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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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음을 의식하게 될 때는 언제부터일까. 10살 정도의 아이에게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내 친정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아버지를 잃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슬픈 날에 엄마는 막내 이모인, 막내 동생을 업고 친구들이랑 고무줄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와서 손을 붙잡고 울면 따라 울고 또다시 고무줄 놀이를 계속하고. 지금 보면 초등학교 아이라면 똑똑하기가 어른보다도 나은 아이들도 많은데, 죽음의 의미가 영원히 떠남이란 걸 알고 앞으로 펼쳐질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알기에는 미성숙한 나이인가보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이라면 어떨까. 죽은 후에 어디론가 가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믿는다면 죽음이 아직 두렵지 않을 나이일까?


책을 읽으면서 많이 찔렸다. 사실 내가 자랄 땐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 없었고, 그래봤자 형제들끼리 기를 쓰고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 싸움이라는 것의 정의인 줄 알았는데, 그런 걱정은 없이 자라놓고도 막상 내 아이 앞에서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애한테 자주 보여줬다. 사실 부부가 싸운다는 것이 애매해서, 한 사람이 조금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빈정대거나 냉전 분위기 속으로 몰고가는 일이 아이에게는 그냥 자연스런 삶의 한 형태로 받아지려니 라고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더더군다나 늘 무심하게 때로는 눈치없이 싸우는 데 끼어들어 이것 저것 요구하고 참견하던 아이가 어느날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어서 둘다 몹시도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또 언젠가 하루는 아이가 엄마랑 아빠랑 이렇게 매일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말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도 적지 않게 놀랐다. 그렇게 아이에게 조금씩 상처와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구나. 얼마나 그런 분위기가 싫었으면 그런 말이 나올가.. 그렇다고 핏대를 올리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래 대화 중 흥분을 잘하는 타입이어서 조금 흥분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나름대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이었다. 


10살 정도의 태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바람은 부모가 싸움을 멈추는 일이다. 태오의 부모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싸운다. 계란이 익었네 안익었네로 시작해서, 그럼 니가 해라 마라. 아이는 부모들의 전투가 둘 다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전투에서 승리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한다. 아이는 나폴레옹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죽었다. 죽으면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다. 나폴레옹을 만나리라, 나폴레옹을 만나, 부모의 전투가 승리로 끝나는 방법, 그래서 두 사람이 이제 사이좋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방법을 물어보리라. 


10세 정도라면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동화처럼 쓰여진 글이지만 우선 그런 의문이 들었고, 자꾸 10세때 쯤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노력해봤는데, 오래 전 친정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막내 동생을 업고 친구들이랑 고무줄 놀이를 하며 뛰어 놀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니 그 나이에 죽음이란 게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고, 또 그 때까지도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믿는 아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 죽은 후의 세계가 그렇게 공포스럽지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을 양보했다. 


우리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자살'이 틀림없는 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가는 과정이 파국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닌 희망과 바람을 향해 가는 길이라고 믿는 아이를 지켜보아야 하는 과정은 안타깝다. 그리고 그 과정과 따뜻한 결말을 통해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장하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어른이라고 해서, 아이를 낳아서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하는 양육의 전과정이 희생인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의 눈이 바라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른들에게 만성적으로 부딪치는 일상 중 어떤 작은 결함이라도 그 작은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금씩 행하고 아이에게 투영된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교감하면서 부모와 자식과 부부 가족 모두 함께 조금씩 더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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