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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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마르초가 쓴 맛의 천재와 주제와 글의 성격이 유사하다. 다른 점은, 마초니의 책이 이탈리아 요리를 대상이고, <음식의 언어>는 식문화를 포함한 전세계 요리가 그 대상이다. 케찹이나 피쉬앤 칩스 같이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음식의 언어학적 기원을 찾는다. 음식이 음식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 음식을 지칭하는 말과 함께 변화하는 진화적 흐름에 무게를 두었다는 차이점이 있다.


작가는 대학에서 The Language of food 라는 책 원제와 동일한 과목을 가르치는 유일한 교수이다.  작가의 동일 제목의 블로그에도 내용이 일부 공개되어 있다. 언어라는 말이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융합되어 변하는데, 음식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음식과 언어의 변화와 흐름을 역사와 공간적 맥락에서 쫓는다. 어떤 한 언어 혹은 단어라는 것의 기원을 생각하면, 생명체가 어느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는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진화 상의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생명의 진화가 화석과 같은 물리적인 자취와 화학 법칙에 기반한 증거들을 남기는 데 비해 글자 이전의 언어는 추적하기 거의 불가능하므로 상상력의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음식의 언어란 이런 거다. 첫째는 음식 자체에 대해 우리가 소리내어 발음하는 발화 언어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케찹’은 케찹이다. 아마도 케찹이라고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입에 감도는 맛의 느낌은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빨간색의 끈적끈적하고 묽으며 새콤달콤한, 대표 브랜드 병에 담겨져 있거나 하며, 프랜치 프라이 같은 기름진 음식에 뿌려진 것 등일 것이다. 이 케찹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푸첸성과 광동성에서 염장생선으로 만든 생선 젖갈에서 비롯된 음식이라고 한다. 생선 소스를 뜻하는 이 음식이 세대와 세대를 지나 계속해서 유라시아 전역과 신대륙으로 퍼져나가면서 말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조리법은 더 많이 변해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고 나중에는 주재료였던 생선이 빠지고 토마토가 들어가면서 케찹은 토마토 케찹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잘 모르더라도 앙뜨레(Entree)라는 말이 코스 요리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짐작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짐작과는 달리 북미에서 앙뜨레가 고기가 나오는 무거운 메인 요리에 해당한다. 반면 영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프랑스 요리에서는 짐작과 같이, 앙뜨레가 에피타이저의 역할을 한다. 저자의 친구인 한 프랑스인은 미국인들이 앙뜨레의 뜻도 모르고, 코스 요리에서 엉뚱하게 사용해서 헷갈리게 한다고 투덜거리는데, 따지고 보니, 이 당뜨레가 언어의 문법이 시대와 공간을 흐르며 계속 변화하면서 북미와 그 이외의 지역에서 다르게 굳어진 것이었다.


문화의 전파는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을 타고 전이되는 것이므로 당연하게도 변하는 법이고, 따라서 프랑스어 앙뜨레(Entree)가 영어의 엔터런스(Enterance)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틀렸다'는 건 아니라는 거다. 언어와 요리 문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어떤 단면을 잘라 보면, 식문화에서 앙뜨레라는 말이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고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었고, 또 반대의 때가 있었다. 14~16 세기에 프랑스에서 코스요리는 앙뜨레->스프->로스트->마지막코스로 분명 시작 요리를 뜻했다. 하지만 그 시작이란 게, 지금 처럼 스프가 아니라 소스를 뿌린 육류요리, 파이, 페이스트리 등이었는데, 이후 100년 동안 스프부터 먼저 먹는 방향으로 바뀌어 17세기에는 스프 다음 앙뜨레가 나왔고, 로스트 코스와는 구별되었다. 이후 18세기에는 두 코스로 나뉘어져 식탁 가득 모든 요리가 차려져 나왔는데 주된 요리는 가운데에 놓고 앙트레는 여기저기 흩어져 놓였다. 사소한 요리라는 의미의 오르되브르는 식탁 가장자리에 놓였다. 현재와 같이 손님들에게 개별접시에 담아 하나씩 서빙하는 방식은 19세기 러시아에서 시작되었고, 이 방식을 전파받은 프랑스는 식탁 가장자리에 놓여있던 오르되브르를 스프보다 먼저 내왔고, 이후 스프-생선-앙트레-휴식-로스트-다른코스-디저트 등으로 이어졌다.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영국,프랑스, 미국 모두 앙트레는 스프와 생선요리가 끝나고 서빙되는 알찬 육류 코스라는 의미를 유지했는데 미국의 경우, 생선 및 로스트 코스 등 여러 단계의 코스요리가 앙트레와 합쳐지면서 앙트레는 점차 메인요리가 되어갔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921년까지도 앙트레가 고전적인 메뉴의 중심인 육류 요리였는데, 1930년대에 단어의 의미가 변하여 달걀이나 해산물로 요리한 가벼운 요리가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



저자는 발화되는 언어 혹은 음식의 이름 너머에 있는 더 포괄적 범위의 식문화 자체의 문법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흥미로왔는데, 상대적으로 다루는 양은 적었다. 서구에서 모든 코스 요리의 끝에 반드시 디저트를 먹는 경우처럼, 식문화는 단순하게 한 두 가지 특성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처럼 각 문화에서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종합적 규모의 문법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인데, 영어의 경우 형용사가 명사 앞에, 목적어가 동사 뒤에 오도록 하는 등의 암묵적 규칙으로, 하나의 문법은 언어적 부분들이 어떻게 언어적 전체를 구축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처럼 식문화에도 그러한 암묵적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요리가 재료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특정 맛의 조합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필요한 조리 기술은 어떠한 것이지 등에 관한 종합적인 규칙이 전체 식문화를 말해준다는 것인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스요리의 순서, 베이킹과 오븐 화덕 등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요리 시설 뿐만 아니라, 전분음식과 비전분음식과의 조화, 단,신,짠,맵 등의 맛의 조화에 관련된 규칙등이 그것이다.



음식이나 식문화와 관련하여 짧고 압축된 언어가 담고 있는 힘은 수세기동안 이어져내려온 식문화의 역사다. 고추장 이라고 발음하면 단순히 비빔밥 위에 올려진 빨간색 덩어리가 생각나지만, 그 속에는 콩이 자라 열매 맺고 고추가 익어 마르고 빻이고, 이들이 찹쌀과 만나 섞이고 오랜 시간 항아리 속에서 미생물과 함께 화학적 변화를 겪는 길고 긴 시간동안의 과정이 있고, 숙성되는 그 긴 시간과 만드는 사람의 노고까지도 고추장 이라는 이름은 담아내고 있다(인스턴트 고추장은 제외). 음식 뿐만 아니라 사물 혹은 어떤 개념의 이름에는 장구한 인류 문화사가 녹아 있다. 테드 창은 이름이라는 것은 우리가 게임을 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닉네임을 만들어내듯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름 자체에 에너지와 힘을 갖는다는 상상을 했다. 그는 이런 개념을 계속 확장하여 <일흔 두 글자>라는 단편에서 이름과 사물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유사 생명이 실존하는 사회를 그렸다.



‘이름이 물체에 신성한 힘을 부여한다. ‘물질적 우주와는 별도의 어휘적 우주가 존재하며’

‘어떤 물체와 그에 조응하는 이름을 결합하면 잠재된 힘이 발현한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일흔 두 글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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