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스퀘어 을유세계문학전집 21
헨리 제임스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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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남자를 사랑하는 부잣집 딸과 그 부모와의 갈등은 우리나라 일일 드라마의 넘버 원 클리쉐다. 요즘은 살기가 팍팍해지고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드물게 된 데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대세여서, 드라마 바깥 세상에서 실제로 큰 부자와 엄청나게 가난한 사람 둘이 만나서 좋아하게 될 계기가 생기기나 하는지 의문이지만, 가난한데다가 직업도 없고 성실해보이지도 않는다면, 어느 부모도 자식의 결혼을 탐탁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서상사(태양의 후예, 나의 싸랑했던 진구)만큼 성실하고 강하고 멋지고 훌륭한 남자를 사랑한다면야, 대위의 딸이건, 그 딸이 서상사보다 계급이 훨씬 높건 반대하는 애비의 마음을 이해는 하면서도  신분의 차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그들의 로맨스에 훨씬 감정이입하면서 둘을 응원하겠지만,  모리스는 다르다. 그가 가진 건 반반한 얼굴 뿐이다. 가진 재산은 이미 탕진했고, 애가 다섯이나 되는 누이의 집에 얹혀 살면서도 직업을 갖지 않고 빈둥빈둥거린다. 캐서린이 반해 버린 그의 아름다운 용모와 번지르한 언변은 부자의 남편이 되는 방법으로 방탕한 생활을 유지할 수단 말고는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고, 작품 전체의 내용이 그 소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작품이 새롭게 읽히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겠다. 글자를 툴툴 털어 내며 막 걸어 나올것 같이 생생하고 독특한 캐릭터와 통통 튀는 대사들이 압권이다.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재치있고, 의사로서 인정받고 성공한 아버지가 성공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식구들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남의 병을 고치는 동안 캐더린 산후 갑작스레 일어난 아내의 죽음과 살아있었다면 똑똑하게 자랐을 것이 틀림없었을 어린 아들을 잃는 일을 막지 못한 것이다. 딸을 낳고 죽어버린 아름다운 아내에 비해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딸 캐서린은 아버지가 눈에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좋게 말하면 평범한 얼굴에 천성적으로 건강한 몸을 지닌, 아버지를 하늘처럼 존경하는 선하고 착한 딸인데, 그게 아주 좋게 돌려서 말하면 그렇다는 거지, 뛰어난 학식과 지성과 재치와 유머 감각을 겸비한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큰 부를 모은 의사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라고는 유산과 이름 뿐인 캐서린은 그저 머리가 나빠 순종하는, 교태라고는 모르는 아둔하고 눈치없는 딸일 뿐이다. 반어법과 은유법을 즐겨쓰는 호탕하고 지성적인 아버지와 우둔한 딸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의 대화는 100년을 넘어선 시대의 갭을 훌쩍 뛰어넘어 웃음을 선사한다. 


두번째 재미는 그 가여운 딸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택한 맹목적 인내와  기다림의 작전이 만들어내는 서사의 희극성이다. 딸(의 유산)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캐서린(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결혼하고자 하는 모리스 사이에서 심각하지만 웃을 수 밖에 없는 코믹한 대립을 만들어내는데, 그 웃음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믿는 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믿는 모리스가 상상하지 못할 캐서린의 둔감함과 우직함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작전이 번번히 실패에 부딪히면서 작은 사건들을 뭉쳐 캐서린의 가치를 오히려 하얀 거품처럼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여기에 오갈 데 없어 얹혀 사는 고모가 캐서린과 모리스 사이에, 그리고 캐서린과 아버지 사이를 주책스럽게 휘젓고 다니며 오빠에게도, 캐서린에게도 모리스에게조차 점점 더 일을 더 그르친다. 모리스를 반대하는 오빠의 의사에 반하여 번번히 모리스와 캐서린 사이에 자처해서 다리가 되어주고, 제발 둘 사이에 끼어 들어 일을 그르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캐서린의 뜻에 반하여 모리스에게 온갖 이야기를 전하며, 또한 모리스를 위해 작전을 세운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모리스의 의도를 거스르게 하는 것이다.  


"저 아이는 저기 숄 꾸러미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 게야.” 이런 생각을 한 의사는 캐서린이 숄 꾸러미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숄 꾸러미는 가끔 행방불명이 되기도 하고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지만, 캐서린은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굳건하고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도 틀렸고, 모리스도 틀렸고, 고모도 틀렸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서툴었던 캐서린은 숄꾸러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마치 연수입 8만불 되는 사람처럼'  옷을 입었다는 아버지의 반어법이 놓친게 있다면 그렇게 화려하고 튀는 옷이 숄꾸러미와는 달리 말로서 표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의 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녀가 착하고 무던하고 무감각하고 무표현적인 것은 맞지만, 의사는 자신과는 다른 캐서린의 성격상의 차이를 성격상의 결함으로 여긴다.  때문에 딸을 마음대로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가 생각하는 그 무언의 무저항의 인내로 대표되는 결함이 그녀를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기가 되는 걸 알지 못한다. 모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만큼 캐서린에게 관심도 애정도 없는 그는 단지 자기의 언변에 그녀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녀의 착함, 온순함이 오히려 그가 하려는 고모와 짜고 수행하는 작전마다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아버지의 가장 큰 패배는 딸이 자신을 향해 가졌던 잴 수 없는 크기의 어마어마한 존경을 잃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녀가 중년이 되고 아비가 늙어 죽기 전, 이미 까마득히 잊어 다시 만나자고 간청을 한대도 만나주지 않을 모리스를 끝내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음으로서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유산을 증여하는 것도 실패하게 만들었다.  딸에게는 어차피 필요없을, 모리스가 사위가 되었다면 필요했을 돈이었다. 캐서린 고모의 말에 휘둘려 비밀 결혼을 하고 도망을 치네 어쩌네 하던 모리스는 비밀결혼시 캐서린이 잃게될 아버지 몫의 유산의 가치와 자신의 지성과 외모로 인해 얻게 될 잠재 가치를 저울질 하다가 결국 캐서린(의 유산)을 포기한다. 


상처와 배신으로 얼룩진 캐서린은 한층 성장한다. 캐서린에 대한 평가에 대해 아버지가 틀린 건 중년이 되기까지 많은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그녀가 가진 환경과 성격으로서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면을 고려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결혼을 반대한 것이었다는 건 알겠지만, 숄꾸러미와 결혼하겠다는 남자들의 조건이 변호사에서부터 사회 각층에 골고루 퍼져있었다는 점과 그녀가 그 화려한 드레스 코드와 온화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알면서 지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어쩌면 그 상처와 배신의 사건은 그녀가 일생중 한 번쯤 치러냈어야 할, 알깨기와 같은 성장 단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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