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안희정.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아마도 그의 수식어로 따라다니는 고인의 넋을 가까이 있었던 저자의 어떤 일화나 추억속에서 우연히 발견 할지도 모를 희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대뜸 도지사 선거에 도전하는 의미를 물은 기자들에게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한다.

저는 모욕과 망신을 받으며 돌아가신 노무현 전대 통령의 안희정입니다. 그런 제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회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곧 복수입니다.

 

그는 분노를 내려놓겠다고 다짐하며 책의 서문을 열어간다. 정의가 패배했던 역사에 대한 분노, 노무현 대통령에게 칼끝을 겨누고 차디찬 벼랑끝으로 몰아 밀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내려 놓겠다는 것이다. 가스통을 메고 다니며 종북 좌빨 퇴치를 외치는 노인들을 하루일당 몇만원을 벌기 위해 동원된 노인들로 보지 않았다. 격동의 역사 속을 온 몸으로 관통해야 했던 시대적 비극이 탄생시킨 기형적 세대를 향한 연민의 시선으로도 읽지 않았다.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쌓여온 마음의 응어리들이 분노가 되고 이것이 또 다른 반대편  분노와 충돌하면서 극단적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며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현상으로 해석한다. 안희정은 정의가 패한 역사에 대한 분노와 노무현 대통령을 벼랑끝 낭떠러지로 밀던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함께 나란히 일직선상에  배치시킨 후, 극단적 분열을 자초하는 분노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나라를 몰락하게 할 것임을 염려하면서, 스스로의 분노는 이제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용서하지. 그의 고인을 위해 어떤  원망도  변명도 없이 3년의 옥살이를, 그 흔한 사면 복권 마다하고, 고스란히 꽉 채우고 나온 사람인데. 이게 가능한가.

 

그렇다. 그는 화합을 말하고 있다. 상생을 말하고 있다. 대치가 아닌 선한 경쟁으로 함께 가야 할 대한민국, 그의 꿈, 그의 이상을 적고 있다.  그는 이교도이자 흑인인 오바마를 무슬림 근본주의자로 매도하고 비난으로 야유하는 공화당 집회의 청중을 향해 존 매케인이 오바마는 아랍인이 아니며 단지 몇가지 주요쟁점에 대해 우리와 견해를 달리할 뿐이라고 뿐이라고 힘주어 강조한 2008년의 대선 연설장을 회고하며,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향해 온갖 비방과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며, 진보와 보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체를 함께 책임지는 경쟁자라는 틀 안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안희정은 이 때 느꼈던 뜨거운 전율과 감동을 독자에게 전하며 대한민국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참된 화합을 희망한다.

 

에세이 모음 형식으로 된 이 책을 저자 안희정이 주로 충남 도지사로서의 도 운영에서의 경험과 그 과정에서 체화한 자신의 정치 철학과 이상을 담고 있다.


새정치라는 국민적 허상이 만들어낸 현상 속에서 기성 정치인으로서 새정치인(안철수)의 등장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시선은 자못 자기고백적이고 솔지한 자신의 정치 철학을 대변해 준다.  국민들은 언제나 기존 정치를 혐오하고 참신한 인물을 원하지만, 새정치를 앞세우고 정치권에 들어오면 곧바로 기존질서와 기득권에 충돌하게 되고, 현실정치에 권력자가 되고 나면 기존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견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누구든 권력을 갖게 되고, 타협은 불가피한 것인데, 더럽지만 진흙탕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면서, 결국 정치는 인간 세상의 모든 탐욕이 뒤엉켜 만들어지는 타협의 장이라는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그의 정치관은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다소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는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메커니즘을 존중하되, 대기업과 정경 유착이라는 힘의 논리로 중소기업의 자유 경쟁적인 질서를 방해하지 않도록 정부는 중재할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차분한 톤으로 납득시킨다.  노사 대립의 양상 역시, 노조가 전체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면서 소수(15%)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회사를 점거하고 공권력이 개입하여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 세계적인 추세인 시장 개방을 통해 경제적 영토를 더욱 넓혀야 하며,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과 같은 특정 기득권 세력의 서비스업의 진입 장벽을 다양한 형태로 낮춤으로써, 경쟁력있고 다양한 고급 서비스업의 확장을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자본의 유연성을 위해 비정규직 고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개인 또한 국가와 기업이 자신을 평생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오히려 보수의 주장들과 일치하는 요소가 많은 이러한 자율 조정 기능의 강조는,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대안을 내보인다. 이제는 분배냐 성장이냐의 낡은 대립적 주장을 거두고, 최소한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의료비의 혜택을 못받아 아파 죽지 않고, 하는 등의 국가와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의 이상은 꿈같이 환상적이고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자기 비판(당 혹은 진보 비판)적이다. 그러나 실현가능하고, 대안제시적이며, 경험과 충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로 그의 생각은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의에 찬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빌미를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행간에서 비쳐지는 그의 철학과 고민,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드러난 그의 소신과 원칙있는 행동은 책을 읽으면서 드러난다. 그렇다. 고인의 넋은 그의 정치 철학, 합리성에 바탕을 둔 소신 있는 선택, 정신적인 가치에 스며 있었다.

 

(* 2013년 출간 직후, 신간 이벤트를 통해 읽고 쓴 글이다. 대선 정국에 다시 읽어보려 생각해보니, 약 1년전쯤 책 정리를 하면서 요구르트 배달직원님께 드렸는데 마침 리뷰쓴 것이 남아있었다. 헌재가 내린 결정에도 불복하는 사람이 아직도 미디어를 시끄럽히는 시간동안,  나는, 삭지 않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할지, 분노의 에너지를 더 끌어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내려 놓아야 한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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