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이 시작했을 땐 이미 그 속에서 튜링은 죽었다. 그러니 소설 속에 튜링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튜링의 죽음을 쫓는 형사이다.  수수께끼같이 알쏭달쏭한 논문들과 자취들을 남기고 간 그의 마지막은 그의 삶만큼이나 미스터리한 흔적들을 남겼다. 한 입 베어문 사과, 그 사과를 담궜던 청산가리 냄비, 그를 감시하던 시그마(대머리에 시그마 모양의 점이 있는 남자), 보내지 않은 편지, 꿈을 기록한 세 권의 노트. 사건을 맡은 코렐 경관은 튜링의 삶과 철학을 추적해가면서 동시에 자신의 과거와 이루지 못한 꿈과 방황의 나날들을 쫓는다. 코렐이 쫓는 것은 튜링의 삶인 동시에 그의 가지 못한 길이기도 하다. 튜링처럼,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던 자신, 튜링처럼 캠버리지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을 삶. 


튜링의 관점에서 소설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튜링을 이해하는 일은 코렐 경관의 이해에 바탕이 된다. 작가이든 철학자이든, 그 누가 어떤 형태로 그를 조명하더라도 천재 튜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그의 시점에서 소설을 쓰기에는 무리일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이 튜링에게 집중되지 않고, 코렐 경관의 삶과 인생과 그 주변인물들에게 집중되고, 소설의 전개에 해당하는 그의 인생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비중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소설로 읽기는 하지만 앨런 튜링의 삶을 보다 소설적 차원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독자로서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전개가 너무 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 이 책은 코렐이라는 남자에 대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숨기지 않았고, 쓰레기 투척자들이나 잡으러 다니는 자신의 직업을 한심하게 여기고, 시큰둥한 삶을 살지만, 자신감 결여로 맘에 드는 여성이 있어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최근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나온 형사와는 달리 튜링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죽은 후이므로, 튜링과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그가 동성애로 기소된 사건은 이미 2년전일이다. 그러나 부당하게 종료되는 사건을 캐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닫고, 자신을 발견하고 편견에 맞서고 새출발하게 되며, 좋아하는 여성에게도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순간적으로 충동이 일었을 수도 있습니다." -224


그런 성격 유형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유형. 순간적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유. 순간적 충동으로, 그러니까 일시적 변덕 같은 걸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까? 코렐은 그의 실제 삶과 우리의 판단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있을 수 있음을 간파했고, 그는 이미 종결된  사건을 가지고 그의 실제 삶과 알려진 삶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사건 종결 기자회견이 끝난 후, 앨런의 친구이자 숭배자인 프레드릭 크라우스와 앨런의 생전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다. 여기가 232쪽부터 시작되는데, 코렐에게 큰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이부분 정도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 앨런 튜링의 사고에 대한 토론(?)은 거짓말장이의 역설부터 시작한다. 


역설은 거짓임을 주장하는 진술이므로 따라서 거짓일 때 정확히 참이 된다. 역설 고유의 모순은 진리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부정하거나 잠정적으로 중지하게 만든다...역설의 창시자는 크레타의 철학자 에피메니데스다. ..'어느 크레타 시인이 내게 이르기를, 크레타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다' 이 문장은 다른 방식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이 언급은 거짓이다. 처럼... (148)



튜링은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이용해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기계가 논리 시스템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런 식의 문장에 걸리면 그대로 폭발할 수 밖에 없다. 계산은 돌고 돌다 결국 붕괴하고 마니까"(235). 튜링의 기계는 일반적인 기계와는 이렇게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오늘날 논리의 모순에 처해진 기계가 무한루프에 빠져 화면을 꼼짝없이 얼려 버리거나 윈도우의 그 유명한 블루 스크린으로 폭발시키는 예측을 그 기계가 이미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 기계가 설계되기도 전에, 그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기도 전에 예감했다는 거다. 


튜링의 기계는 인간의 두뇌를 닮은 것이었다. 두뇌가 전기 충격으로 움직이고 전기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 말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단지 두 가지 설정, 두 개의 논리 상수만으로 복잡한 이론까지 표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했고, 단순함 속에서 위대함을 찾았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에서 딱 두 단어, 예와 아니오만 있으면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컴퓨터가 이해하는 0과 1, 예스와 노, 참과 거짓, on/off의 이진 체계, 디지털 세계이다. 그 단순하고 아름다운 원리를 이용해 존재했거나 존재할 수학 방정식 모두를 포괄하고, 추상화된 생각들을 그 이진의 세계로 변환시키는 발상을 해낸 것이다. 


기계는 이제 튜링에게 어떤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튜링은 기계에게 난수 생성 프로그램이 결정하는 어떤 우연의 요소를 더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복제하고 싶어했다. 난수 요소기 돌발적이고 비합리적인 변수 가능성의 출발점이 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빅뱅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해서 우연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우주와 생명의 탄생, 두뇌의 무작위성이 이끄는 진보 같은 것들을 기계에 적용한 것이다. 반대로 인간은 우리 인간이 때로 기계처럼 버릇과 반복적인 패턴을 습성화한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인간과 같은 지능은 없는 곤충이지만 뭉쳐서 행동하면 지혜를 만들어내는 개미탑을 들여다보며 다수의 지식 조각들이 매우 정교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빅데이터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제대로 예감한 것이다. 


앨런 튜링은 여러가지로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데 호모였다는 점, 수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철학과 논리학 생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 러시아 스파이 의심을 받고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았다는 점, 2차대전 중 독일의 에니그마 해독 기계를 발견하고 암호를 해독한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유학도 다녀오고 훈장도 달았다는 점, 갑작스런 자살과 독사과를 이용한 자살방법의 의외성 등을 생각하면 더욱 미스터리하다. 


튜링의 철학을 다룬 앤드루 호지스의 <이미테이션 게임 : 튜링>을 읽을 땐 이해하기 어려웠던 앨런 튜렁의 추상적 사고가, 코렐 경관이 튜링의 죽음을 추적하고 논쟁하는 과정 속에서 독자에게 잘 전달되고 지적으로 자극을 준다. 이걸 읽으니 이제 앤드루 호지스가 쓴 800쪽 넘는 그의 전기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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