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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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의 자부심을 싫컷 누릴 수 있는 책이었다. 포크의 발전 과정을 보면 서구의 식탁 문명은 한마디로 한심하다. 처음엔 식탁이 아닌 부엌에서 길다란 두 갈래의 쇠꼬챙이가 뜨거운 고기를 건지거나 덩어리 고기를 찔러 고정시키고 자르거나 하는데 쓰였다. 이후 식탁에서의 포크 사용이 아랍 문화권을 통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까지 도착하여 일상화가 된 건 17세기 근처쯤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뾰족한 나이프 두 개로 식사 중 고기를 잘랐다. 나이프와 스푼이 잘 안통하는 것들은 손을 사용한 것 같다.  이탈리아의 그 유명한 메디치가와 결혼한 프랑스 가문에서 포크 사용을 따라하다 질질 흘리고 웃음거리가 되었는가 하면 영국 사람들은 냅킨을 아끼기 위해 혹은 더러운 손을 씻기 싫어 포크를 사용한다고 외국인들을 비웃었다고 한다.

 

식탁에서 쓰였던 포크조차도 초창기 버전은 요즘 식탁에서 쓰는 것과는 달리 끝이 갈라진 길다란 쇠꼬챙이에 더 가깝다. 포크가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 진화하면서 다양한 크기와 종류를 갖추게 된 건 순전히 포크 자체의 고정성에 따른 기능적 제약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일 크기 단일 형태의 포크에는 젓가락을 쓰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구속이 있다. 뾰족하면 뾰족한 대로, 길다라면 길다란 대로,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두갈래 세갈래 네갈래 짜리 몇 겹으로 갈라졌든 그 쓰임새가 먹는 요리의 크기, 질감 등의 종류에 따라 다 다르다. 고기를 먹을 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포크로 굴을 파먹기엔 불편하고, 물컹한고 큼직한 야채를 떠먹을 수 있는 포크로 생선 뼈를 발려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게, 테이블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각 코스별 요리에 따라 쓰임을 기다리는 유럽식 '격조 높은' 식탁 문화이다. 큼직한 덩어리 고기든 콩 한 알이든 따끈따끈하게 새로 지은 밥이든 국물에 떠다니는 야채와 고기든 김치 조각 위에 얹혀져 있는 양념뭉치이든 한 벌의 젓가락으로 모든 걸 다룰 수 있는 빕을 수 있는 우리의 밥상 문화는 얼마나 편리한가. 왜 그들은 중국에서 그걸 배워가지 못했을까. 둔해빠진 인간들.

 

진화의 원동력은 실패로부터 나온다. 책의 주제는 그거다. 포크가 여러 형태의 진화를 거쳐 오늘날 거의 표준화된 형태와 크기로 서구인들의 식탁에 자리잡게 된 건 무언가를 먹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은 태초에 무언가의 발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태초의 돌도끼, 구석기 그릇, 등 무언가를 만들었던 선조들은, 그걸로 다른 걸 하기 불편하니까 계속해서 기존의 발명품의 결함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냈다. 기존에 무언가가 있어야 거기서 개선점을 찾고 다음 단계로 나간다. 포크 뿐 아니라 오늘날 당연한 듯이 원래 하늘에서 뚝 떨어져 주워 사용하는 생활 밀착형 물건들, 옷핀, 지퍼, 클립, 볼트와 너트, 망치, 톱, 단추, 포스트잇, 등등의 많은 물건들이 기존에 존재하는 기술 위에 수도 없는 실패를 반복하고, 때로 실패로 일관한 발명가들의 희생을 딛고 태어난 물건들이다. 특히 거듭된 참혹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위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마침내, 워커에, 또 마침내 의류에 사용가능한, 지퍼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성공의 이면에는,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실패한 것들을 옷에, 신발에 먼저 부착한 선구적 의류업자와 사용자들 요즘말로 얼리아답타들의 베타 테스팅이 필수였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캔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자. 군인들이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에 상금을 걸고 공모했고, 무겁기 짝이없는 철철로 밀봉하는 방법이 성공했을 때, 음식보다도 무겁다는 점, 그 쇳덩어리를 뚫어 음식을 꺼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는 점 등과 같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무거운 단점은 강철을 거쳐 알미늄으로 진화했고, 두께는 점점점점 얇아지고, 다시 얇아진 두께에 따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주름 무뉘가 생긴다. 음식을 꺼내기 어렵던 결함은 따는 도구의 발명과 캔 자체에 따는 기능을 포함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전자의 경우는 통조림 따개로 오늘날까지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고, 음료수캔에는 숱한 실패와 노력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지룃대 원리를 이용한 구멍이 쓰인다.

 

대단한 발명품으로 보이지 않는,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쓰고 있어서 마치 원래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되는 모든 종류의 물건들. 그런 것들은 어떤 다른 물건으로부터 어떤 기능을 하기에 불충분하였고, 그를 개선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었다. 인간의 유전자가 태초의 원시 생명에서 수많은 우연을 거쳐 인간으로 진화한 것과 비교해볼 때, 만물을 움직이는 어떤 질서, 한발 한발 전진하는 어떤 원리가 세계를 조화롭게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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