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 문학.신화.역사를 관통하는 조너선 실버타운의 실버과학에세이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노화는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죽음은 다시 종의  운명과 개체의 유전자 전달이라는 범우주적인 통찰과 만나게 된다. 원제가 수명과 노화의 과학인데 비해 한국어 제목이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이라는 다소 시적이고 철학적인 제목이 붙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수명과 노화를 매우 좁은 틀 안에서만 본다면 그저 한 사람 한사람이 노화를 겪으면서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와 이를 극복하는 대중 의학 지침서를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책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노화가 아니다. 늙는다는 것의 본질을 범우주적 생물의 생명 현상으로 이해하고 탐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개인의 수명과 노화의 차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생물학적 종으로서 식물을 포함한 모든 다세포생물과 함께 범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기에는 노화와 죽음과 생명과 번식에 따르는 각종 과학적 증거들 화학적, 물리적, 진화적 관점에서 해석한 가설과 통계적으로 증명된 이론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면 우선 궁금한 것은 모든 동물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 인간은 얼마나 오래사는가 하는거다.  물론, 우리는 대략 우리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안다.  인터넷을 두드리면 자신의 나이와 성별, 국가에 기반한 평균 기대 수명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파헤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170년전부터 인간은 이미 매 시간당 15분씩 수명을 연장시켜왔다. 수명 연장을 위한 의학적, 과학적, 기술적 성취는 눈부시다. 어떤 동물은 수백년을 살고, 어떤 동물들은 하루 이틀을 살기 위해 태어난다. 무엇이 생물체의 수명을 결정할까. 몸집이 큰 종은 오래 살고, 초파리처럼 작은 것들은 기껏해야 1주일을 산다. 이러한 법칙은 대략 들어맞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예외도 많다. 인간은 몸집 대비 다른 포유류에 비해 수명이 길다.

 

저자는 무엇이 동식물의 수명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답을 진화학적 측면에서 찾는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전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수명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번식과 사망률이라는 변인이 함께 움직인다. 우선 번식의 경우를 살펴보자. 어느 생물체나 번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 때 어떤 생물은 일생에 한 번만 번식을 하고는 단회번식을 하고 다른 생물들은 평생을 두고 여러 차례 번식을 한다. 단회번식은 평생 단 한번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새끼를 낳는다. 그러고는 (아마도) 죽는 것이다. 다회번식은 두고두고 노쇠할 때까지 씨를 퍼뜨릴 수 있다. 무엇이 유리할까. 번식에 따르는 대가, 즉 죽음을 생각한다면 만일 외인성 사망률이 높은 종은 죽기 전에 얼렁 얼렁 애를 잔뜩 낳아야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 흥부처럼 열 형제를 주렁주렁 낳는 다회번식은 먹을 것이 충분히 주어지더라도 흥부의 처는 10번의 산고를 치르고 10번의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 단회번식이 매혹적인 이유는 생식을 단 한 차례만 집중하면 모든 생물이 치러야하는 번식의 궁극적 비용을 한번만 지불하면 된다. '다회번식이 단회번식을 이기려면 단회 번식 개체가 낳은 자식 수에 대한 다회 번식 개체가 낳은 자식 수의 비율에다 다회번식 부모가 번식 뒤에 살아남는 확률을 더한 숫자가 1보다 커야 한다.'  부모가 언제나 번식 뒤에 살아남는다는 가정 하에서만, 다회 번식이 단회번식을 이길 수 있다.

 

높은 외인성 사망률은 해당 종의 자연적 수명을 단축시킨다. 높은 사망률이 자연선택에 의해 수명이 짧은 개체를 더 잘 적응하게 한다고 풀이된다. 이러한 가설은 20세기 말, 50세대동안 관찰한 초파리를 통해 얻어냈다. 과학자들은 병 속의 초파리를 일주일에 두 번씩  1%만 남기고 도태시켰고 그 과정을 인간이라면 1천년이 소요되었을 50세대까지 계속했다. 50세대가 지난 후 이 살벌한 환경에서 적응한 초파리들의 수명을 100일동안 대조군과 비교 관찰했다. 결과는 약 7퍼센트의 평균 수명 단축 뿐만 아니라,  알 낳는 패턴의 변화를 불러왔다. 높은 외인성 사망률이라는 조건에서 초파리는 이른 시기에 알 개수가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해파리 실험이 의미하는 것은 삶의 주기가 빨라졌음을 말한다. 한 때, 빠르게 살면 빨리 죽는다는 가설 속에서 심장박동을 비롯한 대사가 수명을 결정한다고 믿었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가설임이 통계를 통해 증명되었지만, 빠르게 산다는 것의 뜻을 삶의 주기로 바꾸면 말이 된다. 외부의 압력으로 자연적인 일찍 죽기에 생애의 아주 이른 시기에 빨리 많이 알(이건 새끼이건)을 많이 최대한 낳아야 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것을 바꿔 말하면 느리게 살면 수명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물론 개체 단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빨리 성장해서 학교도 일찍 졸업하고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수명이 줄어들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성인이 되어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자손을 낳을 연령은 점점 늦어지고 있으며 15세에 시집 장가를 가던 시기에 비해 수명은 엄청나게 늘어난 일은 최근 200년이 채 안되는 시기에 일어났던 변화이기에 직접적으로 진화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느린 삶의 주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제 인간으로 범위를 좁혀보자. 한 개체의 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암, 프리래디컬, 텔로미어 등을 들 수 있다. 암은 다세포성으로 인한 위험이기에 모든 종이 걸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종의 수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개는 20퍼센트 , 흰돌고래는 18퍼센트가, 그리고 미국 인간은 25퍼센트가 암으로 죽는다. 마구잡이 세포 분열을 촉발하는 체세포 돌연변이의 위협이 커지므로 몸집이 커지면 암의 유병률이 함께 비례해서 커져야 하는 게 상식적이지만, 반대로 개의 수명은 10년, 흰골도래는 40년, 인간은 약 80년이다. 리처드 피토는 대부분의 종은 노년에 암에 걸린다고 했다. 피토의 역설에 의하면, 장수하는 종이 단명하는 종보다 암에 대한 대비책이 많은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놀랍게도, 우리가 노쇠의 열쇠라고 알고 있는 텔로미어와 관계한다.

 

텔로미어로 곧 영원한 젊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꿈의 그 날이 가까와진듯 했던 것과는 달리, 이후 여러 연구에서 텔로미어는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수명을 결정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텔레미어가 짧아지는 '복제 노쇠는 젊을 때 암을 예방해주는 메카니즘이 만년의 일으키는 단점(p204)'이라는 것이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현상을 수리하는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가 체세포에 들어 있는 생쥐는 인체 세포보다 10배나 긴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다. 이제 역으로 그럼 인간은 왜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를 추론해볼 때, 암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적응이라는 가설이 나온다. 몸집이 커지면 암 위험이 커짐에 따라 이를 상쇄하기 위해 텔로머레이스 활동이 감소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을 몇몇 설치류를 통해 관찰하였다. 실제로 포유류 내의 여러 종들을 비교해보았을 때,  텔로미어 길이가 수명과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인간처럼 오래 사는 포유류일수록 텔로비어가 짧다는 결과는 텔로미어의 진실을 말해준다.

 

프리래디컬의 경우, 산소혐오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우리 건강에 가장 큰 적으로 간주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건강식품점에서 노화를 억제한다고 주장하는 항산화 식품에 대한 어마어마한 연구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보조식품의 유익함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균형 잡힌 식단에 자연적으로 들어 있으므로 자연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했고, 그러므로 보조식품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활성 산소가 대사에 있어 면역 체계와 성장과 발달과 같은 필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활성 산소가 잠재적으로 건강을 해롭게 한다는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한 손상은 생물학적 메카니즘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삶과 나의 죽음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수명을 인류의 한 종으로 보았을 때, 인류는 이미 수명의 최대치를 오래전에 달성하고도 170년전 이후, 매일 매일 시간당 15분씩의 수명 연장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 언제 죽느냐 하는 것은 아주 오랜 선조로부터 삶의 속도에 의해 자연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음에도, 과학과 기술은 세분화된 메카니즘 속으로 현미경을 들이대 더 오래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 죽는 것은 우주의 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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