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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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면 몸인지 정신인지 분류하기 어려운 애매한 것들이 있다. 몸이 기억하는 것들, 몸이 만들어내는 경험, 몸이 느끼는 것들은 몸이 주인일까 정신이 주인일까. A는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다. 그는 자신의 몸을 소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완전한 정신적인 개체다. 지금까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시간이 축적한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하나의 인격체다. 모든 인간적인 관계는 하루 이상 지속되지 않지만, 또래로 태어나기에 차근차근 순서대로 배우지는 못해도 어쨌든 언어와 교육이라는 제도 내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습득한다. 매일 매일 다른 모습 속에서 태어나는 그에게 내일이라는 개념은 몹시 낯설다. 단절된 하루하루가 만들어내는 내일은 완전히 새롭고 이질적인 환경에 아무 방어 체제 없이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더욱 혼동스러운 개념은 ‘함께’라는 개념이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은 모두 스치는 사람들일 뿐이다. 함께라는 말이 내일과 연결되어 ‘내일 함께’라는 미래를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매일 맞닥뜨리는 그 가정과 친구들과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매일 이야기하는 일상들은 ‘내일’과 ‘함께’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것은 내일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 내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몸을 빼앗긴 몸의 주인들에게는 하루 동안의 스스로의 부재가 매일 지나치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망각으로 남는다. 다른 정신이 들어와 자신의 몸을 하루 동안 사는 동안 생겼던 일들 중 시간의 흐름과 장소에 대한 어스름한 기억이 심겨진다. 그것은 A의 배려로, 잠자기 전에 하루 일을 마음이 들어있을 몸의 어딘가에 심어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엔가 갔었고 무엇인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은 멍한 상태로 그런 곳을 갔다는 가짜 기억이 심어진다. 


만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기 싫어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다른 몸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12시 이전에 잠들어야 한다. 신데렐라처럼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기 전에 서둘러 그 몸이 속한 가정으로 몸을 데려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즐겁게 놀다 보니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것을 잊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나왔던 대사다. 다른 몸이었던 전날 사랑하게 된 소녀를 만나러 파티에 간 그는 소녀 리애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몸에게 적절한 기억을 심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지 않고, 집에도 데려다 놓지 않은 채, 이메일을 체크한 흔적을 지우지도 않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몸을 남겨두고 떠난다(잠을 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이 깬 몸의 주인 네이슨은 자신에게 하루 동안의 자신의 무기력한 기억을 악령으로 해석하고 목사와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서 매스콤을 타기 시작하고 또래들에게는 놀림감이 되어 버리는 동시에 A가 남기고간 이메일로 정체를 밝히라며 컨택을 해온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급적 조용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A는 네이슨에게 자신이 악령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다.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에 악마의 이름을 붙이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인 것이다. 악마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 나중에 악마 탓을 하는 것이다.(186)


한편, 자신의 남자친구의 몸으로 나타나 그녀를 사랑했고, 비밀을 알게된 리애넌은 매일 몸이 바뀌는 채로 나타나는 A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함께’와 ‘내일’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힘겨워한다.  


나는 그녀를 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세상을 그녀와 공유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기억하기 바란다.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기억하기 바란다. 나는 그가 나와는 무관하게, 나 자신의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를 바란다. (410)


A가 거치는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환경의 소년 소녀 고등학생들의 일상, 가족관계, 학교생활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약중독자, 힘겨운 육체노동으로 하루 종일 일만하는 스페인 이민소녀, 연애중인 동성애자, 건달, 쳐다보기조차 부담스러운 완벽한 미녀 등, 150키로가 넘는 뚱보 등 온갅 군상의 인간들의 겉모습으로 나타나는 A를 리애넌은 단박에 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만, 너무 완벽한 미녀라든지, 너무 뚱뚱하고 나태해보이는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에는 꺼려한다. 그 속에 어떤 정신이 있더라도, 실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 아픈 결론이었지만, 소년도 소녀도 아픔을 통해 성장한다. 어떻게 이런 결론을 끌어냈을까 작가라는 직업의 상상력에 대해 범접할 수 없는 감탄사가 나오게 한 소설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의 정체성에 대한 유연한 작가의 시각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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