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2 -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기행문은 1편에서 이어저 8월 9일부터 14일까지 일기 형식으로 계속된다. 연암 일행은 열하에 도착하여 태학관에 머무는데, 태학관이라는 곳이 청나라의 고관과 과시 준비생 및 학자들이 묵던 곳이라 그곳에 머무는 동안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연암은 만나는 사람마다 눈코입의 상세한 생김새와 차림새를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또한 몇마디 나누어보고 그의 학식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특이한 점은 여행 길에서도 그랬지만 태학에서는 더더욱 연암을 보고 읍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시 태학관이라는 곳이 황제의 생일 축하연이 있는 주간동안 세계적 규모의 축제 분위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연암은 청의 여러 지식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주제는 지리, 풍속, 제도, 천문과학, 종교, 역사 등의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지적 교류를 남긴다. 왕곡정과 윤가전과는 몇일 밤을 꼴깍 꼴깍 새워가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지적인 대화들을 나누었으며 이들을 별도의 글로 남겼다. 열하에서 만나 인연을 만든 사람의 수만도 손에 다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데, 이들의 이력과 출신, 성격, 만나게 된 배경들을 경개록이라는 별도의 글로 만들어서 열하일기 전체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개괄적인 이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여행 중 연암은 처음 밟아보는 변방의 땅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들으며 예리하게 관찰하고 조선의 현실과 비교한다. 금광과 목축에 대한 사색이 기억에 남는데, 이 기록이 맞다면 당시 조선의 압록강에 많은 양의 사금이 있었으며 이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밀매되었는데, 중국에서 보는 웅장한 건물들 지붕이며 벽에서부터, 모자에 박힌 금까지 모두 조선에서 나온 금이라고 하는 것에 놀란다. 조선에서는 금이 귀해 금관자나 금띠를 두르는 이품 이상의 벼슬마저 서로 빌려서 사용하는데, 열하의 기와에 도금한 그 흔한 금이 모두 우리나라에서 난 것인지를 의심한다. 당시 사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돈은 은자로서, 조선에서는 은이 흔했고 그것이 조공무역 과정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왕실에서도 모르고 중국 황제도 모르고 있는 사금 역시 알게 모르게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이와 부채, 그리고 연암의 필사기인 청심환 역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알아주는 물건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정자나 누각의 모든 창호는 조선의 종이를 발랐다고 한다. 한지의 세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심환은 도대체 얼마나 싸짊어지고 갔을지 모를 정도로, 연암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물이나 답례품으로 주는데, 또 여행 중 만난 중국 사람들은 이것 한 알 얻자고 별별 사기를 다 친다. 1편에서도 먼저간 사신들이 행폐를 부렸다고 거짓말로 불쌍한 척을 해서 얻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뜻하지 않은 엉뚱하고 난처한 만남의 대부분이 기승전->청심환한알만 굽신굽신으로 끝나는 것이다. 사실 내게 중국 사람들은 좀 사기꾼같은 기질이 있다는 있는데, 이 사람들을 보니 딱 그렇다. 하다못해 절에 사는 중까지 목이 말라 오미자 몇알 따먹었다고 연암을 잡아먹을 구는데 결론은 청심환 한알만 주쇼로 끝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당대에 연암이 홍대용과 교류하며 지구는 둥굴다는 것, 지동설, 그리고 여러가지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들을 단지 철학적 통찰만으로 추리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주의 별들과 달에 대한 섭리를 만물의 세심한 관찰로부터 유추하여 통찰로 얻어내는 과정은 놀라운 것이었다. 


"지구의 본체는 둥글고 허공에 걸려 있어 사방이 모나지도 않고 또 위와 아래도 없으며, 도는 모양이 마치 문의 돌쩌귀가 돌아가듯 해서 태양과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이 아침에 먼동이 트는 지방이겠지요? 지구가 점점 돌면서 처음 태양과 마주치는 곳에서 점점 어긋나고 멀어지면서 정오도 되고 해가 기울기도 하여 낮과 밤이 되는 것이겠지요?"


"비유하자면 창구멍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와 크기가 작은 콩알만 하게 되었을 적에 창 아래에 맷돌을 놓아두고 햇살이 비추는 곳을 먹으로 표시한 뒤 맷돌을 돌리면 먹으로 표시한 부분은 처음 햇살이 비친 곳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서로 어긋나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게 될까요? 맷돌이 한 번 돌아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면 햇살과 먹을 표시한 부분이 겨우 합해졌다 잠시 만에 다시 사이가 벌어질 것이니, 지구가 한 번 돌아서 하루가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이겠지요?

또 등불 앞에서 물레가 돌아가는 것을 관찰해 보십시오. 물레가 돌아가는 곳마다 면면이 빛을 받게 될 것이니, 이는 등불이 물레 주변을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


"해와 달은 오른쪽으로 돌아 마치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 그 궤도가 크고 작은 것이 있고, 돌아가는 속도가 더디고 빠른 것이 있어서, 일 년이 되고 그믐이 되는 것이 모두 정해진 법도가 있습니다. 해와 달이 왼쪽으로 돌면서 지구를 두른다고 말한다면 우물 안에 앉아서 하늘을 보듯 지나치게 좁은 식견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이야기들을 뭘 잘 모르는 기풍액에게 하였는데, 그가 좀더 학식이 높은 윤가전과 왕민호에게 알려 이를 듣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왕민호와 윤가전과 함께 그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필담을 나누는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생신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열하로 갈 때 사신 일행은 황제의 명에 따라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배도 먼저 타고, 수많은 중국측 수행원들의 대접받으면서 가게 되는데 반대로 돌아갈 때는 찬밥신세가 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당시 청나라의 황제는 서번(티베트)의 승왕인 반선(성승, 달라이라마)을 당시 황금 지붕으로 된 궁전으로 된 데려다 놓고 극진한 대접을 하고 있었고 조선의 사신들에게도 그를 만나보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중국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로 보고 교류하지 않는 것을 법도로 알고 있던 융통성 없는 조선의 사신들은 이를 거절하다가 어쩔 수 없이 보러 가고, 가기싫어 죽겠는 표정으로 가서는 예도 갖추지 않고(절도 안하고) 뻣뻣하게 군다. 그것도 모자라 귀행길 안전을 빌어주는 부적으로 하사받은 구리불상 및 여러 하사품들을 하찮게 여긴다. 청 황제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이런 일들은 황제를 명을 받들던 예부와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북경으로의 빠른 귀환으로 이어진 듯싶다. 


오늘날 에세이같은 성격도 있고, 때론 과학서나 역사서 같기도 한데 여행 중 만났던 인물들과의 관계와 개성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에 때때로 소설과도 같은 풍경이 자주 만나는데, 개성면에서 단연코 가장 빛나는 인물은 연암이다. 곡정필담에서 특히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어마어마한 지식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시대와 공간을 종횡무진 마구 가로지르는 왕곡정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지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와 동등하게 서로 이게 옳네 저게 옳네 하며 비판하면서 심도 높은 대화를 하는 이상적인 학자면서 또 밖에 나가 술집을 기웃거릴 때에는 생전 처음 보는 '험악'하게 생긴 서역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술동이채 털어 넣는 술허세를 보이기도 한다. 


2편을 읽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는데, 읽어도 읽어도 영 모르겠는 난코스가 있다. 라마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황교문답과 반선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선문답까지는 좋았는데, 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이야기라는 망약록서와 곡정과 나눈 필담인 곡정필담 이 두 부분에서는 좀처럼 읽어도 읽어도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제 자체가 이 주제 저주제로 종횡무진 마구 가로지르는데다가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들이 자유자재로 거론되고 이것들에 대한 두 상반된 시각, 혹은 두 공유된 시각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흘러다니기 때문이다. 


황제의 생일을 맞아 중국을 둘러싼 각국에서 조공들이 들어오고, 요술쇼도 구경하고 열하는 완전히 세계적인 축제 분위기다. 우리의 연암선생은 신났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기고 먹고, 마시고, 허세도 부리면서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처럼 편하게 편과 메모지가 흔한 세대도 아니고 글자를 쓰려면 먹을 갈아 붓으로 쓰는 시대에 어떻게 말안장에서까지 글을 썼는지, 또 필담하고 난 후에 중국인들은 그것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말들을 기억해서 기록했는지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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