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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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실레의 그림 중에서도<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는 특히 소설 표지에 인기가 많다. 이 책 말고도 라이너 마리어 릴케의 말테의 수기(펭귄클래식의)와 장 폴 샤르트르의 구토(문학동네)의 표지에도 쓰였다. 네번의 자살기도와 다섯번째의 자살성공으로 39세에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 속 얼굴은 실제로 표지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겨우 서른 아홉째 해를 넘기기까지 다섯 차례나 죽음 속으로 겁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던 남자의 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의 행적이 저자의 삶의 자취와 닮았을 때, 소설은 얼마나 소설가 내면의 삶을 반영할까. 실제의 죽음과 소설 속의 죽음은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소설 속에서처럼 그렇게 시크하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타민을 먹듯 수면제를 털어넣고, 수영하러 들어가듯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을까.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경외감마저 주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것은 우리에게 ‘잘못된 선택’으로 각인되어 왔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한 스스로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했을까. 어떤 시대, 어떤 문화권에서는 종종 자살이 미덕인 곳과 자살이 추앙되는 곳이 있었다. 열녀가 나온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가문의 영예를 위해 남편을 따라 죽는 일을 미덕으로 삼던 왜곡된 유교적 사고관이 폭력적으로 군림했던 때도, 순사(殉死)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위해 스스로 죽는 일이 영웅시 되던 이웃 나라도 있었다. 자살에 대한 금기가 보편화된 것은 신이 내려주신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인 사고관이 세계를 지배하면서부터라고 더욱 뚜렷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자살이 윤리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금기시되지 않는 문화가 있다면 편안한 죽음을 맞기 위해, 21세기의 눈부신 의료과학적 성과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의료기기로 연명하는 삶을 거부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이라면, 가족이나 사회적 도움이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사람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 역시 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사회안전망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면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데에 있어 편안한 선택을 하도록 지원해주는 것은 비상식적인 발상일까. ‘저는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되는 첫 번째 수기와 그에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수기, 그리고 그 수기를 읽는 ‘나’의 서문과 후기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다자이 오사무의 생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적으로 겹쳐 있다.

소설 속에는 소설가의 삶이 얼마건 투영된다. 그 속의 나는 일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깊숙한 곳의 나 자신,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나를 끄집어내어 완성한, 새로운 자신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그 속의 나는 글을 쓰면서야 비로소 깨달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언제이든, 누구이든, 무엇이든 알 수 없는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이제 그것의 이름을 부르고 그것과 교감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내 자신을 한 글자씩 끄집어 내어 그 감정, 스쳐 지나간 생각들을 단어들의 조합으로 완성해 놓은 인격에는 작가가 막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분신이 사랑스럽게 자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스러질 듯 나약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표지로 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그 자신의 어떤 한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을 읽을 때 발견한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상이 두려워서 익살꾼이 되기로 작정한 요조, 무섭고 두려운 세상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커다란 눈을 뜬 채 태연한 척 하는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에곤 실레의 자화상에서 겁먹어 흔들리는 요조와 나 자신을 보고 또 태연한 척 웃으며 쾌활하게 살지만 그 속에서 흔들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까. 돈이 없는 상태, 건강을 잃은 상태, 고통, 죽음 같은 절대적인 불행이 가까이오지 않는 이상 안정된 의식주가 어느 정도 보장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왜 살기 어려웠던 선조들보다 더 많이 자살하고 더 많이 두려워하고 더 많이 우울증을 앓는 것일까. 요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우리 역시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받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부잣집 도련님, 잘생기고 최우수 성적을 유지하는 요조가 어릴 적부터 돈과 건강과 고통이 두려워서 익살꾼이 되기로 작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어느 것 하나 모자라는 점 없이,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까지 좋았던 요조에게 근원적 두려움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 사랑을 잃을지도 모를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는 역설적인 인간이다. 마치 화성에서 떨어진 외계인처럼 요조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과 활달하게 어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그들을 웃기고 재미있게 한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소통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특히 여성의 복잡 심리는 그에게는 완전히 이해 불가능한 것인데, 그것 때문에 더욱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모든 여성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결국은 그 여성들에게 빌붙어 사는 신세가 된다. 그 스스로가 인민의 적, 민중의 피와 땀으로 대대로 군림하는 귀족인 가문의 태생이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진탕 술을 마시고 화류계 여성들과 만나고 지내면서도, 그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장 위험한 활동책을 맡는다. 돈을 증오하는 공산주의자가 돈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제적인 빈궁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보내주는 돈을 마구잡이로 쓰고 다니고, 막상 집에서 지원을 끊자 경제력을 상실한 채 무용한 인간으로 변신하고, 어렵게 삽화를 그리며 연명하면서 이 여자 저 여자, 자신을 동정하거나 좋아하는 여성들의 필요에 의해 빌붙어 살게 된다. 그의 자살 미수는 즉흥적으로 보인다. 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동거녀의 옷가지나 물건들을 전당포에 팔아 술값을 마련하고, 그러다가 약물 중독으로 정신병원까지 입원하는 동안 요조는 어느날 자신이 두려워하던 세상이란 바로 앞에 있는 한 개인이란 것을 알아버린다.

그렇다. 세상이란 자신을 대하는 하나의 개체 개체인 것이다. 그로 인해 그에게 세상은 덜 두려워졌을까? 서장과 후기에 등장하는 나는 세 장의 사진과 세 개의 수기를 읽는다. 세 개의 수기가 모여 하나의 소설을 구성했고, 세 장의 사진이 '나'를 통해 바라보는 그 소설 속 요조의 모습을 설명한다. 익살스럽지만 어딘가 섬뜩한 어린 시절의 사진, 훤칠하게 미소짓는 고교생의 사진이지만 어딘가 영혼이 빠져나온 듯한 사진, 초라한 백발의 마지막 사진. 세 개의 사진과 세 개의 수기는 각각 요조의 삶을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라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배우고 또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형성해간다. 세상 속의 나와 내 속의 나, 그 어떤 것이 진짜라고 할 수 없으나, 가끔은 웃고 떠들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가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나로 되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혼자 있어야만 고유한 나 자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럴 때 가끔은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 속의 나와 혼자만의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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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0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우울하대서 안 읽어봤는데.. 이지메를 다룬 동명의 일드는 봤어요. 일문학을 관통하는 어떤 미적 의식? 감성? 그런게 이 작품에도 있을 것 같네요. 말씀하신 조력자살은 스위스 등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에서 봤어요. 그 리뷰 쓰다가 놔버렸어요ㅠㅠ 인간의 죽음과 존엄성에 대해 확장하다 길을 잃었습니다..

CREBBP 2015-07-09 21:00   좋아요 0 | URL
우울해야 라는 건 맞는데.. 문체가 그리 우울하지만은 않아서.웃긴 구석도 없지 않고.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음을 근처 여행 떠나듯 쉽게 선택하다 보니..

에이바 2015-07-09 21: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국 사태 이후로 고전으로 꼽히는 일문학을 좀 봐야겠다 싶더라고요. 이 작품도 봐야겠어요

CREBBP 2015-07-09 21:10   좋아요 0 | URL
그리 길지 않아서 부담도 없구요. 독특하고 유니크한 작품인 것 같아요. 서양문학과는 다른 동양적 감수성 - 약간의 동질감 같은-도 느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