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 유럽 근대의 뿌리가 된 공자와 동양사상
황태연.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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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의 공든탑이 모래성처럼 우루루 무너지는 과정은 짧고 허망하다. 동아시아의 급추락은 1830년~1840년대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중국의 급격한 탈산업화에서 왔다. 산업혁명과 과잉생산에 시달리던 유럽의 무관세 덤핑에 대항하지 못한 무능한 권력이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불평등 조약 속에 그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파국 속으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문화 차에 대해 19C 초까지도 1인당 국민소득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서 동아시아가 우세했다고 조목조목 찝어낸다. 이 책에 의하면 이 때까지 문학, 과학, 의학, 예술, 철학, 제도, 경제, 상업, 농업 등 모든 부분에서 중국이 유럽보다 우세했다. 서양의 발전에 가장 큰 정신적 근간이 된 계몽사상의 발상 그 자체가 공자 사상에서 유래한다. 만민평등교육제도와 과거제도에서 유럽의 교육제도가 왔고, 중국의 농본주의와 자유상업론을 바탕으로 케네의 근대 경제 모델이 완성된다. 중국의 내각제적 제한군주정에 탄복한 영국은 공자의 ‘임금은 영유하나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번역하여 불문율이 되었다(‘King reigns, but does not rule'). 18C 계몽주의 시대 내내 유럽 사상계를 공자 철학이 지배했고, 그 계승자는 루소, 볼테르 중국 문물로 넘쳐나던 17C 18C 중국의 선비 문화에서 왔다. 중국 사상의 우월성을 서양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문화와 섞음으로써 비로소 천년 이상 어두운 신의 침대 속에서 잠자고 있던 문화의 꽃이 기지개를 펴며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7C 말 라이프니츠는 기독교 선교사를 중국으로 파견할 게 아니라 공자 선교사를 유럽으로 파견할 것을 요청했다. 18C에는 공자 비방의 대가 몽테스키외와 공자 예찬론자 볼테르가 각각 <법의정신>과 <철학사전> 등을 통해 치열하게 논쟁하며 프랑스를 달군다.  볼테르를 이은 케네는 중국을 모델로 근대 경제학을 창시한다.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위스는 알브레히트 폰 힐러 <우성 황제 : 어느 아침의 나라 이야기>를 토대로한 무위이치 사상을 바탕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한다. 조용히 영국의 철학을 받아들인 영국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사마천의 자연지험에서 표절한 애덤스 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론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또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19세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는 증거와 근거들을 보여준다. 영국 산업혁명보다 600년 빠른 송나라 10C에는 이미 제철혁명으로부터 시작도니 제조 기술의 혁명이 이어져 생활용품의 대량생산과 재부가 형성되었고(261)  기원전 4C 경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를 요리와 조명에 사용했고 10C경에는 가정용 석면램프가 널리 보급되었다. 중국의 항해 기술에 대해서는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2000년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 불가능한 가장 앞선 선박 항해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18C 말에도 유럽인의 선박은 중국선박에 비해 열등한 선박을 사용했다(템플 p263) 영국 선박이 16C말에야 4백톤 급에 겨우 도달했을 때 중국은 16C 이전 이미 3천톤급에 도달했고, 기원전 1C경부터 나침반을 사용했다. 10C에 지폐가 발명되어 자유 경제 시장은 더욱 확대되었고 화폐납세는 11C 중반 52퍼센트에 달했다. 과세없는 자유 시장 경제는 거대 도시를 탄생시켰고, 14C 도시민은 37%에, 항주의 인구는 최대 500만명으로 18C 유럽의 도시화 수준을 상회했다. 


서양으로부터 유포된 이른바 아시아 정체론이란 동아시아가 잠시 서양에 뒤졌던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시기에 형성된 부정적 동양관을 그 이전의 역사에까지 일반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허구에 지나지 않음...인류 문명사를 줄곧 앞서오다가 고작 근대화시기 백년 남짓한 기간동안의 과학기술적 열세를 가지고 문화 전반에 걸쳐 너무 극심한 서구 콤플렉스를 지녀온 셈이다. (p267~268)



다른 종교와 신념을 인정치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문화와 전통을 인정치 않는 서구 중심의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희제는 유럽 선교사들이 가톨릭 교리를 선교하는 것을 허락했다. 국가와 종교가 일치했던 서구 선교사들에겐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추방된다. 남의 나라에 와서 수천년동안 이어온 전통을 깨고 자기들 신을 믿으라고 하며, 위패를 불태우고 신도들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것은 누가 무엇을 전해주러 왔는지를 의심할만한 행동이다. 하나의 신 아래의 서로 다른 종파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행위 또한 당신 중국인들의 눈에는 다양성의 하나로 보였을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화형이나 태형 같은 무지막지한 순교가 이루어지는 대신 어떤 가혹행위도 박해도 없이 단지 추방당했을 뿐이라고 한다. 참혹한 종교갈등을 겪은 서구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받은 대접이다. 그들을 추방했던 건 조상에 대한 경배를 막고 소녀들과 동석하고 그 소녀들을 무릎꿇린 문화적 차이에서였을 뿐, 종교에 대한 탄합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서구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의 차이, 나아가서 그 우수성을 읽을 수 있다. 


이 책과 함께라면 이제까지의 서구 문명에 대한 열등감은 사라진다. 중국과 서양의 비교에 있어 중국 우세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지나치게 중국 우월론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엄청난 양의 참고 자료에 일단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는 걸로 한다. 역사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다. 중국이 공산주의적 몽상에서 막 빠져나와 꿰줴줴한 모습으로 $1~$2짜리 조잡한 물건들을 미국에 덤핑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중국은 몸집만 크고 지나간 과거마저도 열세한 나라였다. 이제 경제 사정이 달라진 것과 중국의 문명에 대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문화적으로 서구의 것에 열광하고 선호하는 우리가 중국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현재를 재조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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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29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c 동아시아 우세론은 저도 늘 생각하던 바였는데 드디어 그 증거가 책으로 나오다니 반갑습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일단 봐야 알겠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보이지 않는 손`이 표절이었다고요? 몽테스키외와 볼테르가 공자 비방과 예찬론자였다니 생각도 못했어요. 흥미로워요.

CREBBP 2015-06-29 21:02   좋아요 1 | URL
정말로 흥미롭습니다. 옥의 티라고 하면, 우열이라는 개념에 대해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신뢰성 문제에 있어서는 뭐 대충 허술하게 지은 책은 아닙니다. 참고서적의 양도 방대하고요. 곳곳의 인용문이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경우도 많구요. 단지 좀 주장이 뭐랄까 약간 우세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껄그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만병통치약 2015-06-29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논쟁 자체가 이제는 무의미해지지 않았나 합니다. 동양이 한창 뒤쳐져 있다고 자책할 때는 중요한 이슈였는데 이제는 조상탓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듯합니다. 그런데 공자라...의문이 드네요.

CREBBP 2015-06-29 22:26   좋아요 0 | URL
반대의 상황읋 우려해야 죌 시잠이죠.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