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학의 기원이자, 방대한 규모의 그리스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읽다 보면 전차를 타고 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 벽화에도 바퀴를 이용했던 기록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다. 중세 시대를 지나오면서 서구의 전쟁터에서 전차는 쇠락했다. 고려시대까지도 바퀴를 이용한 탈 것이 존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바퀴달린 마차 대신 가마가 사람들을 날랐다. 


인류에게 바퀴의 역사는 기원전 4천년에서 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바퀴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류했는데, 양옆의 두 개의 바퀴가 차축 끝에 달려있어 차체가 회전할 때 함께 회전하는 장치인 윤축, 바퀴가 차축과는 독립적으로 제각각 굴러가는 독립차륜, 그리고 쇼핑카트나 가구 옮길 때 달린 바퀴인 캐스터가 그것이다. 바퀴가 처음 생겨난 이래, 인류가 발견해온 찬란한 문화유산들과 비교해볼 때 바퀴라는 것의 기술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 바퀴의 마찰력은 주어진 동력을 훨씬 더 큰 힘을 부여한다. 


그런데 왜 바퀴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의 동양권에서는 역사상의 한 때 사라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서구 문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되지 않았을까. 콜럼버스 이전의 미 대륙에 수레나 우마차가 없는 이유로 자주 설명되는 의견으로는 바퀴달린 이동수단을 끌만한 큰 짐승이 없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제라드 다이아몬드가 이 관점의 지지자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불리엣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저자의 생각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이 역사상의 아주 긴 기간동안 바퀴달린 운송수단을 이용하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하다. 


서양에서 각광받은 기술이 현재 지구촌을 지배하는 기술이 되었다고 해서, 그 기술의 근간이 되는 어떤 생활 양식이 다른 문화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찾는 것은 서구적인 관점이다. 바퀴는 서구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먼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어왔고 발전되었었다. 기원전 1200년경 상왕조 시대에 유목민의 전차 사용법을 도입했던 중국의 전장에서 기원전 300년 이후에는 기병대가 전차를 빠르게 대치하였다. 바퀴를 사용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어떤 시대에 마차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콜롬버스가 신세계에 도착했을 때 바퀴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토착민들에게 바퀴가 유용하지 않아서였지 가축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퀴달린 장난감을 만들었기 때문에 바퀴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바퀴의 기술적 문제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책에 의하면 사실은 바퀴가 전 역사를 통털어 늘 한결같이 유용했고 열성적으로 이용되었던 운송 수단은 아니었다. 말이 끄는 이륜 전차 암각화가 많이 남아 있는 사하라 남부지역의 여러 목축 사회에서도 거대한 가축 떼가 있었지만 바퀴는 없었다.  도자기 물레를 사용할 줄 알았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도 또 일찍이 기원전 3천년부터 달구지와 전차를 사용했던 메소포타미아와 무역교류를 했던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시대가 되었을 때에는 바퀴달린 이동수단은 부재했다. 기원전 3천년즈음 이륜수레와 사륜 전투용 우마차를 사용했던 중동에서도 기원후 첫 5세기 동안 바퀴달린 운송수단은 다 사라져버렸다.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때(기원후 800년 이후 17세기 이전), 기사들에게도 마차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여성들의 이동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통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1세(1515-1547)의 통치 무렵까지도 파리에는 마차가 세 채 뿐이었다. 하나는 왕비의 것이었고, 하나는 왕세자의 애첩의 것이었고, 또하나는 뚱뚱해서 말에 탈수 없던 귀족 남성의 것이었다. 바퀴에 깊게 패이고 진창인 비포장 도로에서 마차는 자주 전복되고 도시의 도로는 말의 배설물로 엉망진창이 되고, 사고가 잦았다. 이러한 별다른 기술적인 진보의 부재속에서도 17세기를 전후해 갑자기 마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그것은 이동수단을 바라보는 남성의 심리적 세계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이 기사의 지위 기반을 향상시키고, 말탄 기사의 위상이 마차의 사용을 위축시켰다면,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위협과 군사적 명성은 사륜 수레를 원형으로 배치하여 포대로 사용하던 전법에 영향을 받아 마차에 대한 새로운 환상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마차의 인기가 급등한 17세기 거리의 교통과 배설물, 진흙 문제, 바퀴자국 등의 문제로 영국 의회에는 마차의 남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기원전 1200년 무렵, 강력한 전차병을 보유했던 중국은 보병과 기마궁수의 진보로 이어졌고 전차 전투가 쇠퇴한다. 전차를 타고 이동하던 관습도 13세기 이전 몽골이 침략하기 이전에 사라졌다. 마차를 버린 중국이 대안으로 채택한 바퀴는 외바퀴 수레였다. 사륜 운송수단이 18세기까지 존재했으나, 영향은 미미했다.  책에 나와 있는 중국의 전통적 외바퀴 수레에 매료되어 사진을 조금 더 찾아봤는데, 방향을 가볍고 이동이 용이하고 방향 전환도 손쉬워서 농사일과 이동에 매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 대신 자동차가 동력을 대신하여 이제 바퀴달린 탈것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운송수단이 되어버렸지만, 동력이 없이도, 우리는 여전히 바퀴달린 새로운 것들, 근대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수많은 바퀴달린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쇼핑카트, 여행용 트렁크, 휠체어, 유모차, 바퀴달린 의자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자동차와 마차 사이에는 인간의 근력을 동력으로 이용하는 인력거가 아시아 권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인력거가 서구에서는 보이지 않고 동양에서만 보였던 이유는, 서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차는 짐승이 끄는 것이고 따라서 인력거꾼의 지위가 짐승수준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라는 건데. 인간을 사고 팔며 채찍질을 해대던 서구 제국주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쯤 되는 미개발국가에 와서 이런 씨도 안먹히는 생각을 퍼뜨렸다는 건 개가 들어도 웃긴 일이긴 한데, 그들의 노예산업을 예외로 치더라도 인력거를 끄는 일은 공장일이나 광부일에 비해 건강에 덜 해로왔을테고, 말이 싸는 배설물과 각종 사회문제에 비교해봤을 때에도 친환경적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퀴가 그 사회를 지적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서구인의 시각은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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