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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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종이란 것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 현재 프랑스를 구성하는 지역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라 침략을 마무리하고 나와 침략자가 정착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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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켈트라는 민족 단위가 정말로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설이 없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북쪽 지방에 사는 야만족, 알프스산 너머에 있는 키가 크고 백색 피부에 금발인 종족을 통칭해 켈트인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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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혈관에는 리구리아인과 이베리아인의 혈액에 켈트인, 로마인을 비롯한 기타 수많은 인종의 혈액이 혼합되어 흐르고 있다. 골루아라는 이름은 로마인이 켈트인을 지칭할 때 쓰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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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 로마의 무기로 골족을 정복하고 골족의 재물로 로마인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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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가 정복지의 지도자를 이용해 통치하는 방식이다. 로마는 합병한 민족에게 간단한 시민권을 부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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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지방은  수세기 동안 로마의 일개 주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아키텐, 리움, 벨기에 3곳에 골 정부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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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모든 통치가 끝난 뒤에도 골 지방은 여전히 라틴어 문화권의 일부로 남았다. 이렇게 게르만 또는 발칸 민족과 갈로-로마인은 진정으로 로마와 동화되었다. 그들에게 처음 통합을 상징하는 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국경으로 삼게 한 것도 로마였고, 도로 구축, 부족간의 교섭, 고대세계의 문화등을 전해주고 정의와 법률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친 것도 로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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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에게는 그들이 동경하던 로마제국을 정복하거나 파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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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족이 정착한 지방에서도 여전히 갈로-로마인의 수가 침입자의 수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내부 분열과 제국의 힘 약화로 침입자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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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로마 귀족의 딸과 결혼 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로마화한 민족을 지배하려면 라틴어와 로마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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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멸망 후 골 지방에는 조직적인 국가가 하나도 없었고 무장 군단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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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족의 클로비스가 골 지방에 거주하던 모든 게르만족을 제압했고... 그리스도교는 골 지방에서 일종의 지속적인 통일을 유지했다. 클로비스는 이교도였지만 부르군트 족과 서고트족의 왕보다 오히려 교회와 쉽게 융화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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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동지를 살육하면서 왕국을 피레네산맥까지 확정한 클로비스는 (...) 로마 제국 멸망 후 그는 프랑크의 토지라고 해서 훗날 프랑스로 명명된 골 지방의 지역적 통일을 달성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국가의 정신적 통일의 전제조건인 왕권과 교회의 통합을 이뤘다. 나아가 그는 (...) 교황으로부터 로마 집정관이란 칭호를 승낙받음으로써 왕권의 영속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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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탱 티어리는 갈로-로마인의 후손으로 믿고 싶어 하는 프랑스 일반 대중을 프랑크족 후손인 이기적인 귀족 계급과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은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갈로-로마인의 대지주들은 메로빙거 왕의 주위를 둘러 싼 주교들과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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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궁전의 생활은 터키의 할렘과 노예 시장을 방불케 했다. 다고베르트 1세 왕(629-639)의 치세는 메로빙거 문명의 절정기로 이탈리아 스페인 게르마니아까지 관여했으나 이후로 메로빙거 왕조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하나의 구질서가 사라질때의 모든 시대처럼 이 시대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활개치는 암흑의 시대였다. 갈로-로마인은 이미 로마식 행정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야만족은 법질서를 파괴하고 모두 자신들의 관습을 주장했다. 그레고아르의 이야기에는 배신 밖에 나오지 않는다. 메로빙거 궁전은 창녀굴이고, 프레데공드는 굉장한 요녀다. 왕들은 모두 처자를 살해했고 누구나 얼마 되지 않는 금전에 매매 되었다. 이런 사회가 존속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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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명이 사멸하면 또 다른 문명의 탄생하게 마련이다. 게르만의 왕위는 선거제였으나 갈로-로마 지방은 세습제로 이는 로마제국의 제도를 본뜬 것이었다. 왕이 사망하면 왕자들이 왕국을 분할 상속하는 제도 때문에 왕의 권력은 약해지고 국토는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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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통일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왕국의 영토는 한사람의 주교가 관장하는 주교관구로 분할되었다... 10분의 1 세로 교회 재산은 급격히 늘어갔다 10분에 1세는 카톨릭이 부활시킨 유대인의 제도로 신자가 수입을 10분의 1을 납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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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멸망과 행정조직 해체는 무서운 진공상태를 형성했고 그 공간을 주교제도 봉건제도 군주제도가 서서히 메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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