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500년 전통 명문가의 집밥.집술 이야기
김봉규 지음 / 담앤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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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리서는 절반은 남자가 썼다(p13)'. <산가요록>, <수운 잡방>, <도문대작>,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이 그것이다. 사실 책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이 미리보기 페이지에 나온 조선시대 기록들을 추적하며, 실제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음식문화와 조리법등을 비교하며 어떤 요리와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조선시대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조리서에 대한 내용 보다도 누가 썼느냐는 것과 그 책을 지은 사람들의 가문에 대한 것이 많다. 책의 내용에 밀착되었다기 보다는 간략한 소개에 그친다. 한국을 대표하는 종가집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음식에 대한 소개와, 그 종가집 가문에 대한 소개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레서피 책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미리보기를 했는데 첫 챕터의 제목이 <선비, 셰프가 되다>였다. 그 다음에 머리속으로 상상된 것은, 부엌에 나가 직접 칼질을 하고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우아한 선비의 모습이었다. 멋지다. 멋질 듯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500년 조선을 뿌리깊게 지배하던 유교라는 가치는 후세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지 못한다. 당대의 가치와 사상은 체통 있는 남자에게 한 몸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먹는 일을 금기시했다. 


첫 장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요리가 남성의 전문 영역이어서 남자는 아예 부엌을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는 가정이 많았다고 적고 있다. 사실 남존여비가 과연 진짜 유교사상의 뿌리에서 나온 것인지, 차별을 사상화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도 없다.  그러니 유교는 그만 까도록 하고 경험을 돌이켜 보면, 확실히 내 아버지가 가스불을 켜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드신 적은 없다. 내 남편은 부엌살림을 장악했다. 내 아들은 자기가 먹을 건 알아서 먹긴 하지만, 내가 있을 땐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내가 만들어주는 걸 맛있게 먹어준다. 내 아버지가 부엌에 안들어간 게 남존여비 사상의 잔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집안에 할머니와 엄마가 부엌 살림이라는 역할분담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할 엄두를 못내셨는지는 결론내릴 수 없다. 어쨌거나 유교의 영향을 받은 500년 조선동안 유교 사회에서 부엌은 여자의 영역이었을 거라는 생각인데,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이나, 혹은 노비들도 부엌 살림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여자 가족이 없으면 굶어죽었겠네. 


책 내용은 먹치례와 술치례로 나뉘어져 있고, 각 종가집들이 제사 혹은 손님 접대 등을 위해 대물림하여 고유한 조리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 음식들을 다루는데, 기자가 돌아다니면서 듣고 모아 편집한 취재 형식의 글이다. 먹치례로는 각종 장류와 국수류, 제사상, 죽, 떡 등 여러가지 먹거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음식에 대해 다룬다기 보다는 그 음식이라는 무형의 문화를 지키고 있는 각 종가를 방문하여 가문의 내력과 가치관 종택을 비롯하여 고택의 내력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 종가집 대표 음식 한두 가지씩을 대략의 조리법과 재료 등과 함께 소개하고,  사진으로 구미를 돋구는 형식이다. 요리 얘기를 듣고 싶지 종가 가문을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러했다. 체계적인 조리과정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쓸만한 조리법은 전통주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1/3 가량이 가양주 담그는 법에 대한 내용인데. 음식 보다는 오히려 술담그는 내용이 흥미로왔다. 막걸리나 잘해봐야 안동 소주 수준에서만 전통주를 알고 있었는데, 책을 통해 여러 집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주들과 그 재료들, 그리고 빚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하향주는 양주방, 규곤시의 방,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산림경제, 고사 촬요, 주방문, 역주방문 등 수많은 조리서에서 언급되는데, 찹쌀로 빚어, 인동초, 들국화 달인 물을 부워 발효시킨다(p283)는 천하 명주다. 백일주는 100일간 발효시키기 때문에 백일주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낮은 온도에서 백일을 발효시키기 위해 겨울에 빚었고, 여러 지역 종가에서빚어왔는데 여기서는 계룡 백일주를 소개한다. 멥쌀로 담근 밑술과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말린 후 재래종 국화와 진달래꽃 오미자 열매 솔잎을 재료로  섞는 덧술, 이후 2개월 이상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 다시 저온 숙성 시키는데, 상품화되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역마다 가문마다 좋은 전통주가 많았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단절됐습니다. 그래서 좋은 누룩도 술도 식초도 사라져갔지요(p287). 


식민지배가 앗아간 것들 중에는 복구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프랑스나 유럽의 와인과 맥주가 지역마다 특색있는 것들을 생산하고 잘 길들여 맛있는 술을 만들어내는 효모들을 보존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고유한 술을 잘 보존했다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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