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 컴퓨터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5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엮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튜링테스트는 기계가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테스트가 아니라 기계가 마음이 있는 것처럼 사람을 속일 수 있는가를 테스트한다. 물론 인지능력과 언어능력만 해당된다. 1. 사람이 질문을 하고 2.컴퓨터가대답을 하고 3. 사람이 다시 질문을 하면 네번째 대화에서 컴퓨터는 1과 2와 3의 내용을 기반으로 대답을 한다. 이것은 건배할 때의 선창과 같은 수준의 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그렇다면 인간은?' 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이 (가벼운) 대화하는 걸 잘 관찰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 하에서 깊이 있는 결론을 이끌어가는 경우보다는 바로 앞의 말과 그 앞의 말에 의해 다음 말이 결정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컴퓨터 저장 용량이 거의 무한처럼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말뭉치의 연결관계는 무작위 대화 로봇앱이 사용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런 방법이 인간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다이알로그 말뭉치를 통으로 습득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할 때 다음 말을 이어가기 위해 쓰고 있는 표현이 사실은 몇개 안되는 관습적 표현들의 도서관에서 뽑아온 말뭉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의 기술로는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우리 의식을 구성하는 광대한 뉴런들의 수억의 조합이 수억분의 일초 내에 생산해 내는 정보처리의 용량과 방식은 인류 이전 작은 단백질로 생명이 시작되던 태고적부터 진화해온 시간만큼의 무작위 변이와 적응이 이루어낸 산물이므로 컴퓨터가 인간이 의식이라고 부를만큼의 지능을 가지려면 우리가 기대하거나 또는 두러워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뭘 모르냐 하는 것은 그 의식이라는 것, 홋은 지능이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생각인지 의식인지 뭔지가 아무튼 각자 인간에게 있는데, 그게 눈으로는 볼 수 없으며, 그게 무엇인지 그 구체성은 단지 언어로만 표현 가능하다는 거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네 속을 알겠니'다. 그런데 만일 기계와 대화하게 된다면, 그 기계가 생각을 말하는 건지, 말이 생각이 되는 건지 경계가 희미해질 거 같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 온전히 언어 외적인 부분이 커뮤니케이션의 뭐 40프로라던가 60프로라던가 큰 비율로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청소년들은  전화보다는 메시지로 주로 소통하고, 텍스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언어외적인 신체적인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의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라고 가정하면, 생각이란 것은 말이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원래 거기에 있어서 말로 표현하는 게 더 맞지만, 생각이 있다는 것의 증명은 말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만들어내는 행동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99쪽)'. 이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철학자들이 말한다고 하는데 대화 상대가 어휘의 통상적 의미를 이호하는지 못하는지 본다는 뜻으로 위에 적은 내 생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근본은 같다. 말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고 말할 수 있으면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연결고리를 찾아 이해하는(혹은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 사이의 생각 교환이고 소통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을 공주님처럼 모시고 싶은 '선한' 국민들은 대통령이 '혼이 비정상되고' ,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같지 않은 말을 하더라도 혼이 뭐냐, 우주가 뭘 어떻게 도와주냐 제정신이냐고 따져묻지 않은 건 온국민이 따라서 그 영생교 귀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하는 말을 상식적인 차원에서 오독했기 때문이었다. 말은 이렇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보통의 국민들이 보통의 의식 속에서 '혼'은 귀신이 아닌 가치관이라던가 의지라던가 하는 대체되었겠지만, 그보다 더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말들이 대통령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대도, 그것을 각자의 안위 속에서 각자의 정치관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함과 증오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각자 다르게 혹은 비슷하게 넘겨왔던 거였다. 만약 그동안 했던 말들과 행동들 주변의 인물들의 행동반경 등에 대한 모든 빅데이트에서 문맥을 정상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똑똑한(딱딱한) 인공지능이  대통령의 말들을 분석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이 모든 불길한 징조를 일찌감치 간파하여 잔국민에게 비상경계주의보를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제가 샜다. 최순실이 이젠 내 몸과 마음까지 지배한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뒤숭숭한 마음을 정화하려고 가장 무관할 책을 읽어도 상념을 비껴가기란 쉽지 않다. 인공지능 관련 기술적 개념들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고 있는 책인데, 시기적으로 2012년에 나온 책인데 크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기사들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개념은 1950년과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글들이 오래되었다는 게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글들이 언제 쓰여졌는지는 밝혔어야 했다. 대화형 인공지능 유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지도 이미 몇년 전이고 세기의 바둑 대결에서도 인공지능이 승리한 마당에, 대화형 인공지능들이 튜링테스트가 통과하기엔 무식하다고 말하는 글들을 읽는다면, 그 사실을 모르는 독자에게는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첨단 컴퓨터 분야의 책을 낼 때에는 이 부분에 대해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올해 들어 인공지능 관련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라는 잡지의 과월호에서 인공지능과 관련있는 꼭지들을 골라 실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저자만 해도 이삼십여명 되고, 다루는 주제도 많다. 체계적으로 인공지능과 관련있는 것들을 분류해서 모든 부분을 골고루 다룬다는 점과 각 부분이 조금 구체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이미 극복했다고 알고 있는 기술에 대해 뒤늦게 한계를 논하고 있는 책을 내는 것은 책 전체의 신뢰성에 의심을 가게 만들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가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고, 저자들도 기자들보다는 대학의 교수진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아쉬움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두뇌에 해당하는 마이크로칩 기술은 그 크기가 원자와 분자적 수준에 달했을 때, 기술의 한계에 부딪힌다. 과학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앙자 컴퓨터, 바이오 컴퓨터, 분자 컴퓨터(유기물 회로), 광학 컴퓨터 등의 여러가지 대안이 소개되고 있다. 시장에서 밀려난 슈퍼 컴퓨터의 대안으로 소개되고 있는 대규모 병렬 처리 기법, 오래된 PC를 그물망처럼 연결하여 미니컴퓨터(슈퍼컴퓨터의 일종)를 만드는 베어울프식 클러스터링, 인터넷을 통한 개인용 컴퓨터를 대형 프로젝트의 수행에 유휴 시간동안 이용하는 그리드 시스템 등의 여러가지 개념들의 새로운 컴퓨터 기법에 대한 하드웨어 기술에 대한 소개가 유용했다. 인공지능 관련해서는 지능형 자가 학습의 원리 양자 컴퓨팅의 개념 및 한계, 광학 메모리를 이용하여 인간의 신경망을 흉내내는 광학 신경망 시스템, 과학자 로봇 기술과 아담이라고 실제 로봇 운용 사례 및 기타 여러가지 로봇의 기능과 한계 및 윤리적 이슈라던가 대화형 로봇의 의식의 문제 등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