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흔히들 아는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자연을 감상할 때도 이 말은 유효하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태어나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다니고, 먼 산과 하늘과 차창밖 풍경이 만나는 자연의 전부인, 기껏해야 아파트 주차장 사이에 코딱지만한 몇평 땅 사이로 푸른색을 몇 가닥을 전해주는 나무들이 싹트고 우거지다가 단풍들어 떨어지는 광경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현대인들 대부분에게 자연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 넓은 풀밭과 잘 꾸며진 정원은 자연이라기 보다는 자연적인 생명체들 중 입맛에 맛는 것들만을 골라 살만 도려내고 쾌적하고 깔끔하게 꾸며놓은 장소일 뿐이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그대, 발밑에 굴러다니는 거친 돌멩이, 마르면 먼지 날리고 비오면 진창인 흙, 종아리 살을 스쳐 살짝 살을 베는 젖은 풀잎들, 윙윙거리고 따꼼거리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작은 생명체들도 사랑하는가. 자연을 좋아라 해서 산으로 들로 빠져들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자연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차례 차례 돌아가며 이름 새벽을 깨우는, 땅 넓고  한적한 주택가 정원에서 저자가 즐기는 자연은 작은 미물일지라도 사랑하지 않고는 구할 수 없는 다채로운 법칙, 신화, 종교, 진화, 문학 작품들을 연결하여 세계를 자연과 함께 인식하고 사색한다. 작은 곤충들이 이루어가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때, 징그럽고 귀찮은 곤충은 사랑스러운, 우리가 사랑하는, 지키고 가꾸고 후세대에 함께 물려주고픈 자연으로 탈바꿈한다.


제목만 가지고는 책의 내용을 예측하기 어렵다.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애매한 부제도 별 힌트가 못된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의 박물학>을 쓴 저자다.  나는 <감각의 박물관>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그래서 리뷰가 필요하다. 읽는 분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읽는 것을 소화시키려면 책에서 건져올린 '나의 사유'를 꼼꼼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읽으려고 침실 책탑에 쌓아 놨는데 마침 애커먼의 신간인 이 책이 나왔다. 우연은 때로 아주 커다란 지점의 인생의 행로를 바꾸기도 하지만, 이렇게 읽을 책을 결정하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작용한다). <새벽의 인문학>에서 만난 다이안 애커먼은 나와의 이러한 사소한 우연을 반기듯, 자칫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거의 나의 선택이 아니었을 책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오만함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도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더욱 풀과 나무와 텃밭과 같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그나마 그 아래 세대보다는 더 많이 접해서, 경험으로부터 아는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일 것이다.

 
애매한 제목 때문에 감이 안잡혔는데, 열어보니 에세이다. 잘 쓰여진 산문집이다. 문학적이면서도 지적이다. 읽다 보니 감각의 박물학을 읽을 때 들었던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그 느낌은 약간은 나와 안맞는다는 느낌일 수도 있고, 기대와는 다르다는 느낌일 수도 있다. 훌륭한 책이고 문장과 사유, 그리고 정보의 전달 어느 부분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양서이긴 한데, 별로 내 타입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문장이 군데 군데 계속 나타난다.  그것은 일종의, 나의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자연과의 교감 부족, 자연으로부터의 애정결핍 같은 거다. 나는 자연을 끝없이 묘사하고 예찬하는 것을 읽는 것에 그리 공감되지 않는다. 사람에게 지문 홍채 발바닥 자국 같은 고유한 신체적인 특징 뿐만아니라 글에서 풍기는 특유의 느낌 같은 것이 시그니처처럼 박혀져 있어 그 느낌이 되살아난 것이다. 같은 번역자가 아니더라도 고유의 시그니처는 때로 강렬하게 드러난다. 나와 안맞는 부분은 저자가 자연을 보면서 빠져드는 매우 감상적인 느낌에 대한 공감할 수 없는 마음 같은 매우 사적인 것들이다. 애커먼은 매우 지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예찬한다. 법칙, 신화, 종교, 진화, 문학 작품들이 날실과 씨실이 엮이듯 애커먼의 손끝에서 전방위적인 지식들이 너울거린다.

 

우리는 거미를 하찮게 여기지만 거미도 취향이 있고 생각이 있고 선택을 한다. 생각이 없고 무감각하고 쓰고 버릴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지만 저마다 유리처럼 단단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존재이고 생명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낯선 존재들, 같이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무얼 경험하는지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외계 문명의 삶을 궁금해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184


티베트 사원에서는 새벽에 '나는 오늘 밤 죽을 것이다. 남은 하루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는 죽음의 명상 이라는 수련을 한다고 한다. 그것을 어쩌다 한 번씩 하는 것이 꾸준히 규칙적으로 한다고. 죽음이란 어느 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이 오늘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가장 중요한 것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스프링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웃의 애완용 찌르레기(새)에 대한 이야기는 허풍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찌르레기들은 말을 잘 하기로 유명한다. 문법 구조를 알고 배운 문장에서 적절한 단어를 바꾸어 새로운 문장을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나는 스프링클이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데 감탄했다. 스프링클은 단어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해 완전한 문장을 말할 뿐 아니라 자기가 단어를 만들어서 적절히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 벌레를 주고 맛있냐고 물었더니 스프링클이 이렇게 대답했다. "스프링클 맛이 나".... "구식토스터라고? 내가 따라했다. "스프링클은 똑똑해" 스프링클이 이렇게 말하고는 한참 신나게 웃는 것이다. 우리도 메아리처럼 따라 웃었다. 스프링클이 웃을 수록 우리도 더 많이 웃었고, 우리가 웃자 스프링클도 따라 웃었고.... (255)

 

가을 편 첫번째 꼭지인 <아르키메테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라졌던 아르키메데스 양피지 두루마기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전 287~212년, 아르키메데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물에뜨는 물체, 원들레 측정, 구와 원기둥, 나선, 평균의 균형등 3.14159로 시작되는 원주율 파이의 개념이 포함된 쓴 일기의 원문은 그가 사망한 후에 사라졌다가 1000년동안 발견되지 않았는데,  어떤 경로로 필사본이 한 부 남아 1000년 무렵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어떤 필경사가 한차례 더 베꼈는데, 200년후 수사 한 사람이 이 책을 재활용해 잉크를 긁어내고 씻어낸 후 그 책장들에게 기도문을 적었다. 화재, 약탈 십자군의 침략을 견뎌내고 1906년까지 살아남아있던 이 책은 덴마크의 문헌학자에 의해 해독되고 복원되나, 다시 또 위조범의 손에 들어가고, 그 위조범은 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책장에 금 잎사귀를 그려넣어 장식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후 프랑스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 1991년까지 가정집에 보관되어 있다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1998년 200만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려 볼티모어의 월터스 미술관에서 정식 복원 해독되었다.

 

다이앤 애커먼은 시인이자 수필가다. 그동안 뇌과학자나 심리학자 같은 과학자로 여기게 될 만한 책들을 써왔다.  책의 글들을 해부해보면 새들과 나무 숲 별 등의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과 관련된 신화와 지식들을 연결해서  길어올린 사유들이다. 이런 것들이 문학적으로 잘 어우러져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서너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의 묶음이다. 여기 저기서 가져온 짧막한 일화들과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들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재미있다. 아마도 산문집의 형태인 책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쓴 이유도 이러한 짦막한 수필들이 순전히 마음에서만 길어올린 감상이 아니고,  과학이나 예술 등의 여러 인문학적 지식들을 동원한 사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략 40~50 개 정도 되는 글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구분되어 있고,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묶는 특별한 주제는 자연의 관찰과 인간의 삶의 성찰이라는 범위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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