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누었다. 선택은 두 가지다. 빨리 해체해서 버릴 것인가. 구조해서 활용할 것인가. 시간이 무한한가.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쪼개고 또 쪼개면 인생이 유년,청년,장년, 노년기로, 그것이 다시 10년 단위 인생으로,1년으로, 한달로, 하루로, 1시간으로, 10분으로 1분으로 1초로 무한히 쪼개지므로,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무한을 인생의 무한으로 환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길은 무수히 많다. 길이 많다는 건 길의 개수가 많다는 게 아니라 선택의 순간이 많다는 거다. 무수히 많지만 한 순간에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둘 중 하나, 0과 1, 한다와 하지 않는다, 참과 거짓 , 온/오프. 무수히 많은 찰라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고냐 스톱냐를 결정하며 길을 걸어간다. 평생토록 인간을 괴롭히는 결정이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길이 많은 건, 그 많은 살아가는 많은 순간동안이 그 순간순간을 이루는 모든 시간이 알게 모르게 선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순간과 그많은 양자택일의 조합은 무한하다. 컴퓨터와 인간이 다를 게 없다. 0과 1로 이루어진 무한한 세계(어쩌면), 그것이 인생이다. 고스톱 게임은 숨쉬기를 껐을 때에야 끝난다.

선택은 언제나 직관이 한다. 직관은 유전자에 박혀진 코드들의 어떤 조합이 그동안 살아온 생, 순간순간들이 선택해서 만들어낸 삶의 경험과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또다른 순간적인 선택이다. 여기서 살아남을 것인가. 이 말은 또다른 무수한 말로 바꿀 수 있다. 여기서 함께 썩을 것인가. 여기서 내 젊음을 탕진할 것인가. 여기서 이대로 소모될 것인가. 배가 왜 누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 회사는 배가 눕는 것을 막을 수 없는 회사라는 것. 막 진수를 마친 새 배가 그대로 한쪽 면을 물에 잠그는 것을 묵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서른을 넘은 젊은이는, 이제 청춘이랄 수도 없는 남자는, 희망 없는 잡지사 기자 생활을 도망치듯 한국을 빠져나와 새로운 길이라고 도전했던 이 중국 내 한국 조선사의 말단 직원은 배를 만들어 보기도 전에 배가 눕는것을 본다. 누운 배는 이제 그의 일이되었다. 보험사와 협상을 한다. 가능하지 않았던 일을 가능하게 한 팀장의 추진력과 능력을 배운다. 배는 누웠지만, 거짓은 진실이 되어 보험사에서 전액 보상을 받고 그 누구도 책임을 캐지 않는다. 무엇이 배를 눕혔는가는 관심대상이 아니다. 배가 누울 수 밖에 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미 누운 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누운 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해체해서 구할 수 있는 부품과 고철을 처리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러나 공동체의 결정은 공동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신처럼 군림하는 어떤 힘에게서 나온다. 그것은 회장이다. 회장의 말은 진리다. 작은 블록 회사에서 시작해서 굴지의 조선사를 일군 회장은 전설처럼 누운배여 일어나라 했고, 기적처럼 배가 일어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했으므로 회장은 또다시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1여년 바닷물에 몸을 잠긴 채 누워있던 반쪽이 말짱했다면 말이다. 기적처럼 배를 움직여 누워 있던 배를 일으켜세웠으나 진실의 한쪽이 썩은것임이 드러났을 때, 신은 아무말도 었다.

회사 생활을 하려면 여러가지 규칙을 배우게 된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조직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차곡 차곡 올라간다는 것을 뜻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 자기개발서들이 알려주는 것은 천하에 아무 걸림이 없이 완전히 신이 된 회장급의 인물이거나 능력에 따라 진급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말단급 사원들에게는 대체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인생을, 성공을 스스로 정의내려야 하고 많은 변수들의 어떤 항을 선택해서 얼만큼의 에너지를 쏟을까의 문제가 개입된다. 공동체 입장에서 봤을 때 회사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주인공은 두 가지의 큰 흐름 속에 선택에 직면한다. 사장의 두 팔인 무능과 탐욕과 부패의 상징인 임원들과 결별한 팀장은 그 어려운 때 누운배의 보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내지만, 무능한 임원들보다 능력이 뛰어났기에 업적을 가로채이고 진급에서조차 누락되고, 회사를 나간다. 채권단에서 선정한 새로운 사장 황사장은 탁월한 작업능력과 끊임없는 혁신, 불타는 열정으로 이 썩은 조직과 싸워 통채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회사를 조금씩 변화시켜나가지만, 그의 영향력이 신보다 강하면 안되는 거였다는 교훈을 남기고 초라하게 떠난다.

주인공의 갈등은 여기에 이다. 처음부터 엉망진창인 회사에서 팀장의 일하는 방식을 흠모하였지만, 힘있는 임원들에게 붙어먹지 않는 것에 불안과 불만을 함께 느낀다. 팀장의 탁월한 업무 능력에서 스펀지같이 많은 것을 빨아들이며 일을 배우고 멘토처럼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회장으로부터 탄력있는 힘으로 탄탄한 가림막이 되고 승진과 보상이 뒤따르는 저쪽 편의 안락함이 필요함을 느끼는거다. 황사장의 혁신적인 관리로 변화하는 회사를 지켜보며 한동안 황사장은 인생의 멘토로, 스승으로, 본받고 싶은 인물이지만 그(황사장)의 순수한 열정이, 조직에 대한 헌신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실패로 이끄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추구하는 것이, 이 썩은 조직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 나태하고 방만한 임원들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전 인생을 통해 틈틈히 황사장과 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을 끊임없이 배우지만, 그것은 이상화된 사회, 당연히 우리의 이성이 그렇게 굴러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황사장과 팀장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그런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물에 잠긴 반쪽은, 차라리 물에 잠겼을 때가 나았다. 그 처참하게 썩어 흉칙한 몰골을 밖으로 그대로 드러내 보였을 때, 그것을 안보았다고 못보았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우리 속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어떤 힘은 힘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우리 사회의 반쪽,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그 반쪽, 뜯어 내어 분해하고 고철로라도 팔아 치워 없애야 할 썩어빠진 반쪽이 여전히 필요하다. 사회에 맞지도 않는 이상화된 자기계발서보다는 조직의 인간 패턴을 다루고 실리를 쫓는 방법을 신랄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이 책을 오히려 청년들의 썩은 사회 적응용 자기계발서로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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