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 2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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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전은 실화에 긴 시간에 걸친 사람들의 소문과 상상이 합쳐져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매료시켜왔고 아직까지 끊임없이 재해석, 재탄생되어 온 우리나라 고전이다. 실화는 효종 1651년 평안도 철산에서 일어난 두 재미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정동흘이라는 철산 부사의 6대손과 8대손이 각각 선조 할아버지의 활약을 기록한 것에 다시 또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19세기 후반 장화홍련전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꾸준하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여 이야기가 된 장화 홍련전은 아직도 판소리, 창극, 영화, 드라마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장화홍련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장화홍련>의 컨텐츠는 미국 영화 안나와 알렉스라는 영화로도 재탄생되었다고 한다. 


장화홍련전은 이야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진부해 보이는 요소, 모든 문화권에서 갖는 구전 이야기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전처 소생의 아이들을 구박하는 계모의 등장, 권선징악적인 구조,  마녀, 귀신, 정령 등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등장, 이런 것들은 세계적으로도 수없이 많이 읽히는 그림 동화에서도, 천일야화에서도 수없이 반복되고 변형되는 이야기거리들이다. 


계모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을 구박했을까. 이 책에 의하면, 당시 인간의 수명은 매우 짧았고, 그래서 한쪽 부모를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미 아이들과 핏줄로서 결속된 한 집안의 전처의 빈자리에 양육의 수단으로 끼어들게 된 초대받지 않은 손님 같이 겉도는 존재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결국 콩쥐팥쥐의 팥쥐 엄마나 장화홍련전의 허씨처럼 아이들을 대놓고 구박할 수 없는 고립된 존재였을 거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도 계속해서 재생산되어온 계모 = 마녀의 공식은 아마도 당시 출산으로 인한 친모의 사망율이 높았을 경우 친모의 부재에 대한 결핍과 상실감들이 상상력으로 이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이러한 진부하고 뻔하고 따분한 요소들은 이야기가 오늘날처럼 쏟아져 나오지 않았던 시대에는 대다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손가락에 셀만한 선택된 이야기들만이 살아 남아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진다. 그것이 장화홍련전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켜온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장화홍련전은 예쁜 자매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공포적 환타지적인 요소가 있다. 또한 허씨가 아이들을 모함할 때 쥐를 죽여 털을 벗기고 피를 묻혀 낙태의 증거를 만들어낸 방법도 기발하기만 하다.


한편 실화에서는 이미 죽어 고인이 된 아이들에 대해서까지, 소설에서는 해피앤딩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눈여겨볼만 하다. 악마처럼 못된 계모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랬다고는 하나, 엄연히 가부장인 자신의 의사로 아이들을 청부살인한 아버지가 죄를 면하고, 3번째 부인까지 얻어서 쌍둥이로 환생한 장화홍련과 함께 잘먹고 잘살았다의 스토리에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면죄부의 씁쓸함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나 장화 홍련전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에 있지 않을까 한다. 죽기 전에는 예쁘고 착했던 순진한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 원혼이 되자, 이번엔 반대로 뜻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한을 풀고자, 나타나면 안될 인간들의 공간에 나타나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고, 부임한 부사들을 차례로 죽게 만드는 그것이다. 비록 전동흘이 사건을 해결했다고는 하나, 소설 속에서는 이들 자매의 원혼이 귀신이 되어 부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히게 되고 말았을 사건이다.  


이러한 고전의 원판은 여러 버전이 전해내려온다.  이 책에서 참조한 원본은 연대미상의 필사본과 연활자본을 대본으로 삼고 이 분야 연구자들이 정리한 장화홍련전 교열본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의 장화홍련전 부분은 원본에 충실하면서도 14세 때 다시 읽는 장화홍련전으로 청소년들의 어휘에 맞게 우리말로 잘 풀어서 쓰여져 있다. 서문에 작품설명을 충분히 하고 들어가고, 군데군데 챕터별로, 실제 사건과 비교하거나 유사한 사건의 사례를 들어 장화홍련전을 읽는 독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도록 신경썼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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