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에디톨로지 이전에 나온 김정운 교수의 책들은 제목이 죄다 <남자의 물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노는만큼 성공한다> 라는 식이어서 좀 저렴해보이고 자극적이어다. 당연히 거들떠도 안봤었다. 에디톨로지는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사까마까하다가 이 책이 나왔길래 우연히 봤는데 너무 재밌게 읽어서 주위에 읽으라고 추천 엄청 많이 해서 산 친구들 많다. 21세기북에서 상줘야 함. 친구들한테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재미있고, 킬킬거릴 만한 대목이 많아서다. 아무리 유용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사피언스>류의 정통 인문, 과학 서적류는 친구들에게 추천했다가 돌팔매질 당하기 쉽다.

TV에서 나와서 말할 때 보면 참 재미있게 말도 잘하는데, 글도 똑같이 잘쓴다. 그는 오십 중반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일본으로 학부생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떠난 이유를 보니 잘떠났다 싶다. 살다보니 자기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더라는 거다. 그가 떠난 이유는 진짜 하고 싶은 걸 배우기 위해서다. 성인용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갔다던가, 하는데 그 성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19금 성인을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노인을 위한 만화라는데, 뭘 말하는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앞에서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 제목을 저렴해보인다고 말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 물건이 남자 신체상의 물건으로 생각했던 거였다. 성인 하면 19금을 떠올리는 엉큼함을 버린다면 성인용 만화가 진정 어떠한 것인지는 나중에 김정운 어떤 만화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화 맞나. 암튼 그런데 성인용 만화 대신 무슨 일본 정통 그림을 그리러 갔는데, 그가 그린 일러스트들을 보면 일본 정통 그림은 아닌 것 같고, 짝퉁 파올 클레, 짝퉁 에곤 실레, 짝퉁 피카소, 짝퉁 고흐 등 익숙한 그림들과 두루두루 분위기가 비슷한데, 한마디로 이런 재주를 50이 되도록 어떻게 썩혔는지 지금이라도 그림을 그릴 만큼 그림 좋다.물론 그가 떠날 수 있던 건, 가끔가다 한두번씩 돌아와서 강의 몇번 하면 떼돈을 벌만큼 스타 강사여서 강의료는 부르는 게 값이고 인세 수입도 짭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먹고살고 애들 공부 걱정은 이제 안해도 될만하기 때문이다. 부럽다. 꾸준한 수입이 있고, 아직 뭔가를 할 수 있는, 남아있는 시간과 남아있는 능력과 재주가 있고, 또 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니 말이다.


텍스트의 양에 비해 책값이 비싼데, 그 이유는 그가 그린 그림, 그리고 그가 찍은 혹은 사진기자가 연출에 맞춰 찍어준 사진이 많아서다. 나는 이북으로 읽어서 좀 아쉽다. 이북으로도 휴대폰 화면을 확대해서 보면 그림을 자세히 볼 수 있지만, 인쇄된 그림을 큰 종이로 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니까. 서점 홈에서 뭔가 작은 창이 화면에 뜨길래 습관적으로 클릭을 했더니 이 책 이벤트여서 10년 대여로 저렴하게 구매했다.

내용은 딱히 뭐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만큼 폭넓고 다양하다. 때로 격하게 외로워야 된다 그게 전체적으로 주는 메시지의 다가 아니다. 물론 그는 가족을 등지고 일본에서 혼자서 살아가면서 느낀 점들과 일화들을 재미있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자신을 비롯한 남자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성찰들이다. 성찰인데 코믹하다 특히, 그가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와 관련된 엄청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에 유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적인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변인과 종속변인 사이에 y=ax+b라는 형태의 수학적 법칙을 만들어 내려는 현대 심리학에 대해, 지극히 단순화시킨 실험심리학의 변인을 현실상황에 대입할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현실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된다. 예측과 통제에 대한 무모한 신념은 현실 상황을 아예 실험실처럼 단순화하려는 독재자의 욕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면서 읿본을 닮아가는 우리가 아직은 일본인들의 보편적 문화 심리적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점 중의 하나로 고독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과 같은 단계를 밟고 있지만, 현재 사망률 대비 출생률은 세계 최저치지만, 아직 고독은 낯선 단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독은 우리에게 실패한 인생의 특징으로 간주되고, 그 때문에 남들 경조사에 그렇게 죽어라고 쫓아다닌다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도, 달리 돌려할 말이 없이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래서 남의 경조사에 간다.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가는 것도 맞지만, 내 경조사에 사람이 없는 것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국 같은 고독 저항 사회에서 고립된 삶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100세 인생이 가져다 줄 고독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연금만 보장되면 해결될 것으로 알면서 누구나 외로워서 어쩔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보니, 나이든 여자들이 동창이니 계니 하며 몰려다니는 것 역시 실은 외로움의 반증이고, 남자들이 골프니 산악회니 하는 데 쫓아 다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 아닌가 시다. 작가는 이렇게 고독한 개인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개인 내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여기까지 좋은데 그 성찰의 종류에 팔굽혀펴기를 권하는 이유는 잘 납득가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는 남자에 대한 자각과 성찰로 이루어진 글로, 남자들에게 적극 강추하는 글이다.여자들이 봐도 엄청 재밌다. 조금만 옮겨온다.

만약 우리의 아내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기막혀 하며 아주 놀고들 있네 했을 거다. 그러나 비 맞은 개털같이 숭숭 비어 있는 머리를 한 50대 초반의 배나온 사내들은 자신을 위해 화장을 고치고 있을 여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 여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화장한 여자 노래는 계속된다. (중략) 사내들은 집으로 향한다. 더 이상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는 아내는 이미 취침 중이다. 리무버, 클렌징 오일, 폼 클렌저 순서다. 아주 깔끔하게 화장을 지운 쌩얼이다. 아내는 절대 남편을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쓸쓸해해서는 안된다. 그 가슴 시린 노래< 화장을 고치고>는 전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한참 중략).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 인간에게는 여러 자아가 제각기 다르게 구성된다고 주장한다.이 때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요하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된다. 무대 위가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는 삶이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한참중략)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 권력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무대 위의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뒤로 돌아올 수도, 그렇다고 마냥 앞으로만 달리기도 두려운 이 땅의 사내들은 매일 밤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화장을 수시로 고치는 여인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룸살롱이 죄다 지하에 있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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