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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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일손이 모자라는 곳이 있다. 중소기업이 그렇고, 제조업이 그렇다. 먼저 제조업을 생각해보자. 제조업 인력은 해외에서 조달한다. 공장을 밖에다가 세우기도 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것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일하러 오는건가. 아니다. 기업이 기대하는 '저렴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측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수출 위주의 국가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가격으로 물건을 팔려면 국내의 청년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이 불균형에 대해, 고성장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기득층은 '편한 일만 찾으려는 요즘 젊은이들' 탓만 한다.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비록 쉽게 공무원이 되었지만 어찌되었던 시간만 무사히 보내면 성과에 관계없이 근속년수에 비례해서 차곡차곡 월급이 오르던 공무원들이, 공기업 직원들이, 교수들이, 그 기득층들이 직접 물건 만드는 곳에서 땀흘려 보았느냐 말이다.

 

좋은 시절 만나, 걱정 없이 젊음을 마감하고 은퇴해 고액의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이런 논의에서 시대를 잘 만난 걸 행운으로 여기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그들의 그 안정된 수입이 왕족처럼 떠받들던 70년대 우상의 딸에게서 나온거라고 여겨지더라도 그냥 그걸 속으로 생각하고 있길 바란다. 그들의 잣대를 현대의 청춘에게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 그들도 딸이 있고 아들이 있고, 딸들의 딸이 있고 딸들의 아들 아들의 딸 아들의 아들이 있으므로 그 아이들의 미래가 남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20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으로 갔다고 치자. 그들 세대의 평균 나이는 90이 넘을 터인데, 공장에서 몸을 혹사당하면서 남은 인생을 거기에 걸 수 있을까. 국제적 경쟁 구조가 바뀌어 버리면 쌓아놓은 기술이 무용지물이 된다. 망하고 흥하고는 시간이 결정한다. 그렇기에 골수만 빼먹고 버려지는 제조업 현장이라는 이미지가 부당하기만 한 건 아니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제조업 자체가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근거없는 비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제조업 근무 경험이 어른들은 일자리가 넘쳐나는데 편한 일만 찾는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해보자. 제조업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제조업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런 시대에 제조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주목해볼 만 하다. 70년대라면, 80년대라면 모를까, 아직까지 제조업으로 성공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가 비록 흑수저로 태어나 지방대를 졸업한 그저 그런 청춘의 시작이 80년대였다 할지라도 IMF를 이겨내고 밀물처럼 밀어닥치는 값싼 중국 제조업 홍수를 경험하고, 그대로 제조업으로 세계 속에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는 하는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무일푼 기름밥 열처리공에서 1조매출 흑자 기업을 일군 알루코그룹 CEO 박도봉. 그는 말한다. 현장으로 가라. 현장에 답이 있다고.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열정과 노하우를 응축시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조금은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절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목소리를 주려면 성공한 사람의 자기자랑식의 자기계발서는 답이 아니다. 이 책은 학자이자, 작가인 김종록이 알루코 회장(?) 박도봉에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그 치열한 삶의 족적들을 따라가며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었다. 김종록 작가의 이름이 눈에 익어 이력을 살펴보니 얼마 전에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라는 저서를 썼던 작가이다. 그 이전에 쓴 <소설풍수>는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데, 나는 읽어보지 못했다. 때로 질문에 답이 있는 경우가 있다. 뭔가가 몹시 혼동흐러울 때, 잘 모를 때 내가 가끔 쓰는 방법은 질문해보는 것이다. 대상은 누구가 되어도 좋다. 누구에게 묻는다면 그 물음 자체가 답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묻는 과정 속에는 목적이 포함되고, 그 목적이 구체화되는 과정 속에서 답이 생길 수도 있다. 누군가가 없다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하면서 답을 구하다보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책에서 김종록 작가가 묻는데 그 물음은 간단하지 않고 삶을 관통하는 철학, 역사, 예술,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지식들이 함께 있다. 대답하는 사람은 질문을 통해 돌아온 삶을 정리하고, 중요한 것이, 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도봉 회장은 일단 와이프를 잘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자기 집 식구들 동전 한 푼 안보태주고 반대할 때, 아내의 뚝심있는 결단과 지지는 그에게 가장 힘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직원들 밥을 해주고,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사업자금을 구하러 다니면서 사업을 함께 일구었다. 이런 일은 절대적인 신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아내의 직장 경력이 그러한 용기 있는 가치 형성에 도움이 되었을 듯 싶다. 어쨌든 신뢰한 건 막연한 기대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보여주는 행동에서 연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이라고 하면, 지는 해가 연상되지만, 박도봉 회장의 성공담은 우리나라 제조업이 나아갈 길, 더 나아가 길잃은 청춘들에게 제시하는 작은 희망의 등불이기도 하다. 세상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기술은 계속 정교하고 복잡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그 발전을 주도하게 된다면 시장은 세계 전체가 되고,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 같지만, 막상 부딪히고 깨달은 디테일한 경험담들은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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