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천재 - 이탈리아, 맛의 역사를 쓰다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 / 책세상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 음식의 역사 책이다. 약 16가지 정도의 대표적 이탈리아 먹거리의 기원을 찾아서 먹거리 관련 책을 쓰거나 관련있는 시대의 인물들과 풍속들을 애기한다. 이미 정립된 어떤 확고한 사실 혹은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헌을 뒤져 어떤 요리가 탄생되기까지의 길고 긴 변천을 추적한다. 예륻 들면 로마의 요리책, 중세 때 수도사에서 펴낸 요리책 등을 뒤져 거기서 어떤 요리가 어떻게 변형되어가는지를 추측하고 추적한다. 요리 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디저트 등 여러 종류의 먹거리에 대한 것들도 포함한다.  읽는 동안 내내 행복했다. 


이탈리아의 국수류를 통털어 파스타라고 하는 것 같은데, 파스타의 종류만도 어마무시하게 많다. 파스타 중 특별히 실 모양의(우리의 국수) 긴 스파게티는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들여왔다는 설도 있는데, 이 책에 의하면 근거가 없다. 1938년 영화 <마르코폴로의 모험>에서 스코틀랜드인으로 변신한 마르코폴로가 국수가 들어있는 냄비가 뭐냐고 묻자, 중국인은 자기네 나라 말로 스파 게트라고 한다는 말을 듣는 장면과 함께 영화의 성공이 스파게티 중국 기원설에 결정적이었던 모양이다. 마르코폴로의 여행기를 받아 적은 감옥 동료 루스티켈로의 기록에도 파스타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스파게티나 베르미첼리라는 단어와는 무관했다는 이탈리아 저자는 당시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의 손님으로 몽고에 가 있을 당시 몽고인들은 스파게티를 먹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수천년부터 국수를 먹고 살았다는 증거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밀국수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터키를 거쳐 유럽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견은 양보가 없다. 


상이한 재료를 사용하여(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파스타는 그라노두로 만듬, 중국 국수는 평범한 밀로 만듬)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면서 제각기 고유의 문화로 정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의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이탈리아 못지 않게 크므로 어떤 결론이 나든 결론을 이끄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민속사의 가치가 클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주장이나 가설에 의지하기보다는 방대한 문헌을 꼼꼼하게 고찰하여 고증을 통해 역사와 기원을 캐는 방식으로 책을 쓰고 있으므로, 증거가 없는 부분, 기원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고 그만큼 독자에게는 상상력의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 그러니 앞으로 스파게티가 중국 기원이다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확실한 것일 수도 있고 마치 우리가 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수많은 다른 의견이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지식 혹은 믿음이라 할 수 있겠다.

요리역사가들에게는 파스타를 만들던 도구로 보였던,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에트루리아 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밀방망이 밀판, 바퀴모양의 물건은 고고학자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로마 시대에서 기원을 찾는 것은 완전히 억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확실한 기록만을 증거로 채택하는 저자는 2세기경의 로마시대 라가늄 조리법에서 라자냐의 기원을 찾는다. 인류의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진화의 뿌리인 최초의 생명체에까지 닿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기술도 어떠한 요리도, 곡식을 갈아 만든 음식으로 기원을 찾아볼 수 있지만, 라가늄은 파스타의 일종인 라자냐와 발음도 비슷하다.  조리법은 오늘과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밀가루 반죽이라는 공통 요소를 가진다. 라자냐의 기원(이라고 판단하는)인 로마의 라가늄은 밀가루 반죽에 상추즙을 섞어 얇게 만들고 향료를 가미한 뒤 튀긴 음식이다. 물컹거리는 라자냐보다는 로마 시대의 라가늄이 훨씬 맛있었을 것같다. 식용유가 흔하지 않았을테니 튀겼다는 말이 오늘날의 딥프라이드가 아니라면 부침개와 비슷했으려나? 상추즙이라니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삼색 국수의 원조도 로마로 거슬러갈 수 있겄네. 

3세기동안이렇게 저렇게 변형되어 가던 라가늄은 라자냐라는 이름으로 '로마시대의 요리사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아초피'가 기록에 남겼다. 아초피 라자냐는 '몇 장의 파스타 사이에 고기를 갈아 채워넣고 화덕에 넣어 굽는다'(p142). 그 까마득한 옛날에 요리사가 남긴 요리법까지 기록으로 남겼으니, 이탈리아가 로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밀반죽을 튀긴 것, 삶은 것, 구운 것 각각의 맛과 질감은 확연히 다른 것이어서, 로마시대의 굽거나 튀긴 요리를 오늘날의 마케로니의 뿌리로 보는 것은, 인간의 기원을 원숭이로 보는 것만큼이나 논란의 여지를 줄 수 있겠으나, '모든 것의 기원이 아랍인들의 건조 파스타에 있으리라'는 가정은 합리적이다. 신선한 파스타는 유통이 쉽지 않았고, 아랍인들은 멀리 여행을 떠날 때 가지고 다닐 음식으로 건조방법이 발달했으며, 건조 파스타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랍인들에 의해 시칠리아로 들어와 상로를 거쳐 유럽 각지로 전파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지중해 서부 가장 중요 항로였던 제노바에서 건조 파스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초기 파스타는 오늘날 세계인이 기대하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한시간 이상 푹 삶아 고기와 치즈, 설탕 계피 따위로 간을 해서 먹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에 익힌 후 물 속에 한시간동안 담가두기 까지 한 요리법이 중세 말기에서 근대에 들어서기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었을 거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13세기 말, 볼로냐의 한 수사본 문헌에 기록된 조리법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말린 후 고기 육수에 집어넣고 끓여 접시에 담은 뒤 치즈를 갈아 뿌린다고 되어 있다. 뭐지? 이건 닭칼국수를 삶아 건더기를 접시에 덜어 먹는 것과 똑같잖아? 1792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요리책에는 끓는 물에 세 시간 동안 익힌 후 10분 정도 육수에 담가두는(p148) 요리법이 여전히 출간되는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조리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이후 어느 정도 단단한 상태로 익히는 현재의 조리법에 이르게 된 듯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빨간색은 1800년대 이후에 나타난다. 그 전까지 파스타는 그냥 밀가루색이었다. 1700년대에 마카로니는 이탈리아의 국민요리가 되었다. 

'파스타는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제노바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어른이 되는 것은 폴리아주, 무엇보다도 나폴리에서다.' 그라노두로(파스타용 밀)가 익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가졌고, 모자란 그라노두로를 배로 쉽게 수입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리는 곳곳에 마케로니를 파는 노점상으로 가득했고,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집어들고 고개를 치켜든 쩍벌린 입으로 가져가는 풍경은 당시 나폴리의 여행 코스 중 볼거리의 하나였다. 이 볼거리들은 1900년대 초까지만해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있는 스파게티, 피자, 모짜렐라 치즈, 티라미수 외에도 세계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먹거리, 마실거리, 음식에 관련된 기원과 역사를 문헌을 통해 남아있는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책이다. 프랑스의 샴페인에 대적하는(값은 프로세코가 훨씬 싸다고) 탄산 와인 프로세코, 최소 12년의 숙성 기간을 거치는 전통 발사믹 식초, 왕들의 와인 바롤로, 칼테일계의 슈퍼스타 스프리츠, 물소의 젖으로 만들던 진짜 모짜렐라, 전세계적인 크리스마스 전통 케익이 된  판도로와 파네토네, 악마의 초콜렛 누텔라 등의 기원이 길고 긴 이탈리아의 역사속에서 변형되어 세계적인 음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책 속에서 찾았다. 잘 모르고 발음도 어려운 이탈리아 곳곳의 지명들과 그들의 역사 속에서조차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그러나 먹거리의 역사 속에서 획을 그어왔고 기록을 남긴 역사 속 인물들이 만들어간 먹거리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요리 중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면 샐러드, 폴렌타, 프로슈토, 파네토네, 카르파초다. 샐러드라고 하면 그 기원을 따지는 것조차 우스울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요리지만, 로마 시대때부터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주요 먹거리였으며, 육식을 주로했던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채식을 즐겨했으며 싱싱하고 바삭거리는 샐러드의 가치와 무한한 재료의 조합이 다양하고 신선한 맛과 영양과 건강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 어떤 채소라도 싱싱한 것이라면 기름과 식초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는 것이 샐러드였다고 한다. 폴렌타는 옥수수 가루를 물에 타서 끓인 일종의 죽이다. 옥수수가 남겨진 최초의 기록은 어느 귀족의 빌라에 그려진 그림으로 콜롬버스가 돌아온 뒤 73년이 지나서였는데, 부엌을 침투한 것은 5년뒤 수프를 끓여먹기 시작했다. 한 때 귀족의 상에도 오르기는 했지만 늘 가난한 사람의 음식이었던 폴렌타는 펠라그라의 발병에도 그치지 않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해 한때 사장될 위기에도 놓여있었지만, 슬로푸드로 소개되며 부활한다. 하몽으로 알고 있는 돼지 뒷다리로 만든 프로슈토, 얇게 저민 육회의 일종인 카르파초, 크리스마스용 케익 파네토네 등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들을 알게 되고, 그것들의 유래에 대해 곳곳을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특정 음식의 기원을 찾는 일은 어찌보면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며 기술이 다 그렇지만 특정한 문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무에서 유를 생성해내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의 기원은 기본적으로는 아주 먼 고대의 음식이 서서히 변천되어 가는 과정에서 특정 지명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다가, 조리법은 서서히 세기와 세기를 거듭하며 바뀌고 이름도 새로운 이름을 갖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독단적인 요리가 되는 것이다. 티라미슈만 해도 그렇다. 서로 자신이 발명했다며 나서는 사람이 많아 치열한 법적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이 요리의 탄생은 고작 1970년대의 일이다. 누텔라와 같이 기업인이 직접 만들어 상표권 등록을 한 경우가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대개의 요리는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 ,또 한 고장에서 다른 고장과 다른 나라로 전파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형되고 다르게 불리면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낸다 마치 생명의 진화를 연상시킨다. 저자 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의 책 <책공장 베네치아>를 작년인가쯤에 너무 재밌게 보아서 이 책을 샀는데, 기대를 충족시켰다. 생소한 대명사들이 너무 많아 읽는데 엄청 많이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언제든 자꾸 펼쳐보고 싶은 책이어서, 주말에 놀러다니면서도 틈틈히 야곰야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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