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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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그 예술가가 걸어온 삶이 도착한 지점을 반영한다. 긴 삶을 살았던 사람과 짧게 살고 간 사람들 사이에도 마지막 작품이 품은 의의는 차이가 크다. 떄로, 추하게 늙을 거였다면 일찍 죽은 것이 예술적 불멸의 원천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죽기 전의 삶을 말해준다. 죽기 전에 당도한 곳이 잠시 서늘한 그늘일 수도 있고 뜨거운 사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 전부가 지나왔던 자취와 흔적은 죽기 직전까지의 삶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긴 인생과 그 인생이 내놓은 작품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마지막 작품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시대를 대표하던 몇몇 화가들을 가려 뽑아,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인생 속에 그림이 있고, 그 그림들 중 하나가 마지막 작품이다. 


나이가 들어 연륜이 쌓이면 더 깊이 있고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노화가 가져오는 감각의 퇴행이 예술 작품 자체에 반영되어 퇴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엔 어떤 규칙도 없다. 문학 작품만 하더라도 한 때 위대한 작품 하나로 반짝 세상을 놀래키고 세상의 이목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미술은 여기서 다루는 류의 근대 이전의 화가들의 경우, 그림 한 점만 그리고 그걸로 평생 먹고 살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그림 한 점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아마도, 그림 한 점을 그려서 세상에 이름을 알릴 만한 작가가 되려면 쏟아부어 습득해야 할 기술적 숙련도를 위한 비용을 그림을 그려서 뽑아야 했을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흔히 미술사를 중세, 르네상스., 마니에리스모, 바로크, 인상파, 현대 등의 흐름으로 설명하는 기존 서적과 달리,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었으며, 그 이유로 각 장에서 다른 화가를 다루더라도 동시대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두 같은 경향의 작품만 열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렇게 기존 서적과는 다른 방법을 취함으로써 다양한 그림을 선보이고자 했다는 말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작가가 시대를 대표하고, 왕의 그림을 그렸던 역사적인 화가들을 다루고, 그 화가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그림들을 선택하다보니, 기존의 다른 미술 관련 서적에서 접했던 그림들이 다수 있다. 설명하는 방식과 주제가 조금씩 다르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다. 


신을 위해 그림이 존재했던 중세시대의 화가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그레코, 루벤스를 다룬다. 왕의 그림을 그렸던 궁정화가로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을 다룬다. 풍속화가로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까지다. 지금 세어보니 총 15명의 화가를 만나볼 수 있다. 각 화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배경, 화가들의 어린시절, 그리고 미술을 배우게 되는 계기에서부터 한 사람의 미술가로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 혹은 살아서는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단 한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던 루저로서의 고단한 삶을 만나보게 된다. 불멸의 작품을 남긴 미술가들의 영광은 유전자가 빚어준 재능이 선물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절대 군주제 하에 살았던 화가들은 왕실화가로서의 삶이 탄탄대로를 의미했기에,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왕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회화가 왕후 귀족과 성직자, 또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세대였다. 시대가 급물살을 타서, 혁명이 일어나거나 적들의 세상이 오면, 화가도 함께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는 역사화가 최고 등급의 지휘를 부여받았는데, 그 이유는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과 이해 등과 같은 폭넓은 교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학과 미술사 혹은 세계사적 지식이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장마다, 미술사적 지식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유명한 화가들의 인생을 조명하고 있기에, 그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작가를 먼저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짧은 전기들의 모음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세계사적 지식과 함께 결합되면 더욱 풍부한 지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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