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현들은 많은 글을 남겼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 ?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다. 언어는 생각을 구체화시켜 준다. 문자의 다양한 조합은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생각을 연결시켜주는 강력한 기호 수단이다. 복잡한 말의 의미가 전달되려면 복잡하고 정교한 표현이 필요하다. 글이 모아져 책이된 이유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광범위한 공간과 시간을 살었던 사람들이 믿어오는 까닭이다.

책의 말미에 의하면, 쇼펜하우어는 글을 쓰는 사람엘 세 부류로 분류했다. 생각없이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사람, 생각 먼저 하고 글을 쓰는 사람. 첫 번째 부류는 일어난 일을 그냥 서술하는 사람들이다. 초등학생 일기쓰듯 어디갔고 뭐했고, 누구 만났고 뭐봤고 그런 거. 기록이다.  두번째 부류는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사색한다. 
세번쨰 글쓰기는 사색 후 나오는 걸 글로 옮긴다. 세 번째 부류 대부분은 그 사색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한 강력한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세계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자신만의 사유에서 나오는 독창적인 생각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이유라는 말이다. 이 때 생각은 살아가는 이유,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삶의 지침으로 삼아 매 순간 나침반이 되어줄 자신만의 근본적인 가치관이 될 것이며, 그러한 생각을 옮긴 글이 한 개인의 고유한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로 이해하겠다.

멀리는 14세기경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걸쳐 한중일 세 나라와 서양의, 문인으로서 뛰어난 저술 작품들을 남긴 학자, 예술가들을 공통된 특성을 한 챕터씩 묶어 주제별로 그들의 글쓰기 방법을 분석하고 비평한 책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비슷한 철학을 펼쳤던 동서양 글쓰기 천재들을 한 공간에 모아 연결해서 비교했다. 총 9개의 장을 통해 글쓰기 비슷한 비법을 공유한 한중일 세 나라와 서양의 문인 네 명의 글쓰기 패턴을 분석하므로 이 책을 통해 총 36명의 학자와 고전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이 36명의 학자와 작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점은 낡은 가치 체계의 모방과 답습에 저항하고 독창적인 사고를 통한 새로운 사상과 학문, 그리고 장르를 개척하였고 이미 살았던 선인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 글쓰기룰 했다는 점이다. 쇼펜하우어로 끝을 맺은 이유는 바로 독서와 글쓰기가 목적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이 수많은 학자들의 글들을 읽고 분석하여 이끌어나고자 하는 이 책의 궁극적 주제와 통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독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책만 너무 많이 읽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주장을 했다고. 그는 인생론 원문에 "독서란 자기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생각해주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독서와 글쓰기에 따르는 사색을 강조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우리나라 고전은 단 한권도 읽은 것이 없다 . 반면 일본과 중국의 작가 중에는 나신과 소세키의 아큐정전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을 통해 살짝 접해본 적이 있다는 사실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각 챕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주로 서양인들의 저서만 읽어보거나 많이 들어 친숙했던 거다. 동양 고전에 취미를 못붙이는 이유는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서양적 학문과 세계관에 익숙해져서, 성리학적 사상이 깊이 배인 동양의 고전들을 읽을만한 내공이 갖추어지지 않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라면 또다른 이유는 원전이 현대 일상어로 쉽게 번역된 저서들이 흔치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정민 선생의 책이 (비슷비한 게 중복된 내용이 많이 있다는 얘기를 누군가의 리뷰로 읽은 적이 있지만) 인기를 끄는 이유가 독해가 쉬운 말로 되어 있기 때문일 거 같다. 이 책 역시 대중서라 알기 쉽게 번역되어 있고 해설이 풍부하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알 수 없고, 사전에도 없어서 짐작으로면 넘어 가야 하는 단어들이 보이고, 특유의 고문어체와 만연체 번역체들이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 보였다. 어리석은 핑계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글을 마주하고 나서야 우리 선조들의 위대함을 알게 된 이옥, 심노승, 이용휴, 이가환 등은 물론이고 역사책에도 나오고 자주 고전 연구 서적에 등장하는 이익,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의 학자들의 매우 유명한 저서들 중 단 한편도 원전으로 읽은 책이 없다. 이들은 모두 유교적 사회의 위계질서와 사대부의 허위와 위선의식 속에서 잃고 있는, 개성 있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추구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타서 문체반정으로 정신적인 압박을 받았으며 스스로의 글에 대해 잘못했다는 반성문까지 써야했는데, 정조대왕님도 참 딱하시지 왜 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서, 단지 문체가 옛것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유롭다는 이유로 똘똘한 학자들에게 반성문 같은 걸 쓰게 하고 어린 성균관 유생까지 귀양을 보내 못살게 굴으셨는지. 

중국에서 늘 영향을 받으며 사대를 시대의 가치관으로 종교처럼 믿고 살던 조상들이 문체마저 그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삼는 일이 일어났다면, 다른 나라, 중국, 일본 역시 글쓰기에 제약이 없지 않았을 리 없다. 캉디드를 쓴 볼테르는 풍자적 글쓰기가 왕조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으로 망명과 투옥을 밥먹듯했다. 걸리버여행기 역시 볼테르보다 30년 앞서 영국 태생의 조너던 스위프트에 의해 쓰여졌는데 인류 자체를 풍자한 전무후무한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니체의 신의 부정,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 자족하는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 독자적 선택에 대한 삶의 방식과 그 기록들,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 다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했던 괴테의 로마 유적 답사, 마르코폴로의 동방 여행과 그 여행담이 나오게되기까지 포로로서 함께 하게 된 대필 작가와의 인연 등 많운 사연들과 그들의 글쓰기 전략들이 그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조명된다.

동서양의 글쓰기 천재들의 글쓰기 방법이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글쓰기의 기술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흔한 말들과 글들 속에서 목적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에게 왜 읽는지 또 왜 쓰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책의 유용성에 있어서 수많은 고전들을 직접 마주하고 그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일일히 대면할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했다. 고전 해설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 소개하는 옛 글, 사상, 인물들이 다소 칭찬 일색이라는 점이 아쉽고, (내게는 반복되는 구절이 도움이 되었지만 ) 다소 중언부언하는 부분들을 좀 더 간결하게 편집했다면 두께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만큼 많은 고전들을 하나의 책에서 다루고 특히 동서양을 오그며 함께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써 한눈에 문화적 차이와 동질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한점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작가 서문에 독자들이 완독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뉘앙스의 문장이 있는데 일주일 내내, 그리고 토요일 하루 종일 걸쳐 완독했다. 시간을 많이 못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인용문에 대한 설명이 인용문과 유사하고 비평이라기보다는 해설 방식이어서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688쪽에 판형도 큰 편 치고는 빨리 읽은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