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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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다. 전봉준을 알았으나, 교과서에서 배운 한 줄 그게 전부였다. 때로 역사 소설과 대하 드라마에서도 등장했겠지만 사적 감정들과 액션 활극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틈새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을 것이다. 오래 전 체게바라가 유행해서,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공산주의 혁명의 정신이 낭만이 된 이유는 공산주의가 거의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전봉준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현실이고 아픔이다. 지난 100여년간 다른 이름으로 계속되어 온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무엇이 남았을까.

 

혼불문학상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그가 삶의 마지막과 바꾼 역작 <혼불>의 상징성을 반영한다. 오래 전 그 책을 읽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읽기에 실패한 건 독자로서 나의 문제였고, 그와는 별개로 최명희 문학관에 가서 최명희의 삶을 조명해보고, 소설 혼불에 나오는 여러가지 장소와 소설가에 대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작품의 위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무지했고(지금도 그렇고)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한국말인데 무슨 뜻인지 문장 해석이 어려울 만큼 모르는 소리가 많았다. 이 광재의 <나라 없는 나라> 역시 혼불 못지 않게 어려운 단어가 많다.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며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감동은 맨 마지막줄이 끝나야 가시화된다.

 

이순신공을 엄청 존경하지만, 이름 없는 민초들 없는 승리를 상상할 수 없듯,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이 전봉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올해 혼불 문학상의 대상 이광재 작가는 평생 많은 시간을 들여 전봉준을 연구한 것으로 보이는 데, 얼마 전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펴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들었을 때 전봉준의 활약에 서사가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봉준은 이 소설에서 원톱 주인공도 아니고, 조금 비중 있게 다루어졌을 뿐이다. 풍전등화 같이 스러져가는 조선 말기 정치적 상황과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후에 명명한 사건의 거대한 흐름을 재현한 서사를 축으로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의 개별적인 활동들을 한명씩 비추며 채워간다.

 

물론 교과서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혁명은 실패했고, 전봉준은 잡혀가서 사형당해 죽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전봉준을 따르던 자들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어디까지 일이 진전되었는지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을 후원하던 이들, 그 많은 군사들과 무기를 어우를 수 있는 조직력과 리더쉽의 정체가 무엇이었으며, 혁명은 어느 수준이었을까. 레미제라블을 통해 파리의 시민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칼에 맞아 죽어가던 숭고한 자유라는 그 사상적 기반을 흠모하는 동안, 우리는 글자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농민들이 어떻게 신분철폐와 집강소 설치와 같은 혁명적 성과를 이룬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것도 시대와 역사 속에서 문학이 하는 일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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