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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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질병이나 사고처럼 자연스럽게 맞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는, 대개 더는 살 수 없어서이다. 갈 곳이 없어서이다. 거대한 운명의 사슬이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그  어떤 틈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게 옴짝 달싹할 수 없게 가로막고 서 있기 때문이다. 


심청이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임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축약된 형태의 이야기로 만났을 때에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그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심청전의 여러 판본들에서 이미 심청이 아비의 눈을 뜨게 한다는 공양미 삼백석의 미끼가 사기란 걸 짐작하고 있다는 암시가 뚜렷하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지만, 그걸 믿건 안믿건 어쨌든 선택은 심청 자신이었다. 그녀는 눈먼 아비를 혼자 두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꿈 속에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는 앞못보는 아비의 덧없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윤상과 떠날 수도 없는 15세 소녀의 마지막 선택.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죽음의 진짜 이유다. 동냥과 품팔이로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 살더라도, 만일 내일을 꿈꿀 수 있다면 목숨을 공양미 삼백석과 바꿀 수 있었을까. 설령 아비의 눈이 번쩍 뜨이는 기적을 99% 믿었다 한들, 사랑하는 윤상과의 미래가 가시적으로 보인다면 깊은 물 속으로 몸을 던질 용기가 생겼을까. 소경이라고 하나 욕망을 붙잡지 못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음흉하다는 소문까지 몰고 다니는 아비를 봉양해야 하는 그녀의 심경이 되어 본다면, 윤상에 대한 사랑이 커질 수록, 앞못보는 아비를 버리고 싶은 욕망과 그러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좌절감과 죄책감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사랑하는 윤상이 있다. 그를 따라가면 그는 그녀를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었다.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그러나, 그녀는 아비를 봉양해야 하는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친부모처럼 젖물려 키워준 귀덕어미와 그의 아들을 배반할 수도, 어엿한 양반 자제가 상놈과 붙어먹을 수 없다는 아비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다. 어떤 다른 선택이 있겠는가.


눈먼 아비의 낡은 도포 자락을 잡고 구걸을 하던 유아기를 거쳐, 온갖 잡일로 아비를 봉양해야 했던 날들, 그 고단한 삶의 맨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엇일까.사랑에 눈 뜨지 않았다면, 만일 윤상과 둘이서 행복한 날들을 소망할 수 있는 잔인한 가능성마저 없었다면 그럭저럭 아비의 수족이 되어 어른이 되고 늙어가는 운명에 저항해볼 기회조차 없었을런지 모른다. 내 삶은, 운명이라 생각했고 체념했던 삶의 한 자락 끝으로 차마 아비를 버릴 수 없기에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지개처럼 내것이 될 수도 없는 사람. 나의 몫이 아닌 사랑. 이승에서는 꿈꿔볼 수 없는 행복.


그 모든 것이 헛되지 않더냐. 본디 선녀임을 자각해가는 심청의 마음은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불교적 허무주의로 가득하다. 환상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저변에 깔려 있는 불교적 사상이 편안하고 아득하게 다가왔다. 어릴 때 축약본으로 읽었던 심청전 스토리에 이승에서의 사랑과 천상계에서의 사랑이 결부되어 불교적 색체를 띈 사랑 이야기로 치닫는 연인 심청은 돌고 도는 윤회의 늪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 잘 배합되어 있다. 한국어판 위키백과(2월1일자)에 의하면 심청전의 원전 판각본은 여러 버전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 중 송동본 계열의 판각본 원전에 가까워보인다. 윤상과의 사랑과 천상에서의 사랑 이야기가 가미되었다고는 하나, 원전의 기본 스토리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실성있고 빠른 전개로 때로 숨막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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