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척 하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 두 가지 차이 중에서, 실제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주로 다룬다. 그보다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척 하는 것과의 차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나는 이 두 가지의 차이 역시 실제로 아는 것과의 차이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리라 추측되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는 사지선다형 답안지에 익숙해져있다. 문제의 답을 모르면 모른다는 의견을 표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모르더라도 네개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답을 모르는데, 네 개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 인정할 수 없으니, 네 개 중 하나 중에서 답을 추측하거나 찍어서 그게 답이라고 생각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다. 혹 네 개중 답이 없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시험 답안지에는 답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모른다. 혹은 답이 없다 라는 선택지가 더 주어진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네 개 중 반드시 답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교육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확신이 없어도 이게 답이다라는 강요된 선택에 의해 선택된 답을 제출하여 점수를 받아, 그 점수로 구획된 틀 내로 살아가면서,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답을 몰라도 답을 알아야 하는 세상에서, 답이 어떤 권위가 이게 답이다 라고 정해 놓은 답을 고르기 위해 애쓰면서, 이게 답이다 이게 답이다 스스로를 세뇌하며 살아간다. 태극기 집회는 그런 그릇된 자기 확신의 끝판을 보여준다. 처음 찍은 선택지 답이 답이 되려면,그게 답이 안되는 다른 모든 객관적 정보들을 무시해야 하고, 그게 답이 되는 객관적 사실이 하나도 없으면 또다른 거짓된 앎을 추스려서 그걸 만든다. 그렇게 해서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고 가짜 사이트가 판을 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답을 아는 게 알게 된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님에도, 노인이 된다는 것은 선택한 답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아님에도, 때로 살아온 세월 자체를 지혜로 믿고 답이 거기서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나의 생각.


책 내용도 조금 하도록 하자. 믿는 바를 아는 바로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실제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굴 때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커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는데, 그런 잘못된 믿음을 혼자서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업으로 삼아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선거나 경제 전망에 관한 기사를 매일 쏟아내고 있는 매체와 유명 인사들의 예측은 “다트를 던지는 침팬지들”보다 별반 나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믿고 주식을 사거나 팔고, 부동산을 사거나 팔고 또 미래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예측을 특히 잘못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한 단어로 “독단.”으로 뭔가의 진위 여부를 모를 때조차 안다고 생각하는 확고부동한 믿음이다. “모른다”라고 말하는 대신 잘못된 추측을 말해도 실제로 잘못된 추측에 대해 실질 비용이 부과되지 않는다. 추측이 맞으면 영웅이 되고 추측이 틀리면 잊혀지면 그만이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데다 알카에다와 연합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근거로 벌어진 이라크 전쟁은 8년동안 8천억 달러의 비용과 거의 4500명에 달하는 미국인과 적어도 10만 명의 이라크인의 목숨을 빼앗아갔음에도, 처음의 그 잘못된 주장 때문에 생긴 사회적 비용을 아무도 변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고 대담한 예측이 우연히 실현되는 경우에는 거대한 보상이 뒤따른다. 이것은 패널티킥을 할 때 위험을 무릎쓰고 왜 구석으로 차는지도 설명해준다. 자기 명성에 끼칠지도 모르는 타격이 줄기 때문이다.



아는 체하라고 꼬드기는 인센티브가 그토록 강력하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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