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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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문맥을 파악하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어떤 과거에 어떤 지역에 발음하기도 어려운 어떤 왕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어떤 지역을 정복하여, 이름만 아는 어떤 제도를 시행했다는 식의 역사는 학생들에게 나열적 지식이라는 한계에 가두지만, 이름은 잘 모르는 어떤 왕이 어떤 이유로 무엇을 했는데, 그것이 전인류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왕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지고, 그 왕이 이룬 업적에 대한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하고 싶어진다. 


저자 앙드레 모루아는 자국의 역사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식견을 반할만큼 센스있는 문학적 표현으로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프랑스 역사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야망과 반전과 배신이 끝없이 반복되는, 이토록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갖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 그렇듯 수많은 스토리를 담은 까닭은 유럽이라는 대륙에서 차지한 지형적 위치도 한 몫 하는 것 같은데, 이를 이해하려면 태고적에 지금 프랑스라 불리우는 지역들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기 시작했는지를 아는 일부터가 시작이다.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 책은 1958년 파리에서 첫 출간된 프랑스인들을 위한 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기초 지식은 '국민적'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으리라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국내 역사서들이 세종대왕을 평가할 때 그는 훈민정음을 창조한 왕이다 라고 따로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만든 배경이라든가 역사적 의의에 대해 주로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의 가장 매력은 각 장의 부분 부분에 기억하고 적어놓고 싶은 수많은 명언에 해당하는 평가들과 통찰을 한도 끝도 없이 쏟아내는 점이다. 역사책이니만큼 순서대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렇게 역사 서술에 철학적 문학적 평가가 함께 등장하다보니, 내 지식의 결함으로 인해 시대와 인물과 지명들이 종종 혼동되거나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위키백과와 지도 이미지등을 뒤져가며 읽어야 해서 읽는 데 오래(한 달) 걸렸다. 


우리가 학교에서 국내 역사를 배울 때에도 가장 최근인 조선 500년의 역사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프랑스' 역사를 이야기하는 850쪽에 이르는 두꺼운 이 책에서 10C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오직 80여쪽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실 그보다도 더 적은 수십쪽에 불과한데,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그 기원을 어디부터 보아야할 지 애미할만큼 유럽 내에서의 각 왕국의 힘과 국경선의 지각변동은 수시로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전부터 앙드레 모루아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 미리보기에서 '프랑스 인종이란 것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p22)'라는 구절에서 강한 끌림을 느껴서 읽게 된 이 책에서 그렇다면 프랑스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내게 인종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프랑스인이라면 유럽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그 정체성이 굉장히 돋보이는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 정체성이라는 것을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볼 때, 현재의 위치는 계속해서 그의 선조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는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연구해 미래에 영향을 줄 인자를 기록하는 일(823)'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는 끊임없이 흘러 역사가 되는 현재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프랑스인의 정체성은 그의 선조들이 스스로 선택해온 역사 속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진다. 


여러 부족들이 뭉쳤다 흩어지고 침략과 합병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던 유럽대륙의 한복판에서 차츰차츰 자연적으로 굳어지는 경계선을 만들어가면서 오랜 기간동안 형성된 국가 단위의 정체성과 애국심을 바탕으로 했을 때 언제부터를 프랑스의 역사라고 보느냐에 따라 그 기원을 어떻게 보느냐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프랑스 국경선 내의 지역에는 기원전 10세기경 리구리아인과 이베이라인의 후손들이 살았고, 이후 켈트 문명이 유입되는데, 여기에서 다시 앙드레 모루아는 '사실 켈트라는 민족 단위가 정말로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설이 없다(23)'고 말한다. 켈트는 켈트족이라는 인종이 아니라, 켈트어와 철기 무기를 기반으로 하는 그들의 문명 속에서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에는 켈트족이 북쪽 지방에 사는 희고 키크고 금발인 야만족을 통칭한다고 적고 있다. 한편 로마인은  현대 프랑스에 해당하는 지역에 사는 켈트족을 골족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프랑스를 다루는  이 책에서 '켈트 = 골'이고, 결국 프랑스 인(종)이라는 것은 그  전부터 살고 있던 리구리아인과 이베리아인에 켈트족인 골족이 합쳐살다가 로마 정복으로 갈로-로마인이 되었고, 이후 3세기 후 로마의 힘이 약해지면서 침입하기 시작한 게르만족이 점령하고 정착하여 갈로-로마인의 문화에 흡수된 다민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히틀러가 주장하던 아리안인을 포함하여 순수 혈통이라는 것 자체가 허구라는 생각이다.


갈로-로마인을 접수한 게르만족은 포악하고 간교하며 잔인한 야만인으로 '동일 혈통에 속하는 사람들의 무질서한 집단(41)'이며, 가령 동고트, 서고트, 앵글로색슨-튜턴, 반달 등을 포함한다.  여러 부족들이 무질서하게 왕국을 수립하였고, 북부 골 지방 역시 프랑크족에게 점령당하는데, 골 지방에서는 클로비스(466-511)이 골지방의 모든 게르만족을 제압해 골 지방의 지역적 통일을 달성했다. 그들은 당연히 이교도였지만 갈로-로마인 여성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라틴어로 말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해 주교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아 '교황으로부터 로마 집정관이라는 칭호를 승낙받음으로써 왕권의 영속성을 확보(p45)한다. 저자는 오귀스탱 티에리가 1세기 전에 쓴 역사 저술서를 이렇게 비판한다. 


자유주의자인 티에리는 자신을 갈로-로마인의 후손으로 믿고 싶어하는 프랑스의 일반 민중을 프랑크족 후손인 이기적인 귀족계급과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갈로-로마인의 대지주들은 중신, 특히 메로빙거 왕의 주위를 둘러싼 주교들과 함께 지냈다(p47) 


갈로-로마인들의 대지주는 게르만의 군단 간부와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합쳐져서 투지 귀족과 무사 귀급이 형성되고, 왕가는 터키의 할렘과 노예시장을 방불케 할만큼 타락했고 음모와 불화가 끊임없었지만, 교회 세력은 점점 커지고 금욕과 복종 노동을 가르친 수도원은 신기한 매력이 있어서 야만적 사회를 교화시켰다. 아무튼 '게르만 족의 침략으로 인한 로마제국 멸망과 행정조직 해체는 무서운 진공상태를 형성했고, 그 공간은 주교제도, 봉건제도, 군주제도가 서서히 메워나갔다(p51).


이렇게 시작된 프랑스의 역사에서 기원부터 14세기 중세까지의 를 1장에서 170여 쪽에 걸쳐 다루고, 이후 2장에서는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에 해당되는 시기인 15~ 16세기를 다루고, 3장은 루이 14세에 그 절정을 달린 17~18세기의 절대왕정의 시대를 다룬다. 4장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시작되어 혁명과 제정 공화국을 반복했던 열정과 어리석음이 교차하던 시대를 통찰하며 100여년에 걸친 유혈혁명과 역사적 의의, 그 속의 숱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그후 근대사는 5장에서 체제동요의 시대에서 혼란의 시대로 라는 제목으로 1815년~1875년의 불안하고 다양했던 정치 체제를 다루고, 6장에서 제3공화국의 수립과 양차 대전을 거쳐 당시의 현재인 번영된 프랑스 조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어느 장 할 것 없이 모두 재미있었고, 흥미로왔는데, 역시나 대혁명 시기의 프랑스가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조금씩 진전시킨 공화정과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되는 왕정 및 제정의 분열된 상황이 계속되는 과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각의 역사적 사건과 의의를 저술한 저자의 통찰은 한마디 한마디가 명언이다. 


'프랑스 혁명은 폭동이 아니라 목가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었다'로 시작되는 4장 프랑스 혁명은 숱한 피를 뿌려가며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류사의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음이 틀림없는 사건이다. 혁명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던 사회 불안과 반동에 대해 충분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도 보인다. 준비되지 않은 혁명이었던 것이다. 민중은 너무 쉽게 함락된 바스티유 사건 이후 민중의 힘을 알았고 '그 날의 사건은 프랑스인과 세계인의 눈에 상징적인 업적으로 길이 남았다. 


전국민이 봉건적 권리와 특권 폐지, 과세에 대한 의결권과 재정감사권, 검열제도 폐지를 원했다. 이러한 조건이 관철되었다면 아마 프랑스 군주제의 황금시대가 다시 열렸을 것이다.(467)


장 폴 마라는 전국이 공포 상태에 놓이도록 귀족과 성직자 학살을 선동했다. 모두가 재판관을 자칭했고 모두가 유혈을 즐겼다(464)


공포정치가 공화국을 구제했다는 것은 사실인가? (...) 애국적인 장군을 단두대로 처형한 것은 범죄인 동시에 커다란 과오였다. 하지만 당시는 잔인성을 인격의 미덕으로 간주하던 시기였다.(...) 


파리에서 약 2,800명 지방에서 1만4천명이 처형되고(..) 처형된 사람들은 대부분 유능하고 우수한 인재였다. 


롤랑부인은 말했다.  "민중이 빵을 요구하면 시체를 주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에베르가 죽자 이번에는 당통의 차례였다. (...) (당통은) 권태감을 느끼며 과거에 대한 회환을 되씹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단두대에오르는 편이 낫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람에게 신물이 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냐는 초병의 검문에 그들은(노동자들) "텅빈 배때기다"라고 대답했다. 혁명에서 이득을 본 신흥부호들의 사치스런 생활, 연회와 무도회, 호화 의상을 입은 파리의 부인들을 보고 노동자들은 한층 더 궁핍함과 비참함을 느꼈다. 텅빈 배때기들은 썩은 황금 배때기가 더욱더 살이 찌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표는 바뀌어도 내용물은 동일하다는 것이 통일의 비결이다(...)

통령을 창설한 혁명력 제 8년 헌법은 독재적이었으나 국민투표를 통해 절대다수로 승인받았다.

"이제 일반 대중은 의회에도 정부에도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바꿔말해 프랑스는 귀족 계급만 바꾸었을 뿐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통령정부는 선언했다. "시민여러분! 혁명은 애초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혁명은 완성되었습니다. "

이것은 10년전 미라보가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선언은 할 수 있었던 일과 정확히 동일했다. 


국민은 보나파르트의 추억과 대혁명의 추억을 하나로 결부시킨다. 그리고 보나파르트파의 자코뱅당은 하나가 되어 반대당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마침내 1830년의 황제의 환영이 부르봉 왕가를 추방한다(p546)


혁명과 제정은 구체제 종말이라는 동일한 사건의 양면이다. 보나파르트의 독재는 열월 사건 이후 정치적 무정부 상태가 빚어낸 불가피한 소산이었다. (...) 영국 군주제처럼 봉건 제도에서 민주제도로, 특권에서 평등으로 전환하는 과도기를 지배했다면 프랑스와 세게는 좀 더 평온했을 것이고.(p552)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하지만 수많은 나라들의 각축전인 유럽에서 산맥과 바다, 강들이 이루는 자연적인 국경 내에 위치한 프랑스가 하나의 통일된 나라를 이루어 중앙집권적인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전쟁과 흥망성쇠를 경험해야 했다. 이 책은 프랑스라는 추상적인 집단이 주인공이 되어 이제는 과거가 된 책의 출간 시기인 20세기 중반까지의 역사를 거대한 이야기로 담아낸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야기속에는 침략 전쟁, 왕위쟁탈을 위한 내전, 사상과 이념의 유혈 충돌, 그 속에서 꽃핀 빛나는 문화, 애국심, 종교를 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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