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주름잡았던 한 천재 야구선수가 마지막 게임에 임하고 있다. 선택받은 투수 우태진의 인생에 빠르고 강속구는 그의 정체성이자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가야할 자존심이다.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되어 메이저리그에서까지 활동하던 그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 무리한 동작으로 여러번의 부상을 입고 퇴물이 되어가고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결정한다.한 때 타자들을 번번히 삼진아웃시켜 야수들을 심심하게 했던 그의 힘찬 공은 부상 이후 야수들을 흙먼지 뒤덮히게 한다. 하지만 그는 부상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같은 공만 고집한다. 그에게 다른 방식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그가 아닌 자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고 그는 무덤에 서 있다.

은행에 강도가 들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데 인질이 총 27명이다. 그의 요구가 황당하다. 우태진이 세명의 타자를 아웃시키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한 회를 버텨낼 때마다 세명의 인질을 내보내겠다는 거다. 부상으로 공이 위력을 잃은 우태진은 느려터진 자신의 공을 만만히 보고 마구 배트를 휘두르다가 아웃당한 타자들 덕분에 초반을 견뎌냈지만 더는 그의 맥아리 없는 직구와 변화구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제까지 포수의 사인을 받지 않고 왕년에 아무도 받아내지 못했던 직구만을 고집하던 그는 이제 은행의 인질 구출에 따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포수와 협력한다.

그가 무덤에 서서 포수가 원하는 공을 던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자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자고 생각했던 이제까지의 야구 인생. 인질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고 나를 죽이고 그 무덤 위에 서서 패수가 골라주는 공을 치자 팬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당황해한다. 대체 나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이제까지 외면하고 무덤위에 서고 나서야 이런 공을 던지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포수와의 협력도 9회를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다. 감독은 그가 몰래 너클볼을 연습했던 걸 눈여겨보았다가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너클볼은 회전이 없이 던지는 볼로 모든 힘과 의지를 내려놓고 바람에 공의 방향을 맡기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한회 한회 마운드를 버텨가는 동안 우태진은 뜻하지 않은 퍼펙트 데임에 다가가게 된다. 퍼펙트 게임은 투수가 타자를 1루로 내보내지 못하고 거두는 승리다. 우태진이 위력있는 강속구로 세기를 주름잡을 때 같은 편 선배의 실책으로 8회에서 퍼펙트 게임이 실패했다. 기고만장했던 그는 그 선배를 팀에서 쫓아내버리고도 평생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한편 은행에서 인질을 잡고 있는 은행 강도는 약속한 대로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차례로 세 사람씩 내보내지만, 보통 은행 강도 같지 않고 매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돈도 강탈하지 않는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하필이면 날개 부러진 퇴물 선수에게 그가 잡고 있는 인질들의 생명을 담보로 게임을 계속하도록 하는 걸까.

왜 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찾는 것이 순수문학이라고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본 기억이 난다. 왜라는 답을 얻기 위해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독자로서 나는 8회까지 이르는 퍼펙트 게임을 지켜본다. 게임의 룰이 그리 복잡하지 않으므로 충분히 흥미로와소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의 스포츠는 인생에 비유되고 삶의 많은 순간을 은유한다. 야구는 특히 9회에 이르는 공격과 수비가 인생의 각 십년주기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퍼펙트 게임을 포기한다는 것, 혹은 퍼펙트 게임의 막바지에 실패하는 것은 그의 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영구히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게 할 뻔한 기회를 영영 날려버리는 것이다. 우태우가 서야 했던 초라한, 무덤같은 마지막 무대, 마지막 경기는 인질범의 구출과 처음으로 강직구를 포기하고 시도하는 여러가지 다른 형태의 공이 선보이는 화려한 무대가 될까. 하지만 은행에서는 인질들의 목숨이 그의 손목에 달려있다.

범인의 윤곽은 게임이 지속되는 동안 서서히 드러나지만 도무지 그런 일을 벌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게임을 지켜보는 이유는 범행동기를 알기 위해서다.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 소설은 갑자기 힘을 잃는다. 구조적으로나 소설적으로 뭔가 부족해서가 아니러, 그동안 소설을 읽게 했던 호기심이 이제 인질범과 두태진과 경찰 간에 벌어지는 액션으로 긴장감을 유발하기에 너무 그 감각의 강도가 너무 크게 차이나서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