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이즘 - 나는 대한민국 로봇 휴보다
전승민 지음, 오준호 감수 / Mid(엠아이디)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한 때 개그콘서트에서 시작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우습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은 엄청나다. 우리 땅의 척박한 제도와 빈약한 지원하에서 무관심으로 길러낸 수많은 국가대표들의 존재에 대해 무지한 경우도 많다. 1등을 하려면 2등과 3등이 있어야 하고 수없이 많은 무등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함에도, 우리는 1등만 기억하고, 또 그 1등이 세계에 나가서 다시 또 1등을 했을 때 그들이 하는 종목에 열광한다. 치열한 경쟁과 작전과 반전이 드라마를 쓰듯 아슬아슬한 경기 상황을 제공해주는 스포츠 경기가 아닐 때에 우리 관심은 훨씬 적어진다.

 

로봇에 대한 무관심은 인체를 모방하는 하드웨어 기술에 대한 실망감을 반영한다. 우주에 로켓을 수도 없이 쏘아 올리고,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분석해내고 컴퓨터가 인간 최고의 체스챔피언과 바둑 챔피언을 이기고 음악을 작곡하고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소설을 쓰는 시대에 인간을 닮은 컴퓨터가 인간과 비슷해진 정도는 이제 겨우 시늉만 내는 단계같다. 무수히 많은 SF 영화에서 인간인지 로봇인지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똑똑하고 정교한 로봇이 등장하지만, 더 많은 무수한 SF를 현실로 만든 다른 수많은 기술들에 비하면 현재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로봇의 수준은 가상의 세계에서 익숙해진, 높아진 눈이 기대하는 것에 못미친다.

 

인간의 뇌를 흉내내는 소프트웨어 발달은 사용자가 미처 따라가기 힘들 속도로 미칠듯 발전하는데, 사람의 몸동작을 흉내내는 하드웨어의 발전 속도는 왜 이다지도 느린걸까. 인간의 몸은 수억년에 걸쳐 정교하게 적응된 진화적 산물이고 인간의 논리적 사고와 계산 결과로 만들어내는 정신활동은 학습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인간이 걷는 것은 특별한 노력 없이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주어진 능력이다. 반면 계산 능력은 학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무어의 법칙에 따라 매 2년마다 배속으로 용량을 키우며 인간의 학습 능력을 모방하기 때문에 그 가속의 작용 속에서 윤리적 사회적 쟁점을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되는 동안 하드웨어는 비약적 속도의 발전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걷는 일은 간단하지만 움직이는 기계는 바퀴로 굴러간다. 수많은 근육과 신경의 사이에서 수없이 많은 정보의 조합들이 몸을 지탱하고 골격을 움직여 걷는 일에 비해, 큰 덩어리들을 이어붙여 인간을 흉내내는 기계는 걷기가 엄청 힘들다. 인간의 모습과 닮은 로봇을 휴머노이드라고 하는데, 휴머노이드의 핵심 기술은 얼마나 잘, 빠르게,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느냐가 첫번째 관문이다. 80년대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었던 일본의 혼다는 30년동안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에게 쏟아부었고, 현재 가장 빠르게 걷고 뛰고 춤까지 출 수 있는 만능 로봇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로봇을 만들었다. KAIST에서 아주 약간(매년 약 2억)의 연구비만을 지원받아 겨우 10여년에 걸쳐 만들고 있는 로봇의 이름은 휴보다(나무위키에 의하면 아시모 개발비에 비해 1/1000 수준이라고 한다.) 휴보는 작년(2015년) 미국 재난구조로봇 경진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다.

 

재난구조로봇 경진대회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미국방연구소에서 거액의 상금을 걸고 진행하는 로봇 경진대회다. 방사능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인간 대신 로봇이 사고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밸브를 잠그고 할 수 있었다면 사고가 최소화되고 복구도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중심을 잡고 서서 걷는 것만으로도 구현하기 힘든 로봇 기술의 현주소에서, 경잰대회의 미션은 차량을 타고 직접 운전하고, 문을 열고, 장애물을 보고 판단하여 울퉁불퉁한 곳을 넘어가서 밸브를 찾아 잠그고 장비를 찾아 벽을 뚫는 고난이도 동작을 포함한다. 로봇 과학자들은 이 미션을 보고 DARFA가 미쳤다고 저게 어떻게 가능하냐고들 했다는 후문인데, 그것을 한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로봇 휴보 DRC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수행하여 우승한 것이다. 왜서인지, 아시모는 참가하지 않았으나, 일본의 다른 로봇을 포함한 세계 유수의 로봇들이 곳곳에서 넘어지고 자빠지며 실패를 하는 것과 달리, 성공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로봇 휴보는 유튜브 영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에 들어가서 작업하게 될 로봇도 아마 휴보를 계승한 어떤 것일 듯하다.

 

하지만 유튜브로 확인하면 그 동작은 매우 느리고 답답하다.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서 한 발을 먼저 내려 중심을 잡는 동시에 몸을 구부리고 다른 발을 차에서 빼 땅에 딛는 차에서 내리는 그 간단한 동작을 휴보는 얼마나 긴 시간 동안에 해내는지.. 인공지능의 세계는 인간의 두뇌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그 인공지능을 담는 로봇의 하드웨어 기술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가지려면 아직 미지의 세계와 같은 두뇌가 인체 구석구석의 근육들에게 신호를 보내어서 움직이는 인간의 몸을 흉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대신 기계는 인간의 감각을 대신할 각종 센서들과 근육을 대신할 액추에이터,  벨트 체인, 감속기 등을 연결해 몸체를 형성하므로, 인간이 갑자기 큰힘을 쓰거나 정밀한 동작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힘과 정밀성을 모두 갖춘 유연함을 따라갈 수 없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무수히 많은 실험과 공학적 계산을 통해, 첫번째 관문인 걷기를 통과해서, 울퉁불퉁한 곳을 걸으면서 중심을 잡고, 중력에 저항해 동시에 두 발을 공중에 올리는 동작이 포함된 뛰기를 넘어지지 않고, 기계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가능하게 하고, 넘어져도 일어나고, 양옆으로 뒤로 회전하고 춤도 출 수 있는 단계까지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로봇과 사투를 벌이는 KAIST 연구원들의 노력을 읽으며, 다시금 인간의 몸이 얼마나 정교하게 진화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전기를 흘러넣으면 수축되는 인공 근육으로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로봇 공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을 연구하는 팀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대전에서 휴보의 첫 버전인 KHR-1 시절부터 꾸준하게 개발 과정을 취재하던 동아일보 과학부 기자가 쓴 휴보에 관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쉽게도 2014년에 출간된 책이라 2015년 재난구조대회에서 우승한 버전인 휴보 DRC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지만, 그동안 휴보가 만들어지기까지 흘린 노력들과 직면했던 어려운 점들, 그리고 조금씩 성공 신화를 쓰는 과정들이 기초적인 로봇에 대한 작동 설명이 깃들여져서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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