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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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집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가 원작에서 표현하지 못한 시각적 요소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고, 또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원작의 철학적 혹은 과학적 사고를 원작에서 읽을 수 있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준다. 영화의 내용이 방대한 편이라 장편 소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에는 <네 인생의 이야기>를 비롯한 8개의  단편이 약 440쪽 분량에 걸쳐 쓰여있다. 대부분은 50쪽에서 100쪽 사이 중편 정도의 길이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경우 100쪽 가까이 되기 때문에, 테드 창의 명성을 생각해봤을 때 아마도, (내가 어느 출판사라고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 xx 출판사라면, 단락단락마다 공페이지 넣고 단단한 하드커버 씌워서 단권 판매했음직한 책이다. 정가로 1만2천원 정도 받았겠지. 


바벨론의 탑

테드 창이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동시에 역대 최연소 네뷸러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작품이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처음에 읽었을 때는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어디인가, 어느 시대인가를 궁금하게 하는 배경에서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상상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바빌론의 탑을 쌓고 있는 풍경이 과학적 상상력과 만나 이루어내는 이야기는 읽으면서 느낀 문학적 지적 신선함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으나, 독자를 함께 한도 끝도 없는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가 없다. 


바빌론의 탑을 쌓는데 왜 광부들이 주인공일까. 이것이 바로 상상력의 문제다. 도시 전체는 축제의 분위기 속에 듬뿍 젖어 있다.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한달 반 가량 걸리는데, 그 탑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탑을 쌓기 위해 수레에 벽돌을 싣고 올라가기 때문에 넉 달이 걸린다. 구리를 파던 엘람의 광부들은 그 구리를 사가던 도시 바빌론에 처음 왔으며, 그들은 광부로서 온 것이다. 파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하늘의 천장을 파고 들어갈 광부들. 하늘을 뚫으면 무엇이 나타날까. 짜자자잔 기대하시라


이해

이런 이야기는 영화로도 본 듯한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이지만, 소설로 읽었을 때에 접하는 지적인 구라는 그 어떤 영화로도 설명 불가능할 것이다. 사고로 극심한 뇌손상을 입은 환자에게 호르몬 K 요법은 손상된 뉴런을 대량으로 재생시키면서 두뇌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는 '부작용'을 입게 된다. 고로 결과는 평범했던 사람이 천재가 된다는 것. 여기까지 보면 그럴 듯한 상상력이고 보던 듯한 스토리인데, 그 천재가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천재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라는 것.


영으로 나누면

수학자 르네는 1+1=2 가 아니라 무한한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다.  줄곧 믿어왔던 이론이 통째로 부정되고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모든 증거가 새 이론 쪽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르네는 그게 아니라 주장한다. 남편은 어떤 방법이로든 수학적 이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1=2라는 자가 당착에 빠진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돕기 원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추구해왔던 모순되지 않고 논리 정현한 수학이라는 세계가 난센스라는 사실에 절망한다.


손가락으로 1 더하기 1을 해보면 언제나 2가 나오지만, 종이 위라면 난 무한한 수의 해답을 써넣을 수 있어. 그것들 모두가 똑같이 유효하고, 바꿔 말해서 모두 똑같이 무효한 거야. 난 당신이 본 중 가장 질서정연한 정리定理를 쓸 수 있지만, 그건 난센스 방정식 이상의 아무 의미도 없어.” 르네는 쓰디쓴 웃음을 웃었다. “실증주의자들은 수학이 동의반복이라고 주장하곤 했지. 그들의 말은 모두 틀렸어. 수학은 자가당착이야.


네 인생의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은 아직 태어나지 않을 자신의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다.  "오늘밤의 이야기, 너를 잉태했던 이 밤의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단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네가 너의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얘기이고 우리는 결국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겠지" 딸에게 하는 이 문장에는 미래 시제와 과거 시제가 섞여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어떤 소망과 또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엄마다. 언어는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라고 하는 이론이 맞다 하더라도, 그 생각하는 방식이란 게 미래를 보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축복이다. 


(더 있는데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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