 상태로 너덜거리는 그 몸둥이가 시체처럼 널부러진 채, 담뱃불이 비벼지고, 막대기가 꽂힌채로 그대로 길거리에 방치된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야만적이고도 비정한 채로 막을 내린다. 장교가 떠나면서 돈대신 편지를 전해주는 장교를 뒤로 하고 개새끼라고 욕을 하고 편지를 찢어버린 그녀가 경험한 세계. 그것은 아마도 혼동의 세계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옷을 사준 남자, 처음으로 함께 걷고 함께 자고 함께 얘기하고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다시 또 거리로 내몰려, 다시 또 몸팔고 돈을 훔치는 생활을 계속하지만 문학 작품 속 그녀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술 한두잔 값으로 몸을 팔기 위해 바를 전전하는 일로 보인다. 집단 강간이 시작되고 사내들이 더러운 땀과 체액들을 흘리며 줄을 서서 그녀를 강간하는 동안 트랄랄라는 여전히 자신이, 자신의 몸이 창녀로서 남자에게 쓸모있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인생에게는 마땅치 않았던 지나간 3일의 경험을 씻어내고자 자신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부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그런 생각조차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충격과 슬픔에 압도되어 책을 더 읽을 수도 안읽을 수도 없는 상태로 주말을 지냈다.
<여왕은 죽었다>는 조제타는 비니를 사랑한다. 그렇다. 그들도 사랑을 한다. 우리, 그러니까 수십년 후 반대쪽 땅에서 반대쪽 땅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 읽고 후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 우리가 사서 먹고 바르는 음식물과 화장품과 세제에 어떤 화학 첨가물이 들어있는지 가끔 따져보고 공기중 떠도는 미세먼지의 농도를 걱정해 마스크를 구비하고, 조금이라도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이라면 피하고자 알고자 하는 그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밑바닥 인생의 쾌락과 무감각 증오 약탈의 세계에서, 약물로서 스스로를 마비시키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폭력과 섹스에 만연된 사람들도, 그들도 사랑을 하는 거였다. 악랄하고 야비하기 그지 없는 동네 깡패 비니와 연인이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조제트는 온전히 서로를 위해서 있고 싶다. 조제트는 그가 상상하는 그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오로지 약물의 힘으로만 재현 가능하다.
그릭스와 월리스바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공간배경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매춘을 하고 서로를 패고 찌르면서 킬킬거린다. 항구 근처에는 해군들과 육군들이 드나들고, 동네에는 큰 공장이 있다.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루는 <파업> 역시 파업이라는 상황 속에서 추악한 본능만이 지배하는 비열한 상황을 다룬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의 열의, 이어지는 무료한 경찰과의 대치 사항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패악들, 노조 임원과 노조 집행부들의 부조리들 역시 파업 주도원 해리의 추악한 욕망과 내적 변화를 통해 빠지지 않고 낱낱이 해부된다. 파업이 길어짐에 따라 변화되는 양측의 심리변화도, 파업 도중 지급되는 식표품 배급과 같은 당시 풍속 등도 흥미로왔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렇게 쇼킹한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영화는 해피 앤딩을 맞는 듯 보인다. 노조는 타협을 하고 토니는 자신의 아이를 낳은 신부와 결혼을 한다. 태어난 아기는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 듯하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무리 역시 숭고한 승리를 나타내는 듯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사회가 배출한 쓰레기들은 하수구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제 트랄랄라는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온전한 사랑의 상실감만으로 영혼을 적실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사무실 아는 안을 바삐 움직이던 허리도 점차 행동이 느려졌다(중략) 태도나 행동에 절박함이 전혀 없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나니 그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무임금 노동에 불과했다. 경쾌했던 분위기는 피켓시위가 시작된지 일주일 만에 시들기 시작하더니 토요일마다 식량 배급 줄이 생기고 남자들이 10달러 치의 식료품을 들고 집에 돌아가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198
피켓 시위를 할 시작할 때만 해도 남자들은 출근하는 회사 중역들을 보면 농담도 하고 간혹 야유와 조롱을 섞어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낮이든 밤이든 그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중략) 하루하루 같은 날이 계속 됐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졌다201
식량배급 줄을 서며 보낸 지난 몇 개월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는 꺾인 희망이 마침내 출구를 찾아 분출했다. 드디어 주먹을 휘두를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지겹게서 있기만 했던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203
남자와 여자로서 아니면 같은 남자로서 친구도 연인도 아닌 서로 사랑하는 두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세상에서 함께하는 3분... 손님도, 버러지 같은 놈도, 부치 여왕도, 아서에 대한 기억도 없는 세상에서 함께 한 3분.. 사랑이 가득한 이 순간..( 여왕은 죽었다 62)
그녀는 원하는 걸 얻었다 그저 몸만 내주면 됐다 재미도 있었다 가끔은 재미없으면 또 어때 상관 없었다 그냥 등을 대고 눕거나 쓰레기통 위에 엎드리면 끝이었다. 일하는 것보다 낫잖아. 게다가 재미도 있고. 잠깐이지만. 하지만 항상 시간은 흐른다. 그들도 나이를 먹었다. 친구한테서 푼돈 뜯어내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왜 취한 놈이 뻗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기다렸다가는 놈들이 빈털터리가 되고 말텐데. 턴 놈들은 군부대로 돌아가는 길가에 내다 버렸다. 밤마다 그릭스 맞은편 술집 윌리스에서 수십명이 나왔다.(중략) 덩치가 크거나 정신이 말짱한 놈들은 벽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만만치 않은 놈의 경우엔 하나가 붙잡고 여럿이 덮쳤다. (중략) 축 늘어질 때까지 두들겨 팼다. 완전 신나. 그러고는 피자와 맥주를 먹으로 갔다. 트랄랄라도 같이. 그녀는 어김없이 거기 있었다. (트랄랄라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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