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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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사람에게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타인의 상실감일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엄청난 슬픔이다. 분명 죽음 근처에서는 엄청난 양의 애통과 비애가 있어 영원한 떠남을 배웅하지만, 그 배후에는 이미 떠난 사람이 두고 가게 될 모든 것들과 그 소멸로 인해 발생하게 될 유형 무형의 가치들에 대한 실리적 계산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판사 이반 일리치의 부음을 듣자, 그와 함께 자주 모이던 친구들은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렸을까. 유능한 고위 판사 자리가 비게 되면 그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이 채워지게 된다.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는 다시 또 사람이 비게 되고, 그런 식으로 자리 이동과 승진이 발생된다. 개인 집무실이 생기고, 연봉도 오르게 될 생각으로 마음이 바쁘다. 그것 뿐만 아니다.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평범하면서도 성공적인 삶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작스레 닥친 치유할 수 없는 병과, 그 병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의 시간을 다룬다. 미망인인 일리치의 부인은 일리치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일리치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가 죽기전에 겪은 고통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지만, 그 고통이란 것이 일리치가 아니라 부인 스스로의 신경을 얼마나 자극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의논하고 싶어하는 것은 연금 문제와 같이, 사망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지원과 혜택에 관한 것인데, 그것 역시 이미 환히 꿰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뜯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차원이다. 가족들 역시 가장의 죽음 앞에서, 개인 가장된 슬픔 뒤로 실리적인 문제가 우선이다. 


소설을 통해 일리치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하거나 그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열세살 짜리 아들과 하인 게라심 뿐이다.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관직을 마치 귀족 작위처럼 받아서, 크게 하는 일 없이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앉아 죽을 때까지 국고에서 꼬박꼬박 거액을 챙겨가며 보장된 삶을 살아가는 낡아 빠진 제정 러시아의 전형적인 행정 관료. 훌륭한 처세와 성실함과 세련됨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때로 적수를 만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당한 인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은 잠시 동안의 고난이었을 뿐 더욱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꿈에 그리던 저택을 구입하고 집의 구석구석을 꾸리는 재미로 권태로웠던 부부 사이 마저 달라질 즈음,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러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창틀에 튀어나온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히지고 이를 가볍게 넘기지만 이는 점점 더 고통을 불러 일으켜 죽음으로 이르는 계기가 된다. 치열하게 살아 중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고풍스럽고 멋진 집을 갖게 되고, 그것을 원하는 대로 꾸미면서 완벽한 삶에 가까와진 일리치는 그 사고 이후로 조금씩 건강에 이상이 오고, 철근처럼 단단했던 그의 몸은 약해져가고 그의 모습은 점점 누가 봐도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흔들려간다.  


이제 삶은 병과의 전쟁이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온갖 치료 방법을 동원해서 병과 싸우며, 식구들을 못살게 굴고 화를 내고 직장에서건 카드놀이를 하는 친구들 모임에서건 자신의 부재를 스스로 못견뎌한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토록 힘들어 하는 그에게 가족들의 모습은 비정하게만 비쳐졌다. 아픔을 함께 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이바노비치가 느꼈던 것처럼, 죽음에 가까운 존재의 고통이 가족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잿빛으로 만드는 것이 싫은 것이다. 


만일 급작스런 폭발이나 교통 사고와 같이 죽음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죽는다면 이러한 단계는 생략될 것이지만, 오히려 그런 죽음에 따르는 전쟁과도 같은 단계를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는 비통한 마음만 남을 뿐, 죽음의 고통을 나누거나 적어도 나누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단계를 건너 뜀으로 인해 보낸 사람에게 더하는 죄책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대도 공간도 멀고 먼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바로 우리들, 특히나 낳아주고 길러주고 이제껏 함께 했던 숱한 시간들로 내 생의 일부이기도 한 부모님의 연세가 평균근처에 맴도는 내 세대에게는 더욱 더 우리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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