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 1 - 식민지의 어둠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
황석영 엮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101편의 한국 단편 선집이라면 한국의 현대 문학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모든 단편들을 대표하는 선집인데 이런 것을 문단의 어른인 황석영 작가가 기획하게 된 것은 2000년부터이나 신수정 평론가와 함께 작품 선정과 설명의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서 진척이 생겼다고 한다. 기존 선집들이 '신문학 형성기 이후 작단에 이름을 올린 거의 모든 작가들의 잘 알려진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서 지난 시대에 나온 작품집들과 차별화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이 작품집을 기획하게 된 계기인 것 같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에서 정해준 모두 알고 있는 그 제목의 소설만 계속 이런저런 이름으로 계속 재출판되고 다른 작품들은 선집을 통해 읽어볼 기회도 없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내가 학교다닐때는 염상섭 하면 표본실의 청개구리, 김동인 감자 이런 식으로 항상 작가와 작품을 한쌍으로 해서 자동 생각나도록 외우게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교과서도 아닌 선집에서조차 그런 형태를 보였다면 작가가 단편 한편만을 쓰고 죽은 것도 아닐텐데 설사 여러 작가의 대표작들을 앵무새처럼 말하지 못하더라도 작가와 작품을 연결하거나 작품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시대에 지어진 작품을 그 때의 역사와 당대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들이 반영된 작품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는 일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기를 작품의 선정은 작가를 먼저 선정하고 그 작가의 작품 하나씩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까지 70명의 작가를 그 이후 31명의 작가를 신수정 평론가가 주로 골랐고 그 작가의 작품은 가장 잘 알려진 것보다는 덜 알려진 것으로 황석영 작가가 주로 골랐다. 1편은 식민지의 어둠이라는 주제로 염상섭 이기영 현진건 채만식 김유정 이태준 박태원 강경앵 이상 김사랑의 작품이 각각 실렸고 매 작품마다 낱말풀이와 황석영 작가의 작품해설이 함께 실려있다. 내 경우 단편 뒤에 실린 평론가의 평론은 뭔소린지 너무 현학적이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득도 납득도 안되는 말도 많아 잘 안읽게 되는데 황석영작가가 직접 쓴 해설은 일단 쉽게 읽혀서 좋다. 

 첫작품은 염상섭의 《전화다. 식민지 시대의 문학은 어둡고 가난과 절망만이 짙게 깔려있을 곳 같아 읽기가 망설여지는데, 그 거친 돌틈에서도 서민들의 생활은 언제나 계속된다. 역사의 장막에 가려진  소시민들의 삶, 이 작품은 소세키 풍의 유머를 찾아볼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옛날에는 전화 개통을 하려면 신청자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서인지 추첨을 해서 당첨되어야만 가능한데 이주사가 바로 운이 좋아 전화기를 들여놓게 된다. 전화를 놓고도 걸려오는 전화가 없어 이틀이나 기다리지만 처음으로 온 전화는 남편 이주사가 마음을 두고 들락거리는 채홍이라는 기녀다. 당시 전화기는 지금으로 따지면 최신 기술을 갖춘 뭐 대문짝만한 곡선 형 LED티브이보다도 더 귀한 물건이었을테지만 빚을 내어 들여놓은 전화기가 결국은 이주사의 기녀 출입의 수단이 되고 어쩌다 보니 주인아씨는 전화로 그들을 매개해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바가지를 벅벅 긁으면서도 비꼬는 건지 체념한 건지 한편으로는 기방 출입을 묵인하는 것 같은 아내도 재미있는 캐릭터지만 기녀 한 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남자들 사이의 쟁탈전에서도 전화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백석 평전을 읽다 보면 일제가 어느 순간 아예 한국어로 된 글을 어느 잡지에도 싣지 못하게 막는 때가 오는데 아마 그 전에 출판된 것이것이고 탄압을 우회하기 위해 소재에 많은 제약들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일제 치하의 어두움보다는 소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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