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와 넬 - 대작가 트루먼 커포티와 하퍼 리의 특별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7
G. 네리 지음, 차승은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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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앨리바마의 시골 아주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두 사람 중 한 명은 퓰리처 상을 받고, 또 한 명은 퓰리처상의 강력 후보가 되는 일은 그 힘들다는 로또 여러번 맞기나, 번개 여러번 맞기보다도 확률적으로 어려울 거 같다. 앵무새 죽이기에 보면 스카웃의 어린 시절을 엉뚱하고 개구진 추억으로 가득차게 한 멋진 친구가 한 명 나오는데, 그 남자가 바로 하퍼 리와 실제로 6~7(만)세의 어린 시절에 친구였던 트루만 카포티다. 아이들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내 가며 역할 놀이에 빠져 놀고 모험을 즐기는 전반부의 내용은 <앵무새 죽이기>에서도 가장 재미있고 흐뭇하고 정겨운 장면들로 채워져 있는데, 그 어린시절이 하퍼리가 카포티와의 체험을 반영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만큼 이 책에서 트루와 넬, 그리고 그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여러 종류의 이웃들은 <앵무새 죽이기>에서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과 매우 흡사하다. 마치 다른 버전의 <앵무새죽이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책을 받기 전에는 이 책이 두 사람의 어린 시절에 대해 추적해서 쓴 전기류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소설이었다. 후기를 읽어보면 작가 G 네리는,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로, 트루만 카포티와 하퍼 리의 어린 시절에 관한 여러 자료에서 영감을 받아서라고 말한다. 이미 출판된 여러 서적과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가공한 허구다. 카포티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앵무새죽이기>에서 함께 등장하는 두 개구장이 꼬마들의 모습은 귀엽고 재기 발랄하다. 소설 속에서는 그들이 함께 한 짧은 시간들 속에서 함께 겪은 약간의 사건을 가지기에 그들이 후에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이어져나갔는지는 후기에만 쓰여져 있다. 


완벽한 왕따 한 쌍이었다. 트루먼은 남자애들과 놀기엔 너무 세련되었고, 넬은 여자애들과 놀기엔 너무 말괄량이였다. 하지만 둘이 노는 것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퍼 리는 넬이라고 불리고 트루먼은 트루라고 불리운다. 둘의 가정에는 각자 서로 다른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넬의 엄마는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어 집을 비우고 요양중인 것으로 나오는데 우울증이거나 정신질환으로 추측된다. 형제로 언니들이 있지만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모험심이 가득한 넬에게는 아무 도움이 못된다. 이 때, 갑자기 이웃집 아주머니집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 트루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고, 26살의 어린 엄마는 아들 트루를 자신이 증오하는 남편과 동일시하여 냉정하게 군다. 엄마의 모진 불평을 엿들은 트루는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자신을 데려가서 다시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지만 결국 둘은 헤어지고, 자신은 이모 삼촌들의 집에 맡겨진 것이다. 이모들은 아이를 따뜻하게 대하지만 친부모를 향한 그리움은 트루를 위축시킨다. 사내 아이 같은 넬과 함께 다니면서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마을의 사건들을 파헤치고, 말썽을 부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며 먼 훗날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은 결국 트루 엄마의 재혼을 이별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뉴욕으로 가게 된 사실을 상심하는 트루에게 넬은 대도시로 가게 되어 진짜 세계에 살게 되고, 진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될 거라면서 격려하지만 넬은 "하지만 네가 없자나"라고 말하며 훌쩍댄다.


앵무새죽이기에서도 스카웃이 딜에 대해 느꼈던 거지만, 카포티는 이야기 만들기에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났던 것 같다. 작은 사건 하나 하나를 커다랗게 부풀려 어른들까지도 푹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거짓인 줄을 빤히 알면서도 귀기울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 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비해 하퍼 리는 그의 그런 재능에 영감과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토록 다른 성격의 아이 둘이 그토록 떼어놓을 수 없을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어릴 때부터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있었고, 책을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넬, 약속 하나 하자. 나 글 쓸 테니까 너도 글 쓴다고 약속해...

넬은 자기한테 트루먼과 같은 재능은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한두 개쯤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p227)


작가 노트의 내용을 보면, 둘의 우정은 계속되었고, 먼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커포티가 하퍼 리에게 글을 쓸 것을 권했고, 하퍼리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지만,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가 풀리처 상을 수상한 후, 자신의 '장황하고 자극적인 작품 세계'에 불만을 품게 되고 하퍼 리의 성공에 대한 질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카포티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하퍼 리가 큰 도움을 주었던 모양인데 카포티가 그녀를 '비서 역할'로 격하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어떤 관계를 지속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카포티가 동성애자였으므로 둘이 연인 혹은 부부 사이가 되어 세간의 저렴한 호기심 속에서 조명되지 일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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