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아시아 문학선 10
쿠쉬완트 싱 지음, 황보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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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추니, 어지자지 모두 남자와 여자 두 특성을 모두 가진 인간을 말하는 듯하다. 어디서 들어본 듯 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뜻을 알게 된 건 이 책에서다. 이렇게 입에 찰싹 달라붙는, 번역가능한 한국어가 있다는 건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많이 있엇다는 소리일거다.  잘은 모르지만,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 모두를 가지고 있거나 둘 다 없거나고, 수염도 나다 말고, 가슴도 나오다 말고, 허리와 엉덩이의 모양도 짤록 볼록한, 남녀 모든 특성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에 대한 실제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을 얼마 전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를 통해 알았는데, 현대에 와서야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정확히 타고난 유전적 성을 알 수 있겠지만 성기의 모양이 워낙 변형적으로 생겨서 겉으로는 구분이 어렵다고 한다. 


이 소설의 화자가 주기적으로 만나고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여자도 바그마티라고 불리우는 남녀추니이다. 인도에 남녀추니들은 가족에게서도 버려지고, 집단을 형성하면서 윤락과 같은 행위를 하면서 먹고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쪽에 가까우면 여자 창녀를, 남자 쪽에 가까우면 여자들의 남편이자 기둥서방같은 역할을 하면서 돈을 뜯어내며 먹고 사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화자의 시선에서 본 바그마티, 참 독특하다. 남자를 주인님 주인님하면서 부르며 존중하는 것 같지만, 이 남자에게 무슨 헌신적이거나 정신적 애착을 크게 갖고 있는 않아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계속 윤락행위를 하다가 아무때나 자기가 원하면 방문하고, 이런 저런 요구를 하고 섹스의 댓가로 돈을 받아가면서도, 남자에게 여자가 있는 걸 알면 질투도 하고 그런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무슨 동성애적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여자 저 여자 치마만 두르면 섹스할 궁리나 하는 호색한인데, 자신의 눈에는 곰보에 시커멓게 못생기고 입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여자도 아닌 남녀추니를 평생 티격태격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녀추니를 주요 인물로 부각시킨 이유는 꽤나 상징적이다. 남녀추니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또한 남자이면서도 여자인 사람이다. 그들은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도둑이나 강도짓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기가 가진 노동력을 팔아 받은 정당한 댓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직접적인 윤락행위는 불법이지만 수요와 공급이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로 생각해볼 때, 여자게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 섹스의 제공 밖에 없다면  순수한 노동적 행위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속성인 것이다. 그러니 창녀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한 때는 돌로 쳐서 죽이고 마녀 사냥을 해서 화형을 시키곤 하면서 천시하면서도 그리 장구한 세월동안 어느 세계에서나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해온 것이 아닌가. 하렘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소설 속에서는 그들이 알라를 외치고 코란을 섬긴다고 해서 여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렘에서 어린 나이에 팔려와 수십명의 여자들이 한 남자의 노예가 되어 섬기는 대신 잘 곳과 밥과 옷을 얻어먹는 일이 창녀들보다 더 나은 건 그들 사회 내에서 공개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을 사회적 제도권 내에 놓여 있다는 것 뿐일 것이다. 


글이 샜다. 남녀추니가 남과 여로 구분된 세계에서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처럼, 우리의 세계에는 양분된 두 개의 선택 중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야 할 때가 있다. 수십년간 우리 민족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이념논쟁에서도 중도에 서면 자주 양쪽 모두에서 비난의 화살을 받는다. 우파건 좌파건 그들의 선택에 가장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그들의 안위일 때가 많다. 그래서 때로 뭐야 좌파야 우파야 라는 질문을 받는 대신 그들은 한쪽을 선택해서 줄을 선다. 그건 좋다.어차피 이념이란 게. 가장 순수한 인간조차도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런 저런 쪽으로 나뉘고 이쪽 저쪽으로 쏠리는 건 당연한 본성이다. 그런데 태어나길 애초부터 한쪽 소속으로 태어났는데 먹고 살려니 저쪽 행세를 해야할 때가 있다. 남녀추니 바그마티는 중성이어서 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걸걸하지만 몸을 팔려니 스스로를 여자로 만들었다. 주인공 또한 1970~80년대쯤을 살아가고 있는 인도산 시크교도 독신 남성이지만, 영국에서 공부한 것인지 세련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덕에 어디를 가나 외국인 대접을 받는다. 그는 나름 인테리로서 신문에 컬럼 기고를 하고 고위층의 가족들이 오면 델리 가이드를 해주면서 먹고 사는데, 여자가 '하찮은' 인도 가이드로 보곤 무시하다가 세련된 영국 억양으로 말하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태도가 급변하는 것을 알고 즐기는 종류의 남자다. 그의 이야기는 별로 없다. 양념처럼 쬘끔 쬘끔 600년 역사를 담고 있는 전체 소설 속에서 현재의 델리를   환기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델리의 풍경. 그리고 전체 소설이 담고 있는 델리의 역사.


그것이 델리다. 삶이 너무 힘겨워질 때면 니감보드 가트 화정터로 가서 죽은 자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고 그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위스키를 두어잔 털어넣는다. 델리에서는 죽음과 술이 인생을 살 만하게 해준다. 


진짜 이야기는 긴 시대를 훑어 올라오며 세기 세기마다 다채로운 시각으로 다루어진 소설 속의 개별 스토리들이다. 방대한 세월에 걸친 델리의 역사가 여러 이야기를 품은 하나의 소설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끊임 없는 침략과 도륙과 포악하고 잔인한 학정과 반목의 그 장구한  시간이 다양한 각도로 조망되는 동안 화자는 짧막 짧막한 현재의 델리 남녀추니와의 사랑 아닌 사랑을 기반으로 한 현재의 삶을 때로 천박하고 때로 엉뚱하게 때로 슬프지만 때로 당황스러울 만큼 직접적인 성행위의 묘사와 욕지기들로 이루어진 델리에서의 생활을 담는다. 


역사는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같은 줄기라도 완전히 달라진다. 작가가 델리를 희화하해서 보는 방법은 웃기면서도 슬프다.  여러 세기의 여러 이야기들 화자의 관점은 대량 학살을 역사 속 황제, 술탄에서부터 불가촉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 역사의 곳곳에서 평범한 인도인으로서 운명에 순응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남녀추니와 비슷한 존재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불의의 편에 서고, (우리가 생각하는) 불의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통치자들이 자신의 민족을 학살할 때,통치자의 녹을 먹으며 그를 돕고, 영국의 통치하에서 자신들이 섬겨왔던 황제의 군대와 맞설 용병을 모집하는 댓가로 뉴델리 신도시 건설의 수혜를 받아 부자가 되거나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역사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본 이야기 속의 삶은 우리가 이해하는 대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 가치에 있는 것이다. 


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다른 책들을 읽는 걸 포기했다. 600에 가까운 페이지에 문단이 자주 바뀌지 않는 탓에 밀도가 높은 책이다. 때로 한권의 책이 열권의 다른 책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한다. 오래도록 읽었지만, 다 읽고도 책이 쉽게 책장으로 들어가지지 않는다. 앞부분을 읽을 때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던 부분들이 뒷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고 책에 나오는 델리의 거리, 황궁과 회교사원들, 이야기속의 배경을 일일히 사진으로라도 찾아보게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중이라면 설령 12세기부터 이민족의 침략과 대량 학살에 진이 빠지고 회교도, 시크교도, 힌두교도들이 서로를 죽이고 나라를 떼어가고 그렇게 뒤엉켜 피범벅 진창에 빠져 살아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힘겹게 역사가 흘러갔으며  민족의 정체성이 지켜졌으며, 또 어떻게 문화와 문화가 섞이어 들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개개인의 삶과 그 삶의 배경이 되는 역사 속 디테일한 사건들을 통해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책들과는 아주 매우 다른 종류의 방식으로 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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